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침공 이후 2년 넘게 지속된 전시 체제 속에서 처음으로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독주에 공개 반기를 들었다.
계기는 젤렌스키가 22일(현지시간) 반부패 기구의 독립성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법안에 서명한 것이다. 키이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에서는 수천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권력은 민중에게 있다”고 외쳤다.
이번 시위는 2022년 2월 전면전 이후 처음으로 발생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젤렌스키 정권의 도덕성과 권력 집중에 대한 내부 비판이 전시 상황 속에서도 더 이상 억눌러지지 않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문제의 법안은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이 국가반부패국(NABU)과 반부패특별검사실(SAPO)에 대한 감독권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수사 재지정, 사건 이관 등의 권한을 검찰총장에게 부여해 사실상 대통령 직속의 권력 구조로 만들 수 있는 조항들이다. 젤렌스키는 의회 통과 직후 이 법안에 서명했다.

이에 시민들은 ‘반부패 기구 손 떼라’, ‘민주주의를 죽이지 마라’는 구호를 외치며 강하게 반발했다. 키이우 대통령 집무실 인근 이반프랑코 극장 앞에는 수백 명이 모였고, 리비우, 드니프로, 오데사 등에서도 자발적인 집회가 잇따랐다. 전쟁 중 포로 송환이나 실종자 문제를 둘러싼 시위는 있었지만, 국가 정책 전반에 반대하며 대통령의 권력 남용을 규탄하는 시위는 이번이 처음이다.
참전 용사이자 두 다리를 잃은 올렉 심오로즈는 휠체어를 타고 시위에 나와 “헌법을 지키겠다고 맹세한 이들이 지금은 측근 보호에만 몰두하고 있다”며 “이는 민주주의의 희생”이라고 비판했다. 활동가 이고르 라첸코우도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권력자의 부패는 패전의 지름길”이라고 경고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최근 내각 개편에서도 측근들을 요직에 기용하며 전시 상황을 명분 삼아 권력 강화를 꾀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번 법안 서명과 이에 따른 시민 시위는 젤렌스키가 ‘전시 리더십’을 넘어 ‘독재 체제’로 기울고 있다는 국내 여론의 경고장이다.
AP통신은 “우크라이나는 두 차례 혁명을 통해 권력을 교체한 경험이 있는 나라로, 시위는 이미 전통적인 저항 수단”이라며 “전시 상황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권력의 균형을 요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에서 ‘젤렌스키의 민주주의’가 어디까지 후퇴할지, 그리고 시민들의 저항이 향후 정국에 어떤 파장을 낳을지 주목된다.
K-News LA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