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란치스코 교황(88)이 21일(현지 시간) 선종했다. 그의 본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Jorge Mario Bergoglio)다. 2013년 제 266대 교황으로 선출돼 12년 재임했다. 가난한 사람들의 벗을 지향했다.
1936년 12월 1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인근 플로레스에서 태어났다. 이탈리아 이주민 가정의 5남매 중 장남이다. 어린 시절 축구와 농구, 영화, 탱고를 좋아했다. 플로레스에 연고를 둔 축구팀 ‘산 로렌소 데 알마그로’를 평생 응원했다.
첫 라틴아메리카 출신…1969년 호르헤 베르고글리오 신부 서품
화학 기술을 배우다가 1956년 신학교에 입학해 1969년 사제 서품을 받고 ‘호르헤 베르고글리오 신부’가 됐다. 1973년부터 1979년까지 예수회 아르헨티나 관구장을 맡았다.
1980년대 중반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1992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 보좌주교가 됐다. 199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을 거쳐 2001년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추기경에 서임됐다.
아르헨티나 시기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빈민가, 교도소, 병원, 노동조합의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의 어려움을 듣는 데 주력했다. 고위 사제가 되겠다는 뜻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주교 관저와 전용차량 거부…대중교통으로 출퇴근
주교가 된 뒤에는 주교 관저와 전용 차량을 거부했다고 한다. 자신의 소형 아파트에서 밥을 해먹고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동성결혼과 미혼 출산에 찬성하지 않았으나 가톨릭이 동성애자와 미혼모를 차별하는 것을 비판했다. 교리에 얽매이기보다는, 원칙을 따르되 소외된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주(駐)교황청 대한민국대사관은 “신학적 측면에서 낙태와 안락사, 동성결혼에 반대 입장을 고수하는 보수주의자로 평가되지만 동성연애자 차별이나 미혼모에 세례를 거부한 신부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등 진보적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고 평가했다.
한편 그가 ‘더러운 전쟁(1976년~1983년 호르헤 비델라 군사정권이 자행한 국가폭력, 최대 3만명 피살 추정)’ 시기 군부독재에 맞서 싸우지 않았다는 아르헨티나 국내 비판이 있다.
특히 예수회 관구장이던 1976년 군사정권이 예수회 신부 2명을 납치해 고문한 사건을 방조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다만 당시 군부에 쫓기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하고 숨겨줬다는 증언도 다수 있다.

2013년 콘클라베서 다섯 차례 투표…제 266대 교황 선출
2013년 3월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전격 사임으로 소집된 콘클라베에서 다섯 차례 투표 끝에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됐다.
전통 보수 색채가 강했던 베네딕토 16세의 뒤를 상대적으로 진보 색채를 띤 비유럽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은 일은 영화 ‘두 교황’으로 제작됐다.
그는 선출 직후 “가난한 사람들을 잊지 마시라”는 브라질 상파울루 대교구 클라우디오 우메스 추기경의 제언을 듣고 교황명을 프란치스코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란치스코는 13세기의 성인(聖人)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를 본딴 이름으로, ‘빈자의 성인’으로 기록된 인물이다. 프란치스코가 교황명으로 쓰인 것은 가톨릭 역사상 최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이민자와 난민 위한 목소리 내
교황 프란치스코는 이민자와 전쟁 난민을 위한 목소리를 냈다.
외신에 따르면 그는 지난달 현지 출간된 자서전 ‘희망’을 통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조부와 아르헨티나로 건너온 이민자인 부친 등 자신이 전쟁과 이민자에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된 내력을 설명했다.
2013년 9월 미국이 사린가스를 쓴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공습하기로 결정하자 금식기도를 하면서 막아섰다. 미국은 공습을 이듬해 단행했다. 2015년 내전 중인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해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화해를 기도했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하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나 평화적 해결을 요구했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양측에 특사를 보내며 중재에 나섰다. “백기를 들 용기가 더 강하다”는 발언으로 우크라이나의 반발을 샀다. 2024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공격하자 “제노사이드 여부를 조사해야 한다”고 규탄했다.

Going to very hard to tell what’s real and what’s fake moving forward.
지난달 자서전 ‘희망’ 출간…전쟁과 이민자 관심 설명
부익부 빈익빈의 경제적 계층화를 심화시킨다는 점에서 현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를 강하게 비판했다. 2014년 8월 성모승천대축일 강론에서 “부당한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라”고 했다.
그는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모델들을 거부하라.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현대에 맞게 고치면 ‘경제적 살인을 하지 말라’가 된다”는 말을 남겼다.
종교간 벽 허물기를 시도했다. 2016년 2월 러시아정교회 수장인 키릴 총대주교를, 5월에는 이슬람 수니파 최고지도자 셰이크 아흐메드 알타예브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 우크라이나가 2024년 러시아정교회 유관 단체를 법으로 금지하자 “종교의 자유 침해”라고 비판했다.
늑막염 기관지염 폐렴 신부전증…건강 악화
77세에 교황에 취임해 12년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으나 고령으로 건강이 점차 악화됐다.
그는 21세에 늑막염으로 폐를 일부 절제한 이후 호흡기 기능이 저하된 채 평생을 살았다. 건조한 겨울철마다 기관지 염증을 앓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2월14일 ‘다균성 호흡기 감염’ 진단을 받고 로마 제멜리 종합병원에 입원했고, 추가 검진 결과 양쪽 폐에 폐렴이 추가 확인됐다. 신부전증도 나타났다.
병상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3년을 맞아 “모든 인류에 고통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라는 기도문을 발표했고, ‘빈자들의 의사’로 불리던 베네수엘라의 호세 그레고리오 에르난데스를 시성(施聖·성인으로 정함)하기로 했다.
고비를 넘기고 입원 38일 만인 3월 23일 퇴원했다. 20일 부활절 미사에 등장해 “가자지구 상황이 개탄스럽다”는 메시지를 냈다. 같은 날 JD 밴스 미국 부통령을 만나 이민자를 포용해달라고 당부했다. 부활절인 20일 잠시 대중에 모습을 보였던 교황은 21일 아침 7시35분 선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