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킹” “슈렉” 등 메가 히트 애니메이션 제작자인 제프리 카첸버그 전 디즈니 CEO가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선거운동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공략하는 비밀 병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3일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 재출마를 선언할 당시 민주당 지지자 상당수가 너무 고령이라며 선뜻 지지하지 않았다.
그러자 카첸버그가 백악관에서 정치자금 기부 행사를 주최해 8순의 대통령과 기부자들의 만남을 주선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충분히 활동적임을 직접 확인하라는 취지였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카첸버그가 ‘내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으면 직접 와서 보고 확인하라’ 식이었다”며 “카첸버그가 미적거리는 사람들을 바이든 지지에 적극 가담케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카첸버그 만큼 바이든 지지 활동에 적극적인 사람은 드물다. 우선 선거 자금 모금 실적이 단연 선두다. 카첸버그는 15일에도 바이든 대통령,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조지 클루니, 줄리아 로버츠, 지미 킴멜 등과 함께 로스앤젤레스에서 선거 자금 모금을 할 예정이다.
지난 3월에 라디오 시티 뮤직홀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함께 주최한 모금에서는 2600만 달러를 모았다. 카첸버그 덕분에 바이든 선거 캠프는 트럼프 캠프를 압도하는 선거 자금을 모을 수 있었다.
카첸버그는 백악관을 자주 방문한다. 대통령 시정 연설이 있던 전 주말엔 캠프 데이비드 별장을 방문해 연설 준비를 돕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에 호응하는 동영상을 소셜 미디어에 올리고 작가들과 접촉해 바이든 대통령이 백악관 출입기자 협회 만찬에서 할 농담을 작성하는 등 창의적 선거 운동을 주도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매주 여러 차례 카첸버그와 대화한다.
말랐지만 강단이 있고 주장이 강하면서도 사교적인 카첸버그(73)는 자신이 만든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들처럼 동물적 에너지를 뿜어낸다.
매일 5시에 일어나 90분 동안 자전거를 타면서 4개 신문을 정독하고 조찬 모임만 3개를 소화한다. 메뉴는 주로 와플이나 달걀 및 아주 바삭하게 구운 베이컨 등이며 샐러드는 거의 먹지 않는다. 엄청난 식사량에도 살이 찌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를 지독한 A형 인간이라고 말한다. 토요일 출근하지 않는 직원을 해고한 것으로 유명하고 “기대치 이상”이라는 말을 달고 다닌다.
“나는 번트도 치지 않고 단타도 노리지 않는다. 일생 동안 오로지 홈런만 노려왔다”고 말하는 그는 차선책에 만족하는 법이 없다. “잘 지는 법을 제시한다면 지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말한다.
월스트리트 주식 중개인과 화가 부부의 아들로 뉴욕의 부촌 어퍼 이스트에서 태어난 카첸버그는 고등학교 재학시절 여름 캠프에서 도박을 하다가 쫓겨나기도 했다.
뉴욕대를 중퇴하고 한동안 백수로 지내던 그는 존 린지 전 뉴욕시장의 수행 비서를 지냈다.
이후 서부로 진출해 영화제작자로 빠르게 성공했다. 스필버그 감독, 데이비드 게펜과 함께 설립한 드림웍스에서 권력투쟁 끝에 밀려난 뒤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대표를 역임했다.
“스타 트랙” “레이더스” “굿모닝 베트남” “프리티 워먼” “죽은 시인의 사회” 등 영화와 “알라딘” “인어공주” “마다가스카르” “쿵푸 판다” 등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영화 406편과 애니메이션 46편, TV 드라마 85편과 브로드웨이 뮤지컬 5편 제작에 관여했다.
메그 휘트먼 이베이 전 CEO와 함께 17억5000만 달러를 투자해 설립한 숏폼 콘텐트 회사 키비는 코로나 팬데믹 동안 틱톡에 밀려 6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그러나 그의 기술투자회사인 원더 컴패니는 이번 달만 4억6000만 달러의 투자금을 모았다.
재산이 21억 달러(약 2조8910억 원)에 달하는 카첸버그는 일찌감치 정치에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민주당을 위한 “최고의 선거자금 모금책” 역할을 해왔다.
카첸버그는 트럼프에 대한 거부감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왔다. 트럼프가 수십 년 전 뉴욕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무례했다고 주변에 말해왔다. 지난달 액시오스가 주최한 웨스트 할리우드 모임에서도 “엄청난 얼간이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고 욕했다. 그러나 2006년 트럼프가 제작한 “어프렌티스”에 출연한 일도 있다.
트럼프를 싫어하는 이유를 질문받으면 고등학교 시절 2차 대전 이전 유럽에서 태어난 조부모를 인터뷰하라는 숙제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당시 사람들이 아돌프 히틀러가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면서 자기 손주들이 할아버지는 뭘 했느냐고 따지게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답한다.
카첸버그는 바이든 선거운동에서 모든 순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하는 창의성을 발휘해왔다.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바이든의 고령을 장수하는 “초능력”으로 포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카첸버그의 바이든 지지는 맹목적이다.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이런 일을 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을 수도 없이 했다. 그때마다 두 눈을 가운데로 모은 사시로 나를 보며 할 말이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