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서울 콘서트, 이것은 공연이 아니다
어떤 콘서트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다. 어떤 현상에 대한 은유 또는 특정 세계에 대한 인식이 되기도 한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10일 오후 잠실종합운동장 서울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연 ‘BTS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 – 서울(PERMISSION TO DANCE ON STAGE – SEOUL)’이 그렇다.
콘서트 업계에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를 열 이정표가 될 공연. 이날 공연에 운집한 인원은 1만5000명, 코로나19 이후 가장 많은 인원이 모인 콘서트다. 일각에선 우려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콘서트는 안전하면서 뜨겁게 성료했다.
방탄소년단 팬덤 ‘아미’가 불안해하지 않은 이유는 방탄소년단이기 때문이다. 이미 방탄소년단은 지난해 11월 말~12월 초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약 2년2개월 만의 대면 공연 ‘BTS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 – LA’를 열었다. 나흘 간 오프라인 공연에 무려 21만명이 모이며 팬데믹 속 안전한 콘서트의 모범 사례가 됐다.
이런 노하우를 갖고 이번 서울 콘서트에 임한 것이다. 아미 역시 지킬 건 지키면서 어떻게 연대하는지를 증명했다. 코로나19 관련 방역 지침으로 환호성이 금지됐는데, 정말 아미 사이에선 함성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아미밤이 파란색, 빨간색 그리고 방탄소년단 상징색인 보랏빛으로 번쩍일 뿐이었다.
서울에서 2년5개월 만, 정확히는 864일만에 여는 대면 공연이라 반가움이 컸겠지만 제대로 약속을 지킨 것이다.
공연 스태프들이 객석 사이로 ‘함성을 자제해달라’는 문구가 적힌 푯말을 들고 다녔는데, 이런 조치가 필요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클래퍼(박수 소리를 낼 수 있는 응원도구) 소리와 미리 녹음된 함성 소리만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6만5000명이 수용 가능한 공연장에 20% 남짓한 인원만 받았으니 쾌적함도 더했다. 콘서트의 공식 상품 부스를 롯데백화점 잠실점에서 운영한 것도 밀집도를 낮췄다.
클래퍼 앞면에 사전에 모집한 슬로건 “당연히도 우리 사이 여태 안 변했네”가 적혔다. 방탄소년단이나 아미나 코로나19라는 위기 이전과 이후에도 애정은 같았다. 이날 낮부터 공연장 앞에 모인 아미들은 같은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다른 팬들과 사전 연대했다.
아미는 입장 등을 위한 대기 줄을 서 있을 때도 일정 간격을 두는 등 방역 지침을 준수했다. 체온 측정 등만 입장할 수 있어 혼잡도 거의 없었다.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20대 아미는 “오래만에 방탄소년단 콘서트를 보는 만큼 설레서 마음껏 뛰어다니고 싶지만, 우리의 안전이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안전이기 때문에 지침을 철저하게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슈가는 “함성 없는 공연은 처음이라 나름 평생 기억에 남을 거 같다”고 했다. “저희가 ‘소리 질러’ ‘세이 뭐’라고 마음 속으로만 함성을 질러 달라”며 “많은 가수분들이 그러하겠지만 잠실종합운동장엔 유독 좋은 기억이 많은데 오늘뿐만 아니라 앞으로 훨씬 더 좋은 추억을 쌓자”고 했다.
콘서트는 누가 뭐라해도 무대로 증명해야 한다. 이날은 코로나19라는 위기를 딛고 우리가 어떻게 연대해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노래와 춤으로 깨닫게 한 자리다.
특히 코로나19가 크게 확산하기 직전인 2020년 2월 발매한 정규 4집 ‘맵 오브 더 솔(MAP OF THE SOUL) : 7’의 타이틀곡 ‘온(ON)’과 수록곡 ‘블랙 스완(Black Swan)’이 하이라이트였다.
“어쩜 서울 또 New York or Paris / 일어나니 휘청이는 몸 (…) /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scream / 언제나 우린 그랬으니” 공연의 포문을 연 ‘온’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야 하는 때’를 압축하며 선봉의 역을 제대로 했다.
