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관세 정책은 관세 자체보다는 세계 경제 및 지정학적 질서를 미국에 유리하도록 리셋하려는 계획의 일환이라고 뉴욕타임스(NYT)가 7일 보도했다.
NYT는 그러나 관세가 미국의 번영을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에는 경제적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제니퍼 번스 미 스탠포드대 경제사학 교수가 기고한 “트럼프의 관세 광기에 대처하는 법(There’s a Method to Trump’s Tariff Madness)의 요약.
트럼프가 일으킨 혼란에는 전략이 있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관세 자체가 핵심이 아니다. 세계 경제 및 지정학적 질서를 파괴하고 미국의 이익에 더 부합하는 새로운 체계를 구축하려는 보다 야심찬 계획의 일환이다.
‘마러라고 합의’로 불리는 이 계획은 트럼프와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이 고안한 것으로 보인다.
관세 등 강압적 수단을 활용해 세계가 급진적 조치를 취하도록 압박함으로써 미국의 글로벌 무역 지위를 개선하는 것이 마러라고 합의의 목표다.
미국의 달러 가치를 낮추는 통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마러라고 합의의 궁극적 목표다. 이를 통해 미국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고, 중국에 경제적 압력을 가하며, 미국 내 제조업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핵심이다.
이 합의는 미국 내 팽배한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불만을 배경으로 한다. 미국의 제조업이 쇠퇴하고 전 세계적 기술 네트워크가 발달하고 새로운 지정학적 경쟁 구도가 형성된 현실을 고려해 미국이 경제 질서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생각이 힘을 얻어 왔다.
그러나 ‘마러라고 합의’가 일으킨 초토화 방식은 답이 아니다.
우선, 트럼프의 내부 인사들을 제외하고 이 아이디어를 좋은 계획이라 여기는 경제학자를 찾기 어렵다.
무엇보다 미국이 결국 번영하게 된다 해도, 우리는 미국을 진정으로 위대하게 만드는 핵심 경제적·정치적 가치를 버리게 될 것이다.
마러라고 합의는 주요5개국(G5)이 달러 가치를 떨어트리기로 합의한 1985년의 ‘플라자 합의’와 유사하다.
플라자 합의도 지나치게 강세를 보이는 달러로 인해 미국 제품이 수출 경쟁력을 잃고 대규모 무역적자를 기록하면서 미국 제조업의 해외 이전이 가속화되는 것에 대한 대응이었다.
그러나 플라자 합의에도 불구하고 흐름이 바뀌지는 않았으며 달러는 계속 세계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기축통화로서 달러는 미국의 외교적, 군사적, 문화적 지배력을 굳건히 한다. 달러가 기축통화 지위를 상실하게 되면, 미국은 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지고 경제적 재앙과 사회적 붕괴에 직면하는 ‘파멸 시나리오’가 전개될 수 있다.
트럼프 정부는 파멸 시나리오가 이미 진행되고 있다고 믿는다. 미국의 제조업이 쇠퇴했고, 경제적 불평등이 만연하며, 과도한 부채를 지닌 채 동맹국들의 군사적 방어를 떠맡고 있다고 주장하는 근거다.
미란은 지난해 11월 발표한 보고서 ”글로벌 무역 체제 재구성 사용자 안내서“에서 먼저 기존 경제 질서를 붕괴시키는 ‘혼란’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세 인상을 통해 각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겠다는 구상이다. 협상에서 통화 협정을 맺음으로써 달러 가치를 낮추는 것이 목표다.
미란은 “무역 정책을 안보 정책과 연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가혹한 관세로 중국을 세계 경제로부터 차단함으로써 세계 질서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 계획이 성공할 수 있을까. 거의 모든 경제학자들이 부정한다. 엄청난 경제 불안을 초래해 재앙일 될 것이라고 평가한다.
미란조차 그 가능성을 인정해 “작게 시작해야 한다”고 썼다. 그러나 대담한 행동을 중시하는 트럼프 정부가 미란의 생각을 존중할 가능성은 낮다.
더 큰 문제도 있다.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인 이유는 그것이 자산을 저장하고 투자하기에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달러는 몰수, 정치적 보복, 경제적 예측 불가능성으로부터의 피난처 역할을 해왔다. 외국 정부와 개인 모두가 미국에 투자하는 이유는 미국의 정치 체제가 안정적이고, 법적 시스템이 공정하며, 사유재산권이 존중받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달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무역을 통해 평화를 도모하고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 경제 및 군사 동맹 네트워크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하면서 강세를 띠기 시작했다.
이후 글로벌 무역 체제에 진입한 다른 국가들이 부패, 정실주의, 내전으로 무너질 때도, 미국의 경제 및 정치 시스템은 안전, 혁신, 기업정신의 등대로서 돋보였다.
미국의 가장 소중한 자산은 달러 자체가 아니라 신뢰성이다. 마러라고 합의가 목표하는 세계가 실현된다면, 달러는 물론 미국 자체가 평가 절하된 세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