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최고의 팝 슈퍼스타’인 싱어송라이터 테일러 스위프트(35·Taylor Swift)는 30대에 이미 살아있는 전설이 됐다.
스위프트가 지나가는 곳마다 경제가 살아나는 동시에 존재가 피어오른다. 음악뿐 아니라 그녀가 얽히는 분야마다 새롭게 환기가 된다. 이제부터 그녀의 모든 것이 역사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막강한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자랑하고 있다.
스위프트는 지난해 미국 시사주간 타임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특히 1927년부터 선정을 시작한 타임의 ‘올해의 인물’에 엔터테인먼트 인사가 본업으로 선정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또 엔터테인먼트계 인물의 단독 선정도 스위프트가 최초다. 스위프트는 2017년 타임 ‘올해의 인물’에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을 촉발한 ‘침묵을 깬 사람들’ 중 한명으로 선정된 적이 있다.
스위프트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신드롬을 일으키며 팝계 역사를 바꿨다. 그 해 북미에서 시작한 월드 투어 ‘디 에라스 투어’의 열풍이 근저에 깔려 있다. 스위프트가 콘서트를 여는 공연장이 위치한 지역마다 소비가 크게 늘어나면서 ‘스위프트노믹스'(스위프트+이코노믹스)란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쇼적인 상업적 측면뿐 아니라 음악적인 측면에서도 높은 완성도를 인정 받은 투어다. 특히 3시간이 훌쩍 넘는 러닝타임 동안 유지되는 스위프트의 가창력과 에너지에 팬들이 열광하고 있다. 이번 투어 6개월 전부터 트레이닝을 시작했다는 스위프트는 타임에 “매일 투어 전체 세트리스트를 러닝머신 위에서 큰 소리로 부르며 뛰었다. 빠른 곡은 빠르게 뛰고, 비교적 느린 노래는 빨리 걷기나 간단히 뛴다”고 했다.
북·남미 투어를 끝내고 아시아·태평양·유럽 투어를 도는 ‘디 에라스 투어’는 열릴 때마다 신기록을 쓰게 된다. 투어를 시작한 지 8개월 만인 지난해 11월까지 북미·남미 투어 60회 만으로, 전 세계 대중음악 콘서트 투어 사상 최초 매출 10억 달러(약 1조3275억원)(미국 공연 산업 전문지 폴스타(Pollstar) 집계)를 돌파했다. 이전까지 최다 매출을 기록한 팝스타 월드 투어는 영국 팝 거물 엘턴 존의 고별 투어인 ‘페어웰 옐로 브릭 로드 투어’다. 2018년 출발해 코로나19 기간 쉬면서 올해까지 이어졌다. 매출은 9억3900만 달러(약 1조2395억원)다.
지난 7일 시작해 10일까지 나흘 연속 총 네 차례가 열리는 도쿄돔 공연에도 매회 5만명 이상이 운집하고 있다. 이번에 아시아 지역은 도쿄와 싱가포르에서만 열리는 터라 일본 팬뿐 아니라 한국, 중국 등지에서도 팬들이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다. 도쿄돔 공연 역시 호평을 듣고 있다. 일본 음악 전문지 ‘리얼사운드’는 이번 ‘디 에라스 투어’의 세트리스트를 높게 평가하며 “노래 하나하나마다 관객의 기억과 체험이 녹아 들어가 있기 때문에 라이브가 종반을 맞이할 무렵엔 관객도 과거를 거슬러 올라간 것 같은, 이상한 감각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걸 깨닫는다”고 평했다. “우리는 테일러 스위프트와 함께 살아왔다는 것 그리고 테일러 또한 팬들과 함께 살아왔다는 걸 강력하게 실감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7일 도쿄돔 현장에서 지켜본 스위프트의 공연은 앨범 단위로 곡들을 묶어 공연 전체에 핍진성을 더했다. 세간의 자신에 대한 오해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레퓨테이션’ 섹션, 컨트리 뮤지션으로 출발한 자신의 정체성을 톺아본 ‘포크로어’ 섹션, 강렬한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1989’ 섹션, 사랑의 다양한 감정을 표현했고 음악적으로도 성숙한 분기점이 된 ‘레드’ 섹션, 꿈결같은 몽환적인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던 ‘미드나이트’ 섹션 등 섹션마다 몰입감이 일품이었다. 20대 일본 직장인 미유키 씨는 “젊은 여성으로서 전 세계 팝 신뿐 아니라 전 영역에서 새로운 기록과 역사를 만들어내는 스위프트의 모습에서 용기와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사실 스위프트의 인기는 지난 10년 이상 꾸준히 높아졌다. 그런데 올해엔 더욱 상업적인 측면뿐 아니라 주체적인 예술성까지 조명되면서 “핵융합과 같은 에너지를 분출”(‘타임’)하는 ‘하나의 현상’이 됐다.
