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에 대해 아직까지 ‘적’인지 여부를 명확히 규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탈레반에 밀려 쫒기듯이 아프가니스탄을 허겁지겁 떠난 미국이지만 탈레반을 미국의 ‘적’으로 단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이 탈레반에 대한 미국의 엉거주춤한 자세는 최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인터뷰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설리번 보좌관은 31일 MSNBC와의 인터뷰에서 탈레반이 미국의 적인지 프레너미(친구이자 적)인지 묻는 질문에 “라벨(꼬리표) 을 붙이기 어렵다”며 “그들이 아프간을 물리적으로 통제하면서 이제 어떻게 할 것인지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그들이 앞으로 며칠 내 정부를 발표할 것이고 그 정부는 외교적 관여, 심지어 미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의 인정까지 추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실제로 탈레반 대변인은 탈레반을 대표해 특히 미국과 긍정적 관계를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면서 “우리가 탈레반에게 그냥 긍정적 관계를 부여하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탈레반은 미군과 동맹군이 5월부터 아프간 철수를 시작하자 빠르게 세력을 키워 지난달 중순 수도 카불을 점령했다. 이어 이슬람 율법을 따르는 ‘아프간 이슬람 토후국’ 재건을 선언했다. 2001년 미국의 아프간 침공으로 쫓겨난지 20년 만에 정권을 탈환한 것이다.
탈레반은 20년과는 다르게 보다 현대적으로 아프간을 통치하겠다고 주장했지만 이들이 아프간을 장악한 뒤 여성 박해와 즉결 처형 등 심각한 인권 탄압 정황이 나타나고 있다.
서방국들은 탈레반이 정권을 인정받고 싶다면 아프간을 떠나려는 사람들에게 안전한 출국을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인권을 존중하고 아프간의 테러 온상화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지난달 31일 아프간 철군 완료를 앞두고 급진 무장조직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의 폭탄 테러를 당했다. IS-K는 탈레반보다 훨씬 과격한 세력으로 탈레반과도 적대 관계다. 일각에선 미국이 IS-K 퇴치를 위해 아프간에서 탈레반과 협력을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