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들의 집단 유급을 막기 위해 검토되고 있는 국가시험 연기와 1학기 유급 미적용 특례 등이 과도한 ‘의대생 봐주기’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5일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의대생 유급 방지책 일환으로 의사 국시 일정을 미루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앞서 교육부는 전국 40개 의대에 의대생들의 유급 방지책을 제출하라고 요청했고, 이 중 다수 대학들이 오는 9월부터 시작되는 국시 일정 연기를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부터 이어진 의대생들의 수업 거부에 따라 실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국시 실기시험을 치르기 위한 임상실습 시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지난 13일 정례브리핑에서 “대학들이 국시 일정 연기 요청을 많이 했다”며 “검토해서 (필요하다면) 복지부에 협의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대학들은 1학기에만 한시적으로 유급 기준을 적용하지 않도록 특례 규정을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다수의 대학에서는 학칙을 통해 수업 일수의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 결석하면 F학점을 부여하고 있는데, 의대는 한 과목이라도 F학점 처리되면 유급 처분하도록 하고 있다.
의대생 상당수가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해 휴학계를 내고 수업을 거부하고 있어서 출석 미달로 인한 단체 유급 위기가 임박한 상황이다.
이에 일부 대학들은 올해 1학기에 한해 의대생들이 출석 미달로 수강 과목에서 낙제하더라도 유급 처분은 되지 않도록 학칙에 예외 조항을 추가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그 밖에도 집중이수제와 유연학기제 등을 활용해 1학기 의대 수업을 2학기에 진행하는 방안과 학기당 15주씩 진행하는 학기제를 ‘학년제’로 바꿔 고등교육법에서 정하고 있는 최소 수업일수(매학년도 30주 이상)을 연내 확보하도록 유연화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의대생들이 집단 유급 처분되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정부와 대학이 나름의 방안을 강구한 것이지만 ‘의대생 특혜’ 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2020년 의대 증원을 추진할 당시에도 의대생들이 국시를 거부하자 시행령을 바꿔서 재응시 기회를 부여한 바 있다.
당시 의대 본과 4학년 학생 2700여명이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 응시를 거부했는데, 정부는 국시 구제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오다 의료 공백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결국 재응시 기회를 부여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시험 90일 전에 국시 일정을 공고해야 한다’는 시행령 규정에 예외 조항을 추가했고 ‘의대생 특혜’ 논란이 일었다. 당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의사 국시 취소 의대생 구제 반대’ 등 청원 게시글까지 올라왔었다.
이번에도 국시 일정이 연기되면 다른 국가자격시험과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의대생들이 수업을 거부하면서 자초한 유급 상황을 정부와 대학이 나서서 해결해주는 모양새로 비춰질 수 있어 여론의 거부감도 클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교수는 “천재지변이나 감염병 유행과 같이 외부적인 요인 때문에 국시를 연기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 스스로 수업을 거부하면서 발생한 상황이기 때문에 ‘특혜’처럼 비춰질 여지가 있다”며 “비용을 치르더라도 원칙은 지켜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시적으로 유급 미적용 특례를 신설하는 것 역시 대학들이 의대생들을 위해 학칙을 고쳐야 하는 일인 만큼 ‘의대생 봐주기’라는 비판이 일 수 있다.
이미 대학들이 온라인으로 자료만 다운로드 해도 출석으로 인정하는 등 의대 출석 요건을 대폭 완화한 상황에서 ‘학칙까지 고쳐주냐’는 곱지 않은 시선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지난 2020년에 이은 두 차례의 국시 연기 결정이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거꾸로 다른 집단 학생들이 특정 이유로 수업을 거부하고, 그에 따라 국가가 시험을 연기해주는 일이 발생한다고 생각하면, 국가 권력 자체가 무력화할 수 있다”이라며 “좋지 않은 선례를 만드는 일”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국시 연기 등이 의대생 유급을 막기 위한 대책이지, 특혜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교육부는 지난 13일 정례 브리핑에서 “수업을 듣고 싶어도 나오지 못하는 학생들이 피해를 보면 안되기 때문에 법령 범위 내에서 구제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것”이라며 “특혜 시비와는 관계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