컨트리 스타→거짓 루머로 조롱 대상→역경 뚫은 싱어송라이터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州) 웨스트 레딩 출신인 스위프트는 태어나 12세부터 북미 인기 장르인 컨트리 음악을 시작했다. 2006년 18세의 나이에 셀프 타이틀의 데뷔 앨범으로 ‘컨트리계 혜성’으로 통했다. 그런데 초창기엔 화려한 외모를 지닌 백인 여성이라 주목 받는다며 음악적으로 평가절하됐다.
2008년 발표한 정규 2집 ‘피어리스(Fearless)’로 ‘그래미 어워즈’에서 당시 만 20세라는 최연소로 ‘올해의 앨범상’을 비롯해 4개 부문을 받으면서 컨트리를 넘어 팝스타에 등극한다. 이후 ‘스피크 나우’ ‘레드’ 등 잇따라 앨범이 흥행하면서 입지를 굳혔다.
하지만 스위프트에게도 당연히 시련이 있었다. 미국 힙합 가수 예(Ye·옛 칸예 웨스트)의 몰지각한 언행으로 그와 얽힌 악연이 대표적이다.
시작은 2009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VMA)’ 시상식이었다. 스위프트가 ‘유 비롱 위드 미’로 ‘올해의 비디오상’ 여성 부문을 수상하고 소감을 말하려는 찰나 예가 무대에 난입해 난동을 부렸다. 그는 “비욘세의 ‘싱글 레이디’가 받았어야 했다”고 주장하며 시상식을 망쳤다.
이후 예는 스위프트를 성희롱한 ‘페이머스(Famous)’를 발표했다. 스위프트를 ‘비치(Bitch)’라고 칭한 무례한 노랫말을 넣었다. 스위프트가 항의하고 업계에 문제가 되자 예는 “테일러에게 미리 동의를 구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예의 아내였던 모델 킴 카다시안이 예와 스위프트가 “미리 알려줘서 고맙다”고 소통한 통화 내역을 공개하면서 스위프트는 거짓말쟁이로 몰렸다. 하지만, 통화 내역은 전부 짜깁기로 밝혀졌다. 이후 스위프트는 누명을 벗게 됐고 예와 카다시안은 궁지에 몰렸다.
하지만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스위프트는 큰 마음 고생을 해야 했다.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이들 때문에 한 때 소셜 미디어 계정을 폐쇄했다. 온라인에선 스위프트를 간사한 뱀에 비유하는 말들이 퍼져나갔다. 자신을 성추행한 라디오 DJ 데이비드 뮬러와 법정 다툼도 이어졌다.
스위프트는 정면 돌파를 택했다. 2017년 ‘평판’이라는 뜻을 지닌 정규 6집 ‘레퓨테이션(Reputation)’을 발매하고 안티에 맞섰다. 앨범의 리드 싱글 ‘룩 왓 유 메이크 미 두(Look what you make me do)’에서 “올드 테일러는 죽었다”며 자신이 새롭게 태어났음을 공표했다. 이 모든 과정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미스 아메리카나'(2020)에 요약돼 있다. 이건 개인 뮤지션 스위프트의 이야기가 아니다. 여성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한 인간이 어떻게 벗어던졌나에 대한 이야기다.
