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2년 넘게 견고하게 유지되던 러시아 경제가 갑작스럽게 위기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9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러시아 루블화가 폭락하고 물가가 폭등하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결국 국민들에게 공포에 빠질 이유가 없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루블화 폭락은 미국이 러시아 가즈프롬뱅크에 대한 제재를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가즈프롬뱅크는 러시아가 제재를 받지 않은 주요 은행으로 군인에게 봉급을 지급하고 무역 거래를 결제하는 주요 수단이었다.
가즈프롬뱅크는 러시아에서 주요 에너지를 구매하는 유럽국들이 대가를 지불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제재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을 통한 경화 수입 주요 통로 역할을 해왔다.
루블화 가치는 이번 주 1 달러에 108 루블로 거래돼 32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래 가장 낮은 수준에 근접했다. 100 루블은 심리적 저항선을 넘은 것이다. 루블화는 이번 달 중국 위안화에 대해서도 10% 하락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이 지난 27일 오후 시장에 개입하면서 폭락이 멈췄다. 중앙은행은 올해는 더 이상 외국환을 매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석유 및 천연가스 수출 이익으로 인해 중앙은행이 외환을 매입하면서 기업과 개인에 대한 외화 공급이 크게 부족해졌다.
푸틴은 지난 28일 “상황이 통제되고 있고 공포에 빠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막심 레셰트니코프 경제 장관은 29일 제재가 러시아의 해외 교역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루블화 폭락의 원인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대외 거래에서 루블화 거래와 중국 위안화 거래 등을 늘리고 암호 화폐 사용도 늘리는 등으로 제재에 맞서왔으나 달러 거래가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가즈프롬뱅크에 대한 제재는 파급력이 크다. 무역 관계자와 수출업자, 외국 은행 모두 자신의 거래가 저촉되지 않는지를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공포가 발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러시아 경제는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큰 타격을 받았으나 이후 꾸준히 회복돼왔다. 다만 물가가 올해 21% 올라 중앙은행 예상치의 2배에 달했다. 징집과 해외 유출로 노동력이 부족하고 군사비로 인해 정부 지출이 크게 증가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루블화 폭락으로 수입품 물가가 폭등할 위험이 커졌다. 이번 달 소비자 물가는 9% 가까이 상승했다. 생필품 물가는 지난해 11월 대비 28% 올랐다.
러시아 중앙은행이 곧 금리를 23%로 인상할 전망이다. 또 정부가 수출 기업들의 외화를 루블화로 바꾸도록 해 루블화 가치 폭락 압력을 줄이려고 시도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루블화 거래가 중단되는 주말이 지나면서 폭락이 멈출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금리가 크게 오르면서 내년 러시아 경제가 크게 압박을 받으면 2026년 침체기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의 지원이 크게 늘지 않은 농업과 교통 부문이 위축되고 있다.
러시아 경제가 붕괴할 것이라는 예상은 거의 없다. 다만 전쟁이 길어지면서 경제난이 갈수록 심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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