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없었던 것이 제일 좋았어요. 일 특성상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데 인간관계에 대한 피로감이 해소된 것 같아요.”
20대 직장인 안모(28)씨는 이달 초 여름휴가를 맞아 몽골 여행을 다녀왔다. 몽골 아르항가이 아이막 엘승 타사르해 사막과 테를지 국립공원을 방문했다는 안씨는 “아무래도 (몽골 교외 지역은) 통신이 열악해서 휴일에도 습관적으로 들여다보던 업무 애플리케이션, 유튜브도 덜 보게 됐다”며 “자연스럽게 ‘디지털 디톡스’가 돼 심신안정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최근 일본과 유럽 등 대중에게 익숙한 관광지가 아닌 색다른 여행지 몽골을 찾아 일상의 쉼표를 찍으려는 2030세대가 늘고 있다.
27일 세계관광의날을 맞아 한국의 2030세대의 ‘원픽’ 여행지는 몽골.
청정 자연을 만끽하고 싶다는 2030세대는 국내 저비용 항공사(LCC)의 취항 이후 저렴해진 항공권 가격에 힘입어 몽골로 몰려들었다.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에어부산,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에어인천(화물), 진에어 등이 몽골에 취항하면서 하루에도 열 차례 넘게 비행기가 양국을 오가고 있다.
안씨는 “몽골에는 가로등이나 도시의 야경 같은 인공적인 광원이 많지 않아서 기대했던 만큼 아름다운 밤하늘을 볼 수 있었다”며 “(몽골이) 대단한 휴양지나 명승지는 아니어서 엄청나게 관광객이 몰리지 않는 곳이라는 점도 몽골을 간 이유 중 하나”라고 털어놨다.
지난달 몽골 어기 호수를 방문했던 직장인 윤모(29)씨도 “인터넷 사용에 제약이 크다 보니 같이 간 동행과의 대화와 자연에 집중할 수 있었다”며 “연락 올 일도 없다 보니 자유로운 느낌이 더 컸다”고 말했다.
내년 여름 몽골여행을 계획 중인 유모(36)씨도 “(몽골에는) 뚜렷한 랜드마크가 많지 않아 더욱 지금에 몰입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일본만 가도 ‘이걸 본 다음에는 저기로 가서 저걸 봐야지’ 이런 중압감이 있다”고 했다.
랜드마크가 많지 않고 인터넷이 잘 안 된다는 점이 2030세대에는 오히려 매력적인 이유가 된 셈이다. 이들이 보기에 몽골의 도시와 대초원은 자연과 주변 사람에게 집중하면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실제로 코로나19 방역 해제와 함께 여행지로서 몽골의 인기는 급부상하고 있다. 몽골에서 한국어 교육을 장려하는 덕분에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적은 것도 하나의 이유로 꼽힌다.
한국에서 대학원에 다니는 몽골 유학생 타난 에르덴(25)씨는 “지금 고향에 가면 한국에 있는 느낌이 든다”며 “몽골어보다 한국어가 더 많이 들려 한국어를 모르는 몽골인은 종종 외국에 온 느낌을 받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한국 사람들이 (수도인) 울란바토르보다 시골로 많이 놀러 가는 것 같다”며 “몽골을 많이 방문해 줘 고마운 마음”이라고 했다.
여행업계도 최근 2030세대 사이에서 몽골이 인기 여행지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티웨이항공 관계자는 “몽골 여행객 중 2030세대의 비중이 30~40%에 달한다”면서 “사막이나 초원 등 이색적인 관광지를 찾는 젊은 분들이 주로 많이 방문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여름 최고기온이 20도 내외로 서늘한 몽골은 6~9월이 여행 성수기다. 현지 문화 체험 등이 맞물리면서 최근에는 여행 인기가 비수기인 겨울까지도 확장하고 있다.
도르지 을지바트 한국외대 몽골어과 교수는 “최근 몽골을 배경으로 제작된 각종 프로그램이 방송됐던 점도 젊은 세대의 여행 욕구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5월 MBC ‘나혼자 산다’ 10주년 특집으로 몽골여행기가 방영되고 JTBC ‘택배는 몽골몽골’이 방송되며 몽골이 젊은 층 사이에서 주목받는 여행지로 부상했다는 것이다.
또 몽골의 드넓은 초원과 은하수가 보이는 밤하늘의 사진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유되며 젊은 세대의 이목을 끈다는 분석도 있다.
을지바트 교수는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몽골에서 촬영된 감성적인 사진들이 많이 공유되면서 젊은 층을 소구하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지리적으로 가까운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몽골에 방문했던 한국인들이) 전화기가 안 울리니까 너무 좋다고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인기를 반영한 듯, 국토교통부 항공통계에 따르면 올해 1~9월 몽골로 향한 사람은 54만9647명으로 지난해 동기간 53만5718명에 비해 1만4000여명 증가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시기 잠시 주춤했던 방문객 수는 코로나 이전인 2019년(37만2058명)이나 2018년(34만1993명)보다도 20만명 가까이 늘었다.
몽골 민간항공국에 따르면 지난해 주요 관문인 칭키즈 칸 국제공항에서 서울(인천)로 향한 이용객 수는 28만8436명(43.41%), 서울(인천)에서 입국한 이용객 수는 28만3778명(43.81%)으로 전체 몽골 항공 이용객의 절반에 달하며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지난 2월에도 칭기즈 칸 국제공항은 공항에서 가장 많은 항공편이 목적지로 비행한 도시는 서울(인천)으로 2위를 차지한 중국 베이징보다도 2배 많았다. 한류 인기를 증명하듯 탐앤탐스와 씨유(CU) 등 한국기업도 공항에 입점한 상태다.
몽골은 최근 들어 한국과 인연을 계속 맺으면서 한국인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심고 있다.
지난 23일에는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한국형 도로명판인 ‘서울로'(SEOUL steet)가 생겼다. 한국형 주소 체계(K주소)로 된 도로명판이 해외에 설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6월에는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시 지하철 1호선 건설 사업관리용역(PMC) 우선협상대상자로 한국 공공기관·기업이 선정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