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총액 전 세계 2위 기업인 엔비디아의 총수로서 미국에서 10번째 부자인 젠슨 황 CEO(61)가 절세한 연방 상속세가 80억 달러(약 11조3600억 원)에 달한다고 뉴욕타임스(NYT)가 5일 보도했다.
황의 재산은 1270억 달러(약 180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가 사망하면 유족들은 재산의 40%를 세금으로 내야한다.
그러나 각종 절세 방법을 동원한 덕분에 황은 지금까지 번 돈의 상당 부분에 대해 세금을 면제 받았고 황 일가가 절세한 상속세가 80억 달러에 달한다. 미국 세금 역사상 가장 큰 금액의 절세 사례 중 하나다.
황이 절세한 방법은 초부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다. 스티븐 슈워츠먼 블랙스턴 그룹 회장, 마크 주커버그 메타 회장, 구글과 코인베이스, 일라이릴리, 마스터카드, AMD 등의 최고위직 임원들이 수십억 달러를 금융상품에 넣어 연방 상속세를 회피했다.
2000년 이래 미국 최고 부자들의 재산이 4배로 늘었으나 연방상속세 징수액은 제자리걸음이다. 제대로 징수했다면 지난해 1200억 달러(약 170조 원)에 달했겠지만 실제 징수액은 4분의 1에 불과했다.
억만장자들에 대한 상속세 미 징수액 규모는 법무부 연간 예산의 2배, 암 및 알츠하이머 연구 연방 기금의 3배에 달한다.
황이 사용한 절세 방법은 세법에 규정돼 있는 방법이 아니다. 창의적인 변호사들이 각종 연방 규정과 법원 판례, 국세청 처분 사례 등을 우회해 고안해낸 방식이다. 이 방식이 널리 활용되면서 사실상 법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의 억만장자들은 신탁 등 회피 수단을 활용해 매년 2000억 달러(약 284조 원)의 재산에 대해 상속세를 내지 않는 것으로 평가된다.
황의 절세 방법은 대단히 기발했다.
바보들만 세금 낸다
수천 년 전부터 각국은 왕실 재산이 늘어나는 것을 막으려 애썼다. 고대 로마의 케사르 황제는 사망세를 물었다. 자유방임 자본주의 사상의 아버지인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도 재산 상속을 비판했다. 미국 도금시대(Gilded Age; 1865~1898년 미 경제의 급속 성장기) 미국 최고 부자들도 상속에 비판적이었다. 앤드류 카네기는 “사망했을 때 세금을 왕창 부과함으로써 국가가 이기적인 백만장자의 가치 없는 삶에 대한 비판을 종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현대 상속세를 도입한 것은 1916년이다. 현재는 부부일 경우 2700만 달러(약 345억 원)까지 상속세가 면제된다.
억만장자들에게 세금 회피는 쾌감을 주는 놀이와 같다. 도널드 트럼프 1기 정부에서 경제수석보좌관을 역임한 골드만삭스 임원 출신 개리 콘은 “바보들만 상속세를 낸다”고 농담했다.
황은 바보가 아니다. 1993년 회사를 설립한 황은 2012년부터 부인 로리와 함께 상속세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부부는 신탁을 만들어 엔비디아 주식 58만4000주를 기증했다. 당시 시가로 700만 달러였지만 주식 증여로 절세한 금액은 지금까지 기탁 총액의 몇 배에 달했다.
황은 세금전문가들이 “최애(I Dig It)”라고 부르는 절세방법을 1995년부터 활용했다.
이 방법은 상속세는 물론 증여세까지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증여세는 기본적으로 생전 상속을 막기 위한 제도다.
“최애”라는 절세방식은 다음과 같이 작동한다. 자녀들을 위해 설립한 신탁에 1000만 달러를 증여하면 2700만 달러 상속세 면세 범위 에 해당해 증여세를 내지 않는다.
