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60년대 프랑스 누벨바그(Nouvelle Vague)의 정점이자 최전선, 영화 혁명가로 불리며 영화 예술을 극한으로 밀어붙였고 이를 통해 현대 영화의 아이콘이 된 프랑스 거장 장 뤼크 고다르(Jean-Luc Godard·92)가 13일 세상을 떠났다.
리베라시옹 등 복수 프랑스 언론은 일제히 이렇게 전했다. 고다르의 가족은 성명서를 내고 “그가 스위스 홀르(Rolle)에 있는 집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고다르는 합법적인 안락사(assisted suicide)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최근 고다르의 건강 상태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고다르는 프랑수아 트뤼포, 클로드 샤브롤, 아녜스 바르다, 에릭 로메르 등과 함께 프랑스 누벨바그를 이끌었다. 단순히 이야기를 실어나르는 도구로서 영화를 혁파하고 영화만의 예술 언어를 만들기 위해 일생을 바친 시네마의 화신이었다.
누벨바그의 마지막 생존자였던 고다르가 세상을 떠나면서 영화계에 작가주의라는 말을 탄생시킨 위대한 시대가 완전히 막을 내렸다. 프랑스 언론은 물론이고 영국·미국 등 전 세계 언론은 고다르 사망 소식 전하면서 “가장 위대한 영화 예술가가 떠났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 감독이 사망했다” “가장 혁신적이었던 시네마 혁명의 기수가 별세했다” “그는 존 레넌과 체 게바라에 비견될 만하다” “영화감독과 배우를 초일류 예술가의 반열에 올린 혁명가였다”고 전했다.
1930년 생인 고다르는 누벨바그의 진원지가 된 영화 평론지 카예 뒤 시네마에서 평론가로 활동하며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30살이던 1960년 ‘네 멋대로 해라'(원제:Breathless)를 통해 본격적으로 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 작품은 영화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데뷔작으로 불린다. 영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지만 끝까지 본 사람은 거의 없다는 우스개소리가 있을 정도로 영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기도 하다.
고다르 영화는 촬영, 사운드, 조명, 내러티브, 각본, 연기 등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재정의했다. 일례로 ‘네 멋대로 해라’는 한 남자가 어느 여인과 달아났다는 아주 기본적인 서사 외에는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형태로 전개된다. 각본 없이 찍는 걸로 유명했고, 논리적 연결이 없는 점프컷을 자주 쓰며, 핸드헬드 방식으로 찍는 것으로 잘 알려졌다. 배우가 카메라에 대고 관객에게 말을 하거나 정제된 소리를 영화에 담는 대신 주변의 소음을 일부러 집어넣은 사운드 사용 방식을 쓰기도 했다. 예술영화라는 게 따로 있다면, 그것 자체가 고다르였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대표작은 ‘여자는 여자다'(1961) ‘비브르 사 비'(1962) ‘기관총 부대'(1963) ‘경멸'(1063) ‘미치광이 피에로'(1965) ‘중국 여인'(1967) 등이 있다. 고다르는 2014년 ‘언어와의 작별’로 칸국제영화제에, 2018년엔 ‘이미지 북’으로 또 한 번 칸에 초청받으며 말년까지 왕성한 활동을 했다. 그는 2년 전까지도 각본을 쓴 것으로 전해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트위터에서 “프랑스의 보물을 잃었다”며 “누벨바그 감독 중 가장 우상 파괴적인 인물이었다”고 애도했다. 티에리 프레모 칸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고다르의 사망에 “슬프고 슬프다. 고다르의 사망은 엄청난 슬픔”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