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5년 남북전쟁이 끝나고 남부에서 재건 사업이 시작되면서 연방군이 군사력을 동원해 선거 감시, 법 집행 등 민간치안에 관여하자 남부 정치인들이 ‘연방정부의 과도한 개입’이라며 크게 반발함에 따라 당시 헤이즈 대통령과 민주당 사이의 타협으로 연방군이 철수했다.
이후 남부 정치권은 다시 주정부를 장악했고 북부의 군대 개입에 대한 반감이 법제화로 이어져 1878년 의회는 ‘포세 코미타투스 법(Posse Comitatus Act)’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연방정부가 육군과 공군을 국내 치안유지에 사용하는 것을 제한한다. 즉, 연방군이 일반 경찰처럼 시민을 단속하거나 법 집행에 개입하는 것을 막는 것으로 민주주의에서 군의 정치적 중립성과 시민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단, 해군과 해병대는 이 법의 직접적인 적용을 받지 않고 국방부 지침에 따른다.
이에 따라 연방군은 민간 치안 업무에 개입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군은 전장에서 싸우는 것이지, 시민들을 순찰하는 조직이 아니란 것이다. 그렇다고 ‘포세 코미타투스 법’이 단순히 ‘군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법’이 아니라 군대와 국가, 시민과 자유 사이에 선을 긋는 제도적 장치인 것이다. 말하자면 ‘군은 국민을 지키되, 통제하지 않는다’란 셈이랄까.
헌데 지난 달 초 국방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단속에 항의하는 시위가 격화되자 주 방위군 4000명과 해병대 700명을 투입했다. 이는 과거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 대통령이 민권 운동 행진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군대를 파견한 유사한 조치가 취해졌던 이후 처음으로 주지사의 허가 없이 주방위군을 투입한 사례가 되었다.
이런 ‘포세 코미타투스 법’이 군의 국내개입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법이라면 그 예외를 규정하는 법으로 1807년에 제정된 ‘내란법(Insurrection Act)’이 있다. 즉, 내란법은 포세 코미타투스 법을 일시적으로 무효화시킬 수 있는 법적 근거로써 대통령이 특정 조건 하에 군대를 국내에 투입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이 법은 이를테면 폭동, 반란, 또는 주 정부가 법과 질서를 유지하지 못하거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시민의 보호가 필요할 때 대통령은 이 법을 근거로 해서 군을 동원해 질서를 회복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일례로 허리케인 카트리나 당시, 루이지애나 주가 요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방군 투입이 지연되었으며 1992년 LA 폭동 때는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요청하여 내란법에 따라 군이 투입되었다. 이는 미국의 민간 통제 원칙과 비상사태 대응 사이의 균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랄 수 있다.
이렇듯 내란법과 포세 코미타투스 법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지만 각각의 목적과 내용은 다른데 그 관계에 있어 포세 코미타투스 법이 ‘위반했느냐’보다는 ‘한계선을 넘었느냐’를 두고 논쟁이 많이 일어나듯 두 법 사이의 관계에는 복잡한 법적 쟁점이 제기되고 있으며 현재 법원에서 이에 대한 판단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더 나아가 근래에 와서는 사이버전이나 드론과 감시 기술, AI와 데이터 분석, 자동화 치안 그리고 국토안보부(DHS)와 군의 경계가 애매해짐에 따라 더욱 더 복잡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기술이 달라져도 원칙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견해와 ‘군은 물리적으로만 개입하면 안 된다는 해석이 너무 구시대적이고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등 논쟁이 따르고 있다.
엊그제 이민 단속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로 한 달 넘게 LA에 주둔 중이던 주 방위군 중 절반이 철수한다고 국방부가 밝혔다.
하지만 어쩐지1878년 워싱턴 DC에서 군대와 국가, 시민과 자유 사이에 그어 놓았던 법체계의 선이 2025년의 LA에서 흐려지는 것을 보는 게 아닌 가하는 우려를 지워 버릴 수 없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