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아주 다양한 운명을 타고났다. 고대 이집트 시대에는 신성시되었지만 중세에는 악마의 동물로 여겨져 무참히 희생되기도 했고 그러다가 문학이나 예술의 주제가 되었는가 하면 오늘날에는 소셜 네트워크의 아이콘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해서 ‘고양이는 아홉 개의 목숨을 갖는다’는 속설이 있는가 보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시로 잘 알려진 영국 시인 T.S. 엘리엇에게 또 다른 작품 ‘노련한 고양이들에 관한 늙은 주머니쥐의 책’이라는 모음시집이 있다. 아이들을 위해 썼다는 시들인데 여기에 ‘팬덤 오브 오페라’의 거장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작곡을 해 만든 뮤지컬이 ‘캣츠(Cats)’다.
캣츠는 ‘아홉 개의 새 생명을 갖는다는 고양이’ 전설에 따라 춤과 노래로 여러 고양이들의 독특한 캐릭터와 다양한 삶의 이야기들을 통해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극이다.
여기서 고양이들은 일 년에 한 번씩 도시의 쓰레기장에 모여 ‘최고의 고양이’를 뽑는 무도회를 연다. 여기서 선발되면 하늘나라의 선지자고양이로부터 행복한 새 삶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범죄자 고양이가 지도자 고양이를 납치해 모임을 대혼란에 빠지게 하지만 이를 마법사 고양이가 구출해 내고 이때 유흥가 출신의 늙은 고양이 ‘그리자벨라’가 나타나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내일의 희망을 잃지 않는다’는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지도자 고양이는 그를 새로운 최고의 고양이로 지목한다.
이 때 그리자벨라가 부른 노래가 그 유명한 ‘메모리(Memory)’다. ‘또 한밤이 끝나면/ 새로운 날이 밝아와요/ 나를 어루만져주세요/ 만약 그대가 나를 어루만져 준다면/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될거에요.’ 이 곡은 캣츠를 상징하는 곡으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를 비롯해 100여명이 넘는 가수들이 리메이크했다.
T.S. 엘리엇의 시가 다양한 인간군상을 그린 것이라면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는 그의 시 ‘고양이’ 에서 ‘너의 머리와 부드러운 등을 내 손가락으로/ 한가로이 어루만질 때/ 전율하는 너의 몸을 만지는 즐거움에/ 내 손이 도취할 때/ 내 마음 속의 아내를 그려 보네’라며 여성과 결부시켜 노래했다. 이같은 찬미가는 보들레르 외에도 릴케, 기욤, 오스카 와일드 등 많은 애묘가들이 노래했다.
조선시대 숙종대왕도 애묘가로 유명한 ‘캣 맨(Cat Man)’이었다. 숙종은 후원에서 발견한 고양이를 금덕(金德)이라 이름짓고 키우던 중 새끼를 낳자 금손(金孫)이라 불렀다. 그리고 수라상 고기를 남겨두었다가 주는가 하면 잠자리에 들 때도 곁에 두었다. 그러던 숙종이 세상을 떠나자 금손이는 곡기를 끊고 충성을 보이다가 죽어 숙종의 무덤 근처에 묻혔다고 한다.
숙종의 고모인 숙명공주 또한 지극한 애묘인으로 아버지 효종으로부터 ‘고양이만 품고 살면 어쩌냐’는 책망을 들었다고 하니 그 정도를 가히 짐작할만 일종의 ‘캣 레이디(Cat Lady)’였던 셈이다.
하지만 오늘날 ‘캣 맨’이라하면 멋있게 보는 긍정적인 데 반해 ‘캣 레이디’는 부정적으로 쓰이고 있다. 보통 아이없이 고양이만 키우는 중년 독신여성이라는 뜻의 차별적으로 비하하는 말이다.
이 ‘캣 레이디’가 미 대선에 소환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 밴스가 ‘자녀도 없이 고양이나 키우는 비참한 삶을 사는 여성들이 나라의 미래도 비참하게 만든다’며 해리스 카멀라를 비아냥거린 과거 발언이 미 여성들을 분노케 했다.
그러자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가 고양이를 안고 있는 자신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자식 없는 캣 레이디’라고 적고,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할 것이라고 공개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여성 스스로 임신과 출산을 결정할 수 있다는 ‘생식의 자유’는 대선의 핵심 쟁점으로 이번 ‘고양이 바람’이 해리스에게 어떤 신통력을 발휘할는지 자못 궁금하다.
이전 칼럼 [김학천 타임스케치] 어느 어머니의 추모사
이전 칼럼 [김학천 타임스케치] 더딘 가을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