스위프트는 ‘2023 올해의 인물’ 선정 관련 타임과 인터뷰에서 “카다시안이 불법 녹음한 통화내역을 짜깁기해 저를 거짓말쟁이로 몰았을 때, 심리적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면서 “아무도 믿을 수가 없어 모든 사람들을 밀어냈다”고 돌아봤다.
스위프트의 고난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미국 연예계 거물 스쿠터 브라운과 불화도 그 중 하나다. 스위프트의 데뷔 음반 ‘테일러 스위프트’부터 ‘레퓨테이션’까지 여섯 장의 음반·음원 마스터권은 빅머신레코드가 보유하고 있다. 저작인접권 중 하나인 마스터권은 제작자의 권한이다. 스위프트는 2018년 빅머신레코드과 계약이 만료되면서 이 음반들의 마스터권을 가져오려고 했으나 무산됐다. 이후 스위프트는 이후 발매하는 음반의 마스터권을 자신이 가져가기로 하고 유니버설 뮤직 그룹(UMG)과 새로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2019년 브라운의 투자 회사 이타카 홀딩스가 스위프트가 속해 있던 빅머신레이블을 사들이면서 스위프트의 심기가 더 불편해졌다. 스위프트는 이전부터 브라운에게 적대감을 갖고 있었다. 브라운은 2015년부터 2년 반 동안 예를 매니지먼트했다. 스위프트는 브라운이 예의 몰지각한 언행을 부채질했다고 느꼈다. 스위프트는 결국 첫 6개의 음반을 재녹음하기로 했고 이걸 테일버 버전으로 다시 내놓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내놓으 ‘1989’(Taylor’s Version)와 수록곡들이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차트 ‘빌보드 200’과 메인 싱글차트 ‘핫100’을 휩쓰는 등 이 음반들은 원래 녹음본보다 더 흥행하고 있다.
스위프트는 타임에 “인생은 짧다. 몇 년 동안 스스로를 가두며 살았던 적이 있는데, 그 시간들은 절대 다시 돌려받진 못할 것이다. 모험을 해봐라”고 제안했다.
스위프트의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디 에라스 투어’ 실황을 담은 영화 ‘테일러 스위프트 : 디 에라스 투어’로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기록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지난해 11월 ‘2023 빌보드 뮤직 어워즈'(Billboard Music Awards·BBMAs)에서 10개의 상을 차지하며 역대 해당 시상식에서 총 39개의 트로피를 안았다. 캐나다 출신 힙합 가수 드레이크와 함께 ‘BBMAs’ 역대 최다 수상자가 됐다. ‘빌보드 뮤직 어워즈’와 미국 3대 대중음악 시상식으로 묶이는 동시에 가장 권위를 인정 받는 ‘그래미 어워즈’에서도 스위프트는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정규 10집 ‘미드나이츠’로 최근 ‘제66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최고 영예인 ‘올해의 앨범’을 받으며 해당 부분에서 처음 네 번째 이 상을 받는 기록을 썼다. 프랭크 시내트라, 폴 사이먼, 스티비 원더 같은 음악계 전설들의 3회 수상 기록을 넘긴 것이다.
또 ‘빌보드 200’에선 현역 가수 중 처음으로 톱10에 다섯 개의 앨범을 동시에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에서 올해 가장 많이 스트리밍 된 가수가 됐고 애플뮤직은 올해의 아티스트로 스위프트를 꼽았다.
미국 명문 하버드대 영문과 스테파니 버트 교수는 올해 봄 학기에 ‘테일러 스위프트와 그녀의 세계’라는 새로운 강좌를 열었다. 먼저 스위프트 관련 강좌를 개설했던 뉴욕대는 재작년 그녀에게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스위프트는 이 대학 재작년 졸업식에서 연설했다. 스위프트의 이 같은 열풍에 팬덤 스위프티(swiftie)도 재조명되고 있다. 스위프티는 지난해 말 옥스퍼드 사전이 발표한 올해의 단어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경제·정치권·NFL도 뒤흔드는 영향력
올해 ‘그래미 어워즈’ MC를 맡은 트레버 노아는 스위프트가 시상식장으로 입성해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며 “지나가는 곳마다 지역 경제가 살아난다”며 스위프트노믹스를 환기시켰다.
