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이민자 단속 여파로 노동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불법 체류 이민자가 급격히 줄면서 고용 지표에도 이상 신호가 포착되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 노동부에 따르면 3~5월 사이 노동시장에 있거나 구직 중인 외국 출생 인구는 약 100만명 감소했다고 10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불법 체류 이민자를 고용하는 업체들이 노동부 조사를 꺼리는 경향이 있어, 실제 이탈 규모가 통계에 정확히 반영되긴 어렵지만, 이민 단속 강화로 불법 체류자들이 노동시장에서 이탈하는 신호란 해석이 나온다.
미 노동부가 발표하는 월간 일자리 보고서는 불법 체류 이민자 고용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다. 노동부는 보고서 작성 시 사업체(고용주)와 가구(가정)를 대상으로 한 조사 내용을 활용하는데 고용 증가 수치를 산출하는 사업체 조사에서는 근로자의 체류 자격(합법 여부)을 묻진 않는다. 그런 만큼 비공식적으로 고용한 직원이 있는 기업들은 정확히 답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또 이 조사에서는 불법체류 노동자가 많은 농업 노동자나 가사 노동자를 포함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 시절 상무부 경제차관을 지낸 경제학자 제드 콜코에 따르면 지난해 여름부터 미국으로 들어오는 이민자 수가 줄면서 이러한 업종의 고용 증가 속도도 다른 민간 부문보다 더 느려졌다. 콜코는 “올해 이민 정책의 영향이 아직 본격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노동부의 또 다른 조사인 가구 조사에서는 실업률 등 다양한 고용지표가 산출된다. 이 조사 역시 이민자 신분에 대해 묻지 않지만, 응답자가 미국 출생인지 여부는 질문한다. 모든 응답은 비밀로 보장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많은 불법 체류자들은 여전히 조사 참여를 꺼리고 있다. 최근 그 경향이 더욱 두드러졌는데 실제로 최근 이민자들의 조사 응답률은 올해 들어 감소했다.
골드만삭스는 “강경한 이민 단속 분위기 속 많은 불법 체류자가 출근조차 꺼리고 있어, 설문에서 누락됐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용주도 불안…이민자 이탈에 시장 충격
이민은 미국 노동시장에 중요한 인력 공급원이다. 최근 몇년간 불법 이민이 급증하면서 그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가 지난해 말부터 국경 통제를 강화하면서 이민자 유입은 줄기 시작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임 이후엔 급감했다. 또 직장 내 단속이 증가하면서 일부 이민자들은 아예 출근 자체를 두려워하는 상황이다.
시카고대 이민자 권리 클리닉의 니콜 할렛 교수는 “새로운 정책으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지가 줄자 많은 이들이 조용히 노동시장에서 빠져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이민자 고용에 의존하는 업계는 타격을 우려한다. 고용주 입장에선 기존의 숙련된 직원을 잃으면 재교육과 대체 인력 채용에 더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망명 신청자 단체 ASAP의 콘치타 크루즈 대표는 “이 순간의 불확실성은 이민자들뿐 아니라 고용주들도 느끼고 있다”며 “노동계와 기업계가 같은 입장을 공유하는 드문 사례”라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회사 UBS는 최근 청소년 실업률이 13%에서 13.4%로 상승한 점에 주목했다. 청소년층은 이민자들과 경쟁하는 업종에서 주로 일하기 때문에 이민자 수가 줄면 실업률이 낮아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오히려 실업률이 올랐다는 것은 이민자들이 차지했던 일자리를 다른 노동력으로 대체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이민자에 대한 노동시장 수요가 상당했음을 보여준다.
이민 단속으로 인한 노동시장의 충격이 본격적으로 통계에 반영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미 노동부 통계는 매달 중순을 기준으로 수집되기 때문에 5월 고용지표에는 5월 말 이후 시작된 강경 단속이 아직 반영되지 않았다. 다음 달 3일 발표 예정인 6월 고용보고서에는 이번 이민 단속의 영향이 명확히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