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국방장관에 내정한 피트 헤그세스가 중세 십자군 전쟁을 오늘날의 전범으로 삼아야한다고 자주 강조해왔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5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몇 년 전부터 스스로를 기독교 투사로 자리매김한 헤그세스는 서방 문명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 “십자군에 감사해야 한다”는 글을 썼다. 그는 팔에 문신한 “데우스 불트(Deus Vult; ‘신이 바라신다’라는 뜻의 라틴어 글귀)”라는 글귀가 십자군의 “전투 슬로건”이라고 말해왔다.
그는 2020년 5월 출간한 저서 “미국 십자군(American Crusade)”에 “투표가 무기라지만 미흡하다. 1000년 전 우리 기독교인들처럼 싸워야 한다”고 썼다.
헤그세스는 십자군이 사용하던 예루살렘 십자가를 가슴에 문신한 때문에 2021년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취임식 경비 부대에서 배제됐다고 밝혔다. 이 문신은 데우스 불트 문신과 함께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사용하는 것이어서 동료 군인들이 헤그세스를 “내부 위협”으로 지목했었다.
팔과 가슴에 십자군 문신
오늘날 기독교 지도자들은 수많은 잔혹 행위를 저지른 십자군 운동을 기독교 역사의 오점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헤그세스는 이슬람과 좌파 이념에 제대로 맞서지 못하면 미국이 파괴되고 “인간의 자유가 끝장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15년 조찬기도회 연설에서 십자군 운동을 “예수의 이름을 앞세워 끔찍한 일들을 저지른” 것이라고 묘사하자 당시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이 반발한 적이 있다. 일부 미국 기독교 교파의 권력 추구 성향이 드러난 사례다.
극우 세력도 십자군 상징을 자주 활용하고 있으며 백인 인종차별주의자 행사인 2017년 우익 결집(Unite the Right) 시위와 2021년 1월 의회 폭동 등에서 공개적 목소리를 냈었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헤그세스는 2년 전 테네시 주 내슈빌로 이사했다. 자녀들을 조나산 에드워즈 고전 아카데미라는 기독교 학교에 보내기 위해서였다. 서양 고전 교육을 중시하는 이런 학교들이 최근 보수층 사이에 인기가 높다.
백인 우월주의 강조하는 교회의 신도
헤그세스는 테네시에서 개혁복음주의교회연합 소속 교회에 다닌다. 개혁복음주의교회연합은 기독교 민족주의자를 자처하며 정부의 기독교 규제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더그 윌슨 목사가 설립한 단체다.
트럼프 시대에 크게 세력을 키운 개혁복음주의교회연합은 현재 전국적으로 150여개 교회가 소속돼 있다.
윌슨 목사는 최근 노예제도가 “미국 남부에 인종들 사이의 순수한 애정을 빚어냈다”고 주장하고 동성애는 범죄이며 19세기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한 것이 실수라고 주장하는 글을 썼다. 그는 “성경에 여성 지도자가 흔한 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라고 돼 있다”며 여성이 공직을 맡는데 반대한다.
개혁복음주의교회연합 정관에는 여성을 “전투에 동원하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다. 헤그세스도 여성들이 전투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해왔다. 이 교파의 교회들은 남성만을 교회 지도자로 삼으며 남성이 가장임을 강조한다.
윌슨은 지난 4일 한 인터뷰에서 헤그세스가 국방장관이 되는 것을 적극 환영한다고 밝혔다.
헤그세스는 내슈빌의 기독교 잡지와 인터뷰에서 윌슨 목사의 책으로 공부했다고 밝혔다. 그는 자녀들을 하바드대가 아닌 윌슨 목사가 아이다호 주에 설립한 대학교에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윌슨 목사는 유대인과 이슬람 신자들을 대규모 학살한 십자군 운동을 긍정적으로 재조명해왔다. 그는 십자군 운동이 “이슬람 침공에 맞서 진즉에 있었어야 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헤그세스도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의 비극들이 십자군 운동에 가득하다면서도 “자유”와 “공정”이 가치를 서방 문명에 확립한 십자군 운동이 없었다면 더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을 것이라고 썼다. 그는 서방에 이슬람 신자가 늘어나는 것을 경고하면서 미국인들이 교육, 언론, 법률적으로 기독교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헤그세스는 지난해 윌슨 목사 소속 교회가 운영하는 팟캐스트에 출연해 “우리는 지금 1단계에 있다. 전술적으로 후퇴해 단단하게 재결집하고 조직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그는 “나중에 기회가 왔을 때 공격에 나설 수 있는 비밀 군대를 만들어야 한다”고도 했다.
헤그세스는 저서에서도 “우리 미국 십자군이 칼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총을 갖지 못했다”며 폭력 지지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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