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 대형 마켓 체인 H마트가 전 직원과의 소송을 중재로 돌리려 했지만 법원에서 제동이 걸렸다.
법원은 중재합의 문서 자체는 인정했지만 내부 조항이 “직원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이유로 전체 중재합의를 무효 처리해 사건은 정식 재판으로 넘어갔다.
이번 사건은 H 마트 레이크후드점 전직 직원 과달루페 페르난데스가 지난 2024년 8월 9일 H Mart, Inc., H Mart Lakewood LLC, 그리고 매니저 박모씨 등을 상대로 LA카운티 수피리어법원에 제기한 노동법 분쟁 소송이다.
원고인 페르난데스는 소장에서 인종차별과 괴롭힘, 장애 및 연령 차별, FEHA 보복, 식사·휴식시간 미제공, 임금명세서 누락, 퇴직 임금 체불, 부당해고, 내부고발자 보호 위반, 불공정 거래 등 총 15개 항목을 청구했다.
이에 대해 피고 H마트 측은 원고가 지난 2020년 9월 9일 중재합의서(Arbitration Agreement)에 직접 서명한 것을 근거로 재판이 아닌 중재에 회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맞섰다.
H 마트측은 해당 문서가 “고용 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분쟁은 미국중재협회(AAA) 규정에 따라 중재에서 해결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재판이 아닌 중재로 강제 회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H 마트측은 중재 강제 신청(Motion to Compel Arbitration)을 법원에 제출해 법원이 재판 대신 중재에 회부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심리한 버지니아 키니 판사는 지난 5월 13일, 중재 강제 신청을 기각했다.
키니 판사는 중재신청을 기각하면서 “중재 계약의 존재와 서명 사실, 적용 범위 자체는 인정하지만 문서에 포함된 특정 조항이 실체적 불공정 수준에 해당한다”며 기각 이유를 설명했다.
키니 판사가 지적한 조항은 “고용 종료 후 1년 이내에 서면으로 중재를 청구하지 않으면 고용과 관련된 모든 청구권을 영구히 상실하며, 어떤 법적 구제도 받을 수 없다”는 문구였다. 키니 판사는 이 조항이 노동자의 법적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하며, 해당 계약이 서명된 2020년 당시에도 유사 조항이 법원에서 반복적으로 불공정으로 판단돼 온 점을 근거로, 선의로 작성된 조항이라고 볼 수 없다며 결론을 내렸다.
그러자 H마트 측은 문제가 된 조항만 삭제하고 나머지 중재합의는 유지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사건은 중재가 아닌 정식 본안 재판으로 법정 소송 절차가 진행된다.
법원은 동시에 “중재합의가 고용계약에서 자주 사용된다는 이유만으로 자동 무효는 아니며”, “회사 대표 서명 부재만으로 무효가 되지 않는다”는 기존 기준도 유지했다.
하지만 단 하나의 내용 불공정 조항이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을 이번 결정이 보여준 것이어서 업주 입장에선 “서명 받아놨으니 안전하다”는 사고가 더 이상 방패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노동법 전문가의 지적이다.
이번 판결은 특히 한인 업계에 중요한 신호를 보낸다. 채용 과정에서 관행적으로 사용되는 중재합의 서류가 “서명만 받으면 보호막이 된다”는 인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판례로 보여준 것이다.
또, 일방적으로 직원에게 불리하고, 고용주에게 유리한 특정조항을 포함시키는 것은 전체 중재합의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을 재확인해 준 것이기도 하다.
<김상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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