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연합(EU)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 장기화에도 불구하고, 인권 존중 조항이 포함된 ‘EU-이스라엘 무역협정’에 따른 대(對) 이스라엘 제재를 보류한 데 대해 국제 인권기구가 강하게 비판했다.
가디언 등에 따르면 아녜스 칼라마르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은 16일(현지 시간)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이 협정 조건에 따른 인권 의무를 위반하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협정을 중단하지 않은 것은 국제법을 수호하고 권위주의에 맞선다는 유럽과 EU의 원칙, 그리고 팔레스타인인의 인권을 잔혹하고 불법적으로 배신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EU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아닌 무역 협정 유지를 선택했다”며 “EU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순간”이라고 규탄했다.
휴먼라이츠워치(HRW)의 클라우디오 프랑카빌라 주(駐)EU 국장 대행도 성명을 내고 “이스라엘에 책임을 묻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트럭 몇 대를 더 보낸다는 허황된 약속만 내세웠다”며 “EU가 또다시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앞서 EU는 1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27개국 외무장관 회의 후 “이스라엘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행동에 나설 준비가 돼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통제는 ‘인권 존중·민주주의 원칙 기반 관계’를 규정한 EU-이스라엘 협정 2조 위반이라고 봤지만, 이에 따른 협정 중단이나 대이스라엘 제재를 언급하지 않은 채 원론적 입장만 낸 것이다.
외신에 따르면 EU-이스라엘 협정 중단을 명시적으로 주장하는 국가는 스페인뿐이고, 독일·헝가리·체코 등 다수 회원국은 대이스라엘 제재에 반대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는 강하게 반발했다. 아가베키안 샤힌 PA 외무장관은 유로뉴스에 “EU 보고서에는 이스라엘의 협정 위반 사례 38건이 적혀 있다”며 “모든 것이 명백하게 드러나는데도 충격적이고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반면 기드온 사르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소셜미디어 엑스(X·구 트위터)에 “EU 여러 국가들은 이스라엘 제재라는 강박증을 떨쳐냄으로써 큰 외교적 업적을 달성했다”며 감사를 전했다. 그러면서 “자위권을 행사하는 민주주의 국가에 제재를 가하는 시도 자체가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