‘블랙스완’이 화룡점정이었다. 무대 전면을 장식한 대형 LED가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무대에서 원형의 동선을 선보였는데, 카메라가 360도 원을 돌면서 모든 멤버들을 비췄고 그것이 LED를 통해 생생히 중계됐다. 이어 방탄소년단 멤버들과 댄서들이 무대 위에서 학익진(鶴翼陣) 대형을 보여줬을 때 예술적 정경은 현대무용이 주는 감흥 그 이상이었다. 대형공연장에서 무대와 LED 조합이 어떻게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를 명료하게 보여줬다.
‘아이돌’ 같은 무대에서도 LED는 다양한 팝아트 효과로 무대 연출을 도왔다.
코로나19 이전엔 계획했던 곡이 아니었으나 팬데믹 시기에 발표돼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한 글로벌 히트곡 ‘다이너마이트’ 무대도 인상적이었다. 이후 코로나19로 인한 아픔과 괴로움을 녹인 ‘버터’ 무대를 연이어 선보였다. ‘버터’ 무대에서는 작년 최장기간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핫100’ 1위를 축하하듯 수시로 폭죽이 터졌다.
어떤 시대에 혹자는 콘서트를 통해 세계를 인식한다. 그 시대가 끝날 때, 반작용처럼 상징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번 방탄소년단 콘서트는 그 상징에 미학적인 것까지 담보하며 ‘전환이 시작됐음’을 알렸다.
RM은 이날 콘서트 막바지에 “이 지긋지긋하고 거지 같은 언택트, 비대면이 끝이 나긴 한다. (관객분들이) 있을 때는 몰랐는데, 없으니까 너무 힘들었던 2년이었다”고 돌아봤다.
“우리도 영혼을 정말 갈아서 하는 공연이라 더 많은 분이 보실 수 없고, 제한된 상태에서 하는 게 속상하다. 하지만 그래서 됭장히 결연한 마음으로 우리가 나머지 부분을 채우자는 마음으로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방탄소년단은 이날 ‘홈(Home)’도 들려줬는데 RM은 “‘홈’을 부른 게 의미가 있다. 우리가 진짜 집에 왔기 때문이다. 여기가 진짜 우리의 진정한 고향 아니겠냐. 너무 행복하다. 나중에 이런(환호성을 낼 수 없는) 콘서트도 있었다고 자식들에게 말할 수 있는, 최고의 안주거리를 선사한 ‘역사적 공연’에 함께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방탄소년단은 환경의 빈곤을, 아티스트의 관성으로 대체하지 않았다. 음악과 콘서트는 아직 공유하지 않은 실존의 가능성을 탐구해보는 운동장이고, 그건 아티스트와 팬이 물리적 공간에 모일 때 가능하다. 이처럼 어떤 콘서트는 공연이 아닌, 세상에 대한 실험이자 증명이 된다. RM 말마따나 “어떤 위기가 왔어도” 이들은 방법을 찾았다.
이번 콘서트는 12일과 13일 두 차례 더 열린다. 총 4만5000명이 운집하게 된다. 공연장을 직접 찾지 못하는 전 세계 팬들을 위해 이날 공연은 글로벌 팬 커뮤니티 위버스를 통해 라이브 스트리밍했다. 13일 공연도 스트리밍한다. 12일 공연은 극장에서 ‘라이브 뷰잉’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될 예정이다.
코로나19 이전엔 K팝 그룹의 콘서트는 오프라인이 지배적이었다. 세계 도시를 돌며 각국의 여론을 환기하고, 현지 팬들과 결속력을 다지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감염병이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기존 오프라인 공연은 반드시 정답이 아니다. 코로나19 시국에 가능성을 확인한 온라인 병행이 필수가 된 이유다. 방탄소년단 소속사 하이브는 K팝계가 내세우고 있는 ‘하이브리드 공연’ 전략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있다. 상황과 여력이 되는 한 오프라인 공연을 열고, 일부 공연은 온라인으로 실시간 중계하며 더 많은 팬들을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