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의료 공백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공의와 의대 교수들의 집단 사직에 이어 ‘의료계 총파업’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여느 때와 같이 환자 곁을 지키고 있는 의사들 역시 상당수다. 치과의사 조상연(53)씨도 그중 한명이다. 그가 속한 ‘행동하는의사회’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쪽방 주민들을 대상으로 무료 진료를 하고 있다.
지난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돈의동 ‘우리동네구강관리센터’를 찾았다. 8평(26.4㎡) 정도의 작은 공간에 치과용 진료 의자 2대가 놓여있었다. 의자 위에는 흰 천으로 얼굴을 덮은 환자들이 누워 있었고, 조씨를 비롯한 의료진 4명은 각종 기구를 이용해 환자들의 치아 상태를 살폈다.
이곳의 모든 진료와 치료가 무상으로 이뤄진다. 진료 대상은 인근에 거주하는 쪽방 주민이다. 충치 치료는 물론 임플란트, 틀니 등 보철 치료까지 모두 무료다. 센터는 치과의사·치과위생사 등으로 구성된 30여명의 자원활동가, 서울시, 우리금융미래재단의 후원으로 운영된다.
이날 오후 2시부터 4시30분까지 총 8명의 환자가 센터를 찾았다. 치아를 뽑고 나온 한 여성이 의료진과 대화를 나누는데 이미 친분이 쌓인 듯 사적인 이야기도 스스럼 없이 꺼내놨다. 그는 보호소에 있는 아들의 근황을 나눴고, 의료진은 그런 그에게 “틀니가 완성되면 불편해도 꼭 사용하셔야 한다”고 당부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우리동네구강관리센터는 지난 2022년 12월 개소한 이후 1년 만에 총 753명을 치료했다. 구체적인 진료 건수로는 치주치료 142건, 신경치료 79건, 틀니 45건, 임플란트 2건 등 총 935건이다.
치과의 경우 비용이 많이 드는 진료과라는 인식이 강해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쪽방 주민들이 제때 치료 받지 못하고 구강 상태가 심각해질 때까지 방치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한다. 특히 음식을 입에 넣고 씹는 저작이 불가능해지면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해 건강을 해치게 된다.
조씨는 치과 치료를 받은 쪽방 주민이 자신감을 얻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적응해 나갈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어려서 보육원에 맡겨졌다가 구타를 당해 뛰쳐나온 뒤 홀로 여러 일터를 전전하며 살아오신 60대 남성 환자가 있었다. 이가 하나도 없었는데 틀니를 맞추고 적응하더니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며 과일을 사서 오셨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였다”고 말했다.
조씨는 그러면서 센터의 의료진이 무료로 진료하는 것은 ‘봉사’가 아니라 ‘자원활동’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모두가 공평하게 진료받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 못한 것에 대해 의료인으로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며 “의료 소외 계층을 돕는다거나 시혜를 베푸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의정 갈등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의료인은 사회의 일정 부분을 책임져야 하는 집단이라고 생각한다”며 “현재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과 같이 국민들에게 기본적으로 보장돼야 할 시스템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의료인으로서 이를 먼저 생각하면 대화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조씨는 주변에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동료들도 상당수라고 했다. 그는 “함께 활동하는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설령 집단행동을 하더라도 필수진료 영역을 비우면 안 된다는 의견(이 많다)”이라며 “의사가 환자를 치료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가치가 지켜져야 다른 요구들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