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가 미국이 수십 년에 걸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 개발한 디지털 전투체계를 단기간에 거의 비용을 들이지 않고 구축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3일 보도했다.
위성 통신과 맞춤형 소프트웨어로 드론 및 전투기와 각종 무기체계를 연동하면서 우크라이나군은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작전을 조율하고 공격의 정확성을 높였다. 덕분에 우크라이나군은 병력과 장비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기동성이 떨어지는 러시아군에 연이은 패배를 안길 수 있었다.
기성품으로 얼기설기 만들어낸 우크라이나군 시스템은 ‘네트워크 중심전(network-centric warfare)’을 수행하는 미군의 최첨단 디지털 작전체계와는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과 동맹국들의 디지털 작전 체계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가 가상 지휘통제 시스템을 구축한 과정은 서방에 큰 교훈이 된다고 말한다. 특히 각종 실험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민간인을 참여시키는 방식이 주목된다.
2014년부터 미군과 함께 우크라이나군 개혁에 참여해온 글렌 그랜트 영국군 예비역 중령은 “우리는 충분히 혁신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관료주의적인 서방 군대가 “너무 느리고 굼떠서” 신기술을 전장에 신속하게 적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기술 인력들이 디지털 시대에 맞는 최신 게릴라 전쟁 기술을 개발했다. 게릴라들은 대나무 폭탄과 화염병 등 임시방편으로 필요한 무기를 만들어내는데 능하다. 우크라이나의 민간 기술자들과 해커들은 암호화 메신저 시그널(Signal)과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사 통신망을 연결했고 모바일 앱, 3D 프린터, 맞춤형 드론을 개발했다.
미하일로 페도로우 우크라이나 디지털전환부 장관은 지난 주 “적은 20년 동안 전면 기술 전쟁을 준비했지만 우리는 10달 만에 기술적 도약을 이뤘다”고 트윗했다.
우크라이나 기술자들은 상업용 드론에 수류탄을 실어 투하할 수 있게 개조했고 다국적 기업의 인력관리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경험이 있는 자원병이 최전방 군인 보수 지급 자동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중기관포 등을 탑재할 수 있는 원격 조정 전기자동차를 만든 우크라이나 기업도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사용하는 델타 시스템은 드론과 현장 목격자로부터 수집된 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체계로 우크라이나 프로그래머들이 만든 것이다.
우크라이나군 연대 소속으로 군사기술개발을 책임지는 로만 페리모우는 “우크라이나군은 생생한 경험을 가진 최첨단 네트워크 군대”라고 말했다. 그의 팀은 드론 전파방해 장비와 군인들이 전투 중에도 충전 없이 장시간 사용할 수 있는 값싸면서 성능이 우수한 배터리 장치를 만들었다. 그는 “드론 500대를 띄우는 군사 작전을 크게 어렵지 않게 펼 수 있다”며 “전에 없던 일”이라고 했다.
값싼 드론과 드론 요격 무기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가장 혁신이 많이 이뤄진 분야다.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 모두 소형 민간 드론을 개조해 정찰과 공격에 활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3D 프린터로 민간 드론에 수류탄을 장착할 수 있는 플라스틱 장치를 찍어낸다. 이 장치에 빛 센서가 장착돼 있어 빛이 감지되면 드론 조종사가 원격으로 수류탄을 떨어트리도록 작동한다.
페리모우는 “드론을 크게 개조하지 않았지만 차량을 파괴하고 2~3명을 살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팀은 현재 정찰과 전장 통신에 활용할 수 있는 성층권 기구 장치를 개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혁신에 성공한 비결은 우크라이나군 기술진과 우크라이나 기업들이 실리콘 밸리 벤처기업들처럼 자발적으로 협력하는데 있다.
예비역 미 특수부대 장교출신으로 미군을 상대로 현장에 맞춰 즉각 대처하는 “맥가이버 방식” 훈련을 실시하고 있는 브래드 핼시는 미군의 경우 계약 체결조차 빨리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군처럼 변화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의 한 군수기업은 원격통제 전기지상전투차량을 개발하기도 했다. 또 수많은 신병들의 월급을 지불하는 인력관리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회사는 전투 장비 재고 관리 프로그램을 추가로 개발해 월급 프로그램과 통합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도 기술 혁신에 적극적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기준에 맞춰 개발했으나 거의 사용되지 않던 전장상황 표시 장치 델타를 정비해 활용하고 있다. 드론 및 위성으로 파악한 정보와 일반 시민들이 활용하는 “러시아를 막자”는 이름의 챗봇 정보를 통합한 것이다. 델타는 노트북이나 태블릿으로 접속할 수 있어 거의 모든 전장에서 활용할 수 있다.
임시방편으로 돈들이지 않고 개발된 델타는 서방이 많은 노력을 기울여 개발한 지휘관, 전투원, 무기, 정보를 통합하는 디지털 복합 장치와 유사한 성능을 발휘한다.
한편 우크라이나군 기술이 발전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로 수천 개의 인공위성과 연결된 스페이스X사의 통신장치를 전쟁 초기부터 지원받은 점이 꼽힌다. 우크라이나의 거의 모든 부대가 이 장치를 상자나 쓰레기통에 담아 쓰고 있다. 러시아군 드론에 포착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