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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리비에라 컨트리클럽. 매년 초봄이면 이곳에서 펼쳐지는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은 단순한 골프 대회를 넘어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보여주는 상징적 무대다.
올해 대회도 예외는 아니다. 대회 장소가 산불 피해 때문에 샌디에이고 소재 토리 파인스 골프 클럽으로 바뀌었지만, 현대차그룹의 존재감은 여전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이번 대회 경기를 관람하며 자연스럽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와 대화를 나눴다.
트럼프 주니어는 부친의 재선 캠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 등 현대차그룹과 트럼프 행정부 간 가교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장면은 우연이 아니다. ‘필드에서 답을 찾는다’는 현대가(家)의 경영 방식은 1세대 창업주 정주영에서 시작해 2세대 정몽구, 그리고 3세대 정의선 회장까지 흐르고 있어서다.
“골프장이 곧 회의실”
1980년대 들어 기업인들의 만남은 호텔이나 사무실이 아닌 필드 위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골프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축구공을 찰지언정 골프채를 잡는 일은 드물었다.
그러나 사업적 감각이 남달랐던 정주영 회장은 필드에서 얻을 수 있는 실리를 놓치지 않았다. 지천명(50세)을 넘긴 나이에 처음 골프를 배운 것으로 알려진 그는 남들처럼 스코어를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골프를 사업을 위한 네트워크의 장이자, 중요한 계약이 오가는 회의실로 활용했다.
당시 정 회장은 골프장에서 사업 이야기를 하면 상대가 더 쉽게 설득된다’는 점을 간파했다. 골프라는 운동을 통해 비즈니스를 더 유리하게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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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회장의 뒤를 이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은 골프를 보다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그는 골프보다 등산을 즐겼지만, 필드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룰을 지키는 스포츠’라는 점을 마음에 들어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정몽구 명예회장의 골프와 관련된 일화에서 잘 드러난다.
어느 날 미국 앨라배마 현대차 공장 주재원들과의 만찬 자리가 소란스럽게 끝나자, 정몽구 회장은 다음 날 꾸중을 하는 대신 모두 골프를 치도록 했다. 자신에게 엄격한 골프를 통해 스스로 돌아보고, 룰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골프를 즐기는 정의선
현대차그룹을 세계 톱3 자동차 회사로 끌어 올린 정의선 회장은 할아버지처럼 골프를 네트워크 구축의 장으로 활용하면서도, 진심으로 즐기는 모습이다. 평소 임원들과도 자주 골프를 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쁘지 않을 때면 부인과 함께 매주 9홀을 돌며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찾는 것으로도 전해진다.
정 회장은 특히 골프를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이며 브랜드 마케팅과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이번 트럼프 주니어와의 골프 회동도 미국 현지 사업을 위한 인맥 형성 차원으로 해석된다.
정의선 회장이 주도해 만든 제네시스 브랜드는 미국과 영국 등에서 각각 세계 최고 수준의 골프 대회를 후원하며 글로벌 톱 브랜드로 도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