실제 스위프트는 현재 대형 기업들의 주가 등락에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녀가 오는 4월19일 발매 예정인 정규 11집 ‘토처드 포이츠 디파트먼트(Tortured Poets Department)’가 전 세계 최대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업체인 스포티파이의 주가에 호재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최근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스위프트의 11집이 스포티파이의 구독자 수와 월간 활성 사용자 숫자 등이 늘어나는데 보탬이 될 것이라며 주식을 매수하고 있다고 했다.
또 얼마 전 소셜 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 나체 이미지에 스위프트의 얼굴을 합성한 인공지능(AI) 딥페이크 이미지가 떠돌자 이 기업 안팎으로 다양한 이슈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엑스는 재빨리 관련 검색어를 차단했고, 성 착취물 관련 게시물 단속에 나서겠다고도 했다.
오는 11월 치러질 미국 대선에서도 스위프트는 화두다. 특히 스위프트는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에서 떠도는 음모론의 표적이 되고 있다. 트럼프의 극렬 지지자들은 스위프트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을 돕기 위한 비밀 요원이라는 허황된 루머를 퍼트리고 있다. 스위프트는 소수자의 보호 등을 이유로 지난 2018년부터 민주당 후보를 공개 지지해오고 있다.
특히 최근 스위프트에 대한 공화당 지지자들의 이유 없는 비난은 11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얼리전트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슈퍼볼’을 앞두고 거세지고 있다. 한 해 미국프로풋볼(NFL) 최고의 팀을 가리는 챔피언 결정전인 슈퍼볼은 미국의 가장 큰 대형 이벤트 중 하나다.
이번엔 스위프트의 연인 트래비스 켈시가 속한 캔자스시티 치프스가 슈퍼볼에 진출하게 됐는데, NFL 팬층의 주축 중 하나인 보수 성향의 팬들이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스위프트와 켈시의 연애사는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사다. 켈시 역시 유명 인사지만, 스위프트의 화제성 때문이다. 연인 사이에서 여성의 인기와 재력 그리고 영향력이 더 큰 걸 일부 보수 지지층이 못마땅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NFL 스타는 전통적인 백인 남성상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켈시와 스위프트의 관계가 이를 전복했다는 분석이 많다.
현지에선 스위프트가 캔자스시티 치프스와 NFL에 4000억원이 넘는 브랜드 가치를 창출했다는 분석과 보도도 쏟아지고 있다. 또 스위프트의 슈퍼볼 직관 여부를 두고 도박이 개설됐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스위프트와 켈시의 이미지를 새긴 슈퍼볼 굿즈도 등장했다. 캔자스시티가 슈퍼볼에서 우승하면 켈시가 스위프트에게 청혼할 것이라는 추측도 나와 현지가 들썩이고 있다.
스위프트가 10일 도쿄돔 공연을 마친 뒤 제 시간에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해 11일 슈퍼볼을 지켜볼 수 있을지가 관심 대상이 되자, 미국 워싱턴DC 주재 일본 대사관이 “제 시간 안에 도착할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내기도 했다.
AP통신은 ‘그래미 어워즈’, 도쿄돔 콘서트, 슈퍼볼 참석이 이어지는 스위프트의 이번 주 스케줄을 짚으며 “그녀는 어디에나 있고, 세상은 단지 그녀의 백업 밴드일 뿐이다. 이번 주는 테일러 스위프트 주간”이라고 명명했다.
대중문화와 사회의 교차점을 연주하는 웨스턴 뉴잉글랜드 대학의 역사 교수인 존 베이크는 AP통신에 스위프트를 세계 방송 저널리즘 시대를 연 월터 크롱카이트에 비견하며 이렇게 말했다. “스위프트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이름이자 가장 신뢰받는 목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