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여권의 ‘글로벌 파워’가 20년 만에 처음으로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14일 미국 매체 CNN에 따르면 헨리 여권지수(Henley Passport Index)에서 미국이 집계 20년 역사상 처음으로 톱10 밖으로 내려앉았다. 이번 순위는 올해 4분기(10월) 기준으로 산정됐다.
헨리 여권지수는 영국 컨설팅기업 헨리앤파트너스(Henley & Partners)가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데이터를 바탕으로 매 분기 발표하는 글로벌 지표다. 세계 각국 국민이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는 국가 수를 기준으로 여권의 ‘이동성’을 평가한다.
이번 조사에서 1위는 193개국에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싱가포르, 2위는 190개국의 한국, 3위는 189개국의 일본이 차지했다. 상위권은 모두 아시아 국가들이 휩쓴 셈이다.
미국은 180개국 무비자 입국이 가능해 말레이시아와 함께 공동 12위에 머물렀다. 헨리 지수 집계가 시작된 이래 가장 낮은 순위다.
CNN은 “2014년까지만 해도 세계 1위였던 미국 여권의 파워가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것은 상징적”이라며 “브라질의 미국 무비자 정책 철회, 중국의 유럽국가 대상 무비자 확대 등이 미국의 순위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파푸아뉴기니와 미얀마의 비자 정책 변경, 소말리아·베트남의 미국 대상 무비자 제외 조치 등도 미국 여권의 입지를 약화시킨 요인으로 꼽혔다.
헨리앤파트너스의 크리스티안 캘린 회장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여권 파워의 하락은 단순한 순위 변동이 아니라 세계 이동성과 소프트파워의 흐름이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다른 나라와의 협력과 개방성을 확대해온 국가들은 순위가 상승한 반면, 과거의 특권에 의존해온 나라들은 뒤처지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한편 유럽권 국가들의 여권은 여전히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 독일·이탈리아·스페인·스위스가 188개국에 무비자 입국이 가능해 공동 4위, 프랑스·네덜란드·아일랜드 등도 5위권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