북한이탈주민 재미 인권운동가 박연미씨가 이야기한 북한에서의 경험담이 일관되지 않아 과거 그녀의 행적에 대해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16일 워싱턴포스트(WP)에 북한이탈주민 재미 인권운동가 박연미(29)씨가 등장했다. 박씨가 이야기한 북한에서의 경험이 앞뒤가 맞지 않거나 과장된 면이 있다고 WP는 보도했다.
북한 양강도 혜산시에서 태어난 박씨는 아버지가 암시장에서 금속을 밀반입했다가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자 2007년 탈북했다.
중국과 몽골을 거쳐 2009년 한국에 정착한 그는 북한이탈주민이 출연하는 TV 예능 프로그램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출연해 이름을 알렸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에 진학해 공부하던 중 2015년 미국 컬럼비아대로 편입했고 이후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WP에 따르면 박씨에 대해 제기된 대표적인 의문 중 하나는 북한에서 누린 경제력이다. 그는 국내 방송에서 노동당원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부유하게 자랐다고 주장했다.
명품 가방을 구입하는 등 상류층의 삶을 누렸다는 그의 주장에 ‘북한판 패리스 힐튼’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WP는 “하지만 인권문제를 다루는 국제회의로 무대를 옮기고 난 뒤엔 ‘생존을 위해 풀과 잠자리를 먹었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그는 “북한을 떠나기 전까진 계란이나 실내 화장실을 접해본 적이 없다”고도 말했다고 한다.
WP는 ‘경기장 처형’ 목격설도 다른 북한이탈주민과 증언이 엇갈리는 점도 짚었다. 박씨는 어릴 적 친구의 어머니가 할리우드 영화를 봤다는 이유로 한 경기장에서 처형되는 것을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014년 미 외교전문지 디플로맷의 기고문에 따르면 혜산 출신의 다른 북한이탈주민은 비슷한 시기에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외에 탈북 경로에 대해서도 처음엔 아버지가 밀수하며 알게 된 중국 브로커의 도움을 받아 부모님과 함께 탈출했다고 했지만 이후 어머니와 둘이서 탈북했고 중국에 머무르며 성적 학대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이후 각종 인터뷰에서 증언이 일관되지 않았던 건 미숙한 영어와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또 2015년 펴낸 책 ‘내가 본 것을 알게 됐으면(In Order to Live)’에선 방송에서 어린 시절 생활고를 언급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방송에서 (부유한 탈북민 컨셉트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박씨는 보수 기독교단체 ‘터닝포인트 USA’에서 월 6600달러의 보수를 받고 인권 운동을 하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박연미의 북한의 목소리(Voice of North Korea by Yeonmi Park)’의 구독자 수는 113만명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