이 신탁이 증여받은 돈 1000만 달러와 증여자로부터 빌린 1억 달러로 증여자가 가진 주식을 사들이면 상속세 부과대상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이 방식은 주가가 크게 오를 경우 혜택이 한층 더 커진다. 아무리 주가가 올라도 상속세 부과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자본이득이 9억 달러를 초과할 경우 23.8%인 2억1400만 달러의 세금을 내야 한다. 그러나 증여자가 신탁을 대신해 세금을 내면 세금에 대한 증여세도 면제된다.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소유주의 빌 데이비드슨이 이 방법으로 27억 달러의 세금을 절세했다. 사모펀드 베인 캐피털 경영자 출신 미트 롬니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도 이 방식을 활용했다.
국세청은 과도한 것으로 판단되는 최애 방식의 신탁을 제재하지만 성과가 미미하다. 데이비드슨에 당초 240만 달러를 추징키로 한 국세청이 결국 10만 달러만 추징하고 기소를 철회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황도 “최애” 방식 절세를 십분 활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2012년 황이 신탁에 기증한 700만 달러가 현재 가치로 30억 달러에 달한다. 직접 상속할 경우 내야할 세금이 10억 달러가 넘겠지만 실제 내는 상속세는 수십 만 달러 수준이 될 전망이다.
유명세를 활용하는 방식
황은 상속세를 줄이는 새로운 기법도 활용했다. 증여자 보존 연금 신탁(GRRATs)라는 방식이다.
월마트 설립자 전 부인 오드리 월튼이 활용한 절세 방식이다. 1993년 오드리 월튼은 2억 달러 상당의 주식을 GRATs에 증여했다. 여기서 핵심은 신탁이 증여자에게 주식 가치에 약간의 이자를 더한 금액을 상환하도록 돼 있는 점이다. 주식 가치가 올라 상환 예정액보다 커져도 신탁은 금액이 얼마가 되든 세금을 내지 않을 수 있게 된다.
국세청이 2000년 GRATs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이 합법적이라고 판결했다.
그러자 억만장자들이 대거 나섰다. 골드만 삭스의 로이드 블랭크페인 CEO, 카지노 거물 셸던 애덜슨, 석유재벌 해롤드 햄, 케이블 재벌 존 멀론과 찰스 돌란, 패션 디자이너 랄프 로렌이 GRATs를 설립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재무부가 “최애”와 GRATs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려 노력했으나 의회에서 거부했다. 직접 GRATs를 활용하던 트럼프 1기 시절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이 재무부의 규제 강화를 막았다.
황은 2016년 300만 주의 엔비디아 주식을 GRATs에 증여했다. 당시 가치로 1억 달러였다. 현재 가치는 150억 달러다. 이에 따라 엔비디아에서 일하는 황의 두 성인 자녀들이 60억 달러의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이다.
현재 주가를 근거로 할 경우 황의 신탁들이 주식을 처분하면 40억 달러가 넘는 자본이득세를 내야 한다. 황씨 부부가 신탁이 내야할 이 세금을 대신 낼 수 있기에 자녀들은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된다.
기부를 통한 절세
황은 2007년부터 새로운 절세 방식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자신과 부인 명의 자선재단을 설립하는 방식이다.
황은 젠순 앤드 로리 황 재단에 엔비디아 주식 3억3000만 달러를 기부했다. 기부금액 전액이 세금 감면 대상이어서 이후 몇 년 동안 황이 내야할 소득세가 줄었다.
자선재단은 기부자가 통제하는 자금의 금고역할을 한다. 자동차를 사거나 별장을 사는 일 등은 할 수 없지만 기부자 친지가 운영하는 회사에 투자하거나 대학에 기부자 자녀를 입학시키는 대가로 건물을 지어주는 등의 일을 할 수 있다.
자선재단은 전체 자산의 5% 이상을 매년 외부 단체에 기부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 푼도 기부하지 않을 수 있는 구멍이 있다.
기부자가 사망하면 상속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아도 재단 관리권이 상속을 받은 사람에게 넘어간다.
황 재단의 기부금의 84%가 기부자 관리 기금에 기부됐다. 황이 기부한 주식 총액이 현재 시가 20억 달러다.
기부자 관리 기금은 자금 사용 내역을 공개할 의무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