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도 전기도 상수도도 도로명도 없는 ‘슬랩 시티’ 황량한 사막에 널브러진 콘크리트 조각과 폐차뿐
주민 “슬랩 시티는 어느 정도 안정성을 제공한다” 노인들은 범죄의 표적이 되지만 신고 할 수 없어
법이나 제도가 확립되지 않고 질서가 없는 세상. 마약 복용·살인·절도 등 각종 범죄가 일어나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으며, 병에 걸려도 그 누구도 치료해 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런 도시를 ‘무법 도시’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영화에서나 있을 것 같은 곳이 현실에도 존재할까.
튀르키예 출신의 다큐멘터리 유튜버 루히 체네트는 지난 5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무법 도시에서 48시간 살아남기: 슬랩 시티’라는 제목의 영상을 게재했다. 영상에는 체네트가 현실판 ‘무법 도시’라 불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슬랩 시티’를 방문해 그곳 주민들과 만나는 모습이 담겼다.
체네트는 “전 세계 마지막 자유로운 곳으로 알려진 ‘슬랩 시티’는 법도 전기도 상수도도 도로명도 없는 캘리포니아 사막 한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주 중 하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슬랩 시티’는 미국 전역의 노숙자나 모험가들을 끌어들였다”고 말하며 ‘슬랩 시티’에 발을 들였다.
그가 방문한 ‘슬랩 시티’의 전경은 황량한 사막에 널브러진 콘크리트 조각과 폐차들뿐이었다. 삶에 필요한 기본적인 조건들조차 갖춰지지 않아 사람이 살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이어 체네트는 ‘슬랩 시티’의 한 주민 남성을 만났다. 남성은 체네트를 만날 때부터 한 손에 맥주병을 들고 있었다.
이 주민은 “내 삶은 너무 우울하다. 누군가 2주 전에 내 고양이를 훔쳐 갔다”며 “4개월 전에는 차도 샀는데, 이미 누군가 후미등을 부쉈다. 바퀴도 몇 개 구멍 났다. 또 좌석 2개를 불태우기도 했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남성은 ‘슬랩 시티’에 온 이유에 대해 “그냥 다른 곳에서는 내 땅을 가질 수 없었다. 20년 동안 노숙했다”며 “슬랩 시티는 어느 정도 안정성을 제공한다. 그때부터 노숙을 멈췄다”고 밝혔다.
이어 체네트는 그 남성과 함께 차를 타고 ‘슬랩 시티’에 사는 다른 주민들도 만나러 갔다. 음주 운전도 하고, 총을 챙기는 것을 깜빡했다는 남성의 언행에서 법의 통제력이 이 지역에 제대로 미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슬랩 시티’에 살고 있는 모든 주민이 범죄를 저지르며 사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범죄의 표적이 됐지만 이 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 노년 남성은 “로스앤젤레스에서 노숙하면 관광객들이 그들을 깔본다. 그 사람들은 여기 나와 살 수 있는데, 왜 그렇게 사는 것인가”라며 자신이 ‘슬랩 시티’에 살고 있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슬랩 시티’에서 가장 마음에 안 드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낮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이다. 난 그걸 ‘쇼핑’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낮에 물건을 봐뒀다가 저녁에 훔치려 하기 때문이다. 또 늙은 사람은 쉽게 표적이 되기도 한다”고 답했다.
늘 범죄의 표적이 되는 게 그의 현실이지만, 되려 경찰에 신고하면 그 자신이 잡혀갈 위험도 있다고 한다. 경찰은 그들이 ‘슬랩 시티’ 밖으로 나오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슬랩 시티’의 전역이 모두 험악하고 황량한 것은 아니다. ‘슬랩 시티’에는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관광 명소도 있다. 바로 ‘슬랩 시티’ 예술의 성지라 불리는 ‘이스트 지저스’와 ‘샐배이션 마운틴’이다.
사람들은 이 두 곳에서 여러 예술 작품과 히피(탈사회적 행동을 하는 사람들)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슬랩 시티’는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남부에 존재하나 지도 상에는 기록되지 않은 곳으로 유명하다. ‘슬랩 시티’의 슬랩(Slab)은 흔히 단열재인 ‘슬라브’에 도시(City)를 붙여 지어진 이름이다. 즉 ‘슬랩 시티’는 무허가 빈민촌을 의미하는 일종의 ‘판자촌’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