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올해 유로화는 달러 대비 11% 넘게 오르며, 유로당 1.18달러로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기간 유로화는 일본 엔화, 영국 파운드, 캐나다 달러, 한국 원화 등 주요 통화 대비로도 강세를 보였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우리는 지금 세계 질서의 근본적 변화 한가운데에 있다”며 “개방된 시장과 다자간 규범이 균열을 일으키고 있고, 세계 금융 시스템의 주춧돌인 달러의 지배적 역할조차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동안 세계 각국의 정부, 중앙은행, 투자자들은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미국 국채 등 달러화 자산을 선호해 왔다. 덕분에 미국 정부는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고, 미국 소비자들은 높은 구매력을 누릴 수 있었다.
반면 유로화는 국제 거래나 보유 통화 비중 면에서 달러에 비해 한참 뒤처져 있었지만, 최근 주요 교역 상대국 통화 대비 사상 최고 수준에 근접하면서 상황이 반전되고 있다.
다만 유로화 강세가 반드시 호재는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유럽으로 자금이 몰리고 독일 국채 등 유로화 자산 수요가 급증하면서, 일부 경제학자들은 유로 강세가 수출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미 트럼프발 관세 정책으로 유럽 기업들은 가격 경쟁력을 잃은 데다, 중국 기업과의 치열한 경쟁까지 겹쳐 유로화 강세는 수출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은행 크레디 아그리콜의 외환 전략가 발렌틴 마리노프는 “유로화 강세가 계속되면 오히려 유로존 경제에 부정적”이라며 미국의 관세 정책과 유럽 내 정부의 수입 확대 기조가 맞물려 수출 둔화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ECB는 오히려 지나치게 낮은 물가 상승률을 우려해야 할 처지다. ECB는 내년 물가 상승률을 1.6%로 전망하는데, 이는 목표치인 2%를 크게 밑돈다. 유로화 강세는 수입품 가격을 낮춰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ECB는 이번 주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보이지만, 시장에서는 경기 전망이 악화하거나 유로 강세가 지속되면 연내 추가 인하 가능성도 나온다. 일반적으로 금리 인하는 통화 가치를 낮추는 요인이지만, ECB는 지난 1년간 금리를 8차례나 인하하는 동안에도 유로화 강세를 유지해 왔다.
루이스 데 긴도스 ECB 부총재는 “유로화가 1.20달러를 넘어서면 상황이 매우 복잡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로화를 둘러싼 전망은 엇갈리고 있다. 블룸버그가 조사한 애널리스트들은 유로화가 내년 1.21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보지만, 마리노프는 “시장 기대가 지나치다”며 유로화가 다시 1.10달러 선으로 하락할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올해 유로화 랠리가 통화 지형의 구조적 변화로 이어질 것으로 보기엔 아직 이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에서 유호화 비중을 늘리거나, 유로화 기반의 국제 거래를 확대하는 데 여전히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라가르드 총재는 “글로벌 유로화를 실현하려면 단지 상황에 기대선 안 된다”며 “유럽 경제의 분절화 해소, 거버넌스 통합, 자본시장 강화 등 구조적인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일은 스스로 획득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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