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시리아·아프간 철수 이어지며 미국 의존 탈피
중동, 미국 대신할 동맹과 우호국 찾아 나서고 있어
프랑스·중국과 관계 강화하면서 미국 갈수록 소외
이란이 핵무장에 열을 올리는 가운데 미국이 충실하고 강력한 동맹으로서 신뢰를 보여주지 못하자 유럽과 중동국가들이 전통적인 동맹을 재정비하고 있다고 CNN이 22일 보도했다.
이달 초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를 순방했다. UAE에서 그는 190억달러 규모의 라파엘 전투기 80대와 군용 헬리콥터 12대 주문을 받았다.
반면 미국은 UAE로부터 찬밥신세다. UAE는 지난주 미국으로부터 230억달러 규모의 무기도입 협상을 중단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사우디를 방문해 언론인 자말 카슈크지의 살해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모하메드 빈 살만 황태자를 사건 발생 이후 처음으로 만난 서방 지도자가 됐다.
마크롱은 자신의 사우디 방문에 대해 두바이에서 기자들에게 “걸프 지역에서 가장 강하고 인구가 많은 사우디와 대화를 하지 않겠다면 어떻게 중동 평화를 유지할 수 있나”고 옹호했다.
사우디, 쿠웨이트, UAE 등 아라비아 반도 국가들에게 제1의 동맹은 지난 100년 가까이 미국이었다. 그러나 현재 새로운 위협에 직면한 이 지역 국가들이 새로운 동맹, 아니면 적어도 친구를 찾고 있다.
일이 이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세상은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전임자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과 결별하고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미국으로 돌아갈 것으로 기대했다. 아직 미국이 모든 것을 잃은 것은 아니지만 최근 몇 주 새 벌어진 일들은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과거 미국은 이들 국가들을 유연하게 대하면서 진정한 우정과 신뢰를 보여줬다. 동시에 미국은 이들 국가들을 소외시킬 수 있는 주제들을 면밀하게 따져보고 신중하게 처신했었다.
프랑스는 물론 사우디와 UAE에도 그랬다. 미국의 이들에 대한 민감한 대응은 문화적, 종교적, 사회적 모든 면에서 발휘휘됐었다. 그러나 이 지역의 분위기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프랑스가 호주에 팔려던 90억 달러 규모의 잠수함 거래가 지난 9월 미국과 영국이 호주에 핵잠수함 기술을 이전하기로 결정하면서 깨진 일이 있었다. 영어권의 세 나라들은 프랑스가 자신들만큼 중국에 강력히 대처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 프랑스를 소외시켰다.
갑작스런 오커스(AUKUS) 방위동맹 출범은 프랑스를 격분하게 만들었다. 몇 주 뒤 프랑스는 수십억달러 규모의 전투기 를 UAE에 판매하는 것으로 보복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22일 TF-1 방송과 90분에 걸친 인터뷰에서 AUKUS 잠수함 문제를 거론했다. “우리는 최대한 강력하게 대응했다”면서 “시간을 두고” 미국의 행동에 철저히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크롱의 발언은 이란 핵협상이 진전되지 못하면서 UAE 카타르, 사우디, 이집트 등 중동국가들 사이에 핵무장한 이란에 인질로 사로잡힐 수도 있다는 공포감이 확산되는 와중에 나온 것이다.
바이든 미 정부가 이란의 핵활동을 억제하는데 실패하면 미국의 입지는 더 약해진다. 지난 몇 십년 동안 충분했던 것으로 간주되던 미국의 핵우산이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철수한 데 이어 아프가니스탄에서 전격적으로 철수한 일도 중동국가들의 우려를 가중시켰다. 중동국가들로선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걸프 지역 국가들이 미국을 넘어 새로운 친구들을 찾아 나서고 있다. UAE는 중국과 오래전부터 관계를 강화해오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이 UAE에 판매할 무기를 중국이 살펴보지 못하도록 보장하라는 요구를 하자 UAE는 자신들의 ‘주권”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것으로 느낄 정도가 됐다.
사우디 역시 중국을 더 많이 돌아보고 있다. 중국은 이미 사우디의 최대 교역상대국이다. 최근에는 6개의 초대형 담수화 공장을 사우디-중국-스페인 컨소시엄이 짓기로 했고 중국으로부터 무기를 사들이기도 했다.
미국이 과거 중심역할을 하던 지역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면 미국의 오랜 동맹국들이 가지는 우선 순위와 공포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대처하는 것이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