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멀리하고 편가르기 정치로 타락한 유림의 공론정치는 지금 현대한국사회에서 똑같이 재현되고 있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종교계 인사들이 대거 현 검찰청장을 물러나라고 시국선언을 했다. 이어 영호남, 충청권의 범 시민단체들이 시국선언을 했다. 아마 학계, 교육계, 경제계, 노동계, 여성계, 문화계 등의 각종 시민단체들, 해외 동포들까지 줄줄이 시국선언을 했거나 앞으로 할 것이다.
조선후기 관직에 있지 않은 재야선비들이 중앙의 정치적 이슈에 대해 통문을 돌려 지지하거나 혹은 반대하거나 했듯이 정부의 조직 밖에 있는 시민사회의 각종 단체들이 지지세력을 동원하여 구체적인 정치 사안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가톨릭 사제들과 수도자들은 공직자를 징계하든 해임하든 적법한 절차를 따라야 한다는 법치주의의 원칙을 부정하고 대신 검찰의 ‘고질적 악습’과 ‘고통과 비통의 역사’를 지적함으로써 상대방의 ‘부도덕한 내력’을 들추어내며 자신들이 지지하는 현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의 ‘도덕적 우월성’을 강조하였다.
유학자 관료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천명’과 ‘민심’으로 포장했듯이 시민단체활동가들은 시민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는 다양한 의견들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주장만을 “시민의 명령”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현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처분은 급조된 징계위원회 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이루어졌다.
많은 민주화 운동가들이 정부의 의사결정에 다수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참여정부”를 구호로 내세웠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시민단체의 이름은 “참여연대”이다. 모두가 참여하는 민주주의. 촛불시위는 그 정점에 있었다.
조선의 공론정치에 관한 국내 국사학계의 논의도 대체로 재지유림이 중앙정치에 참여했던 것을 ‘민주주의의 기원’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비록 양반에 한정되었지만 고려시대에 비하여 많은 사람들이 정치 현안에 대하여 심의하고 토론하였으며 결정된 것을 왕에게 상소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간관은 군주의 잘못을 간할 수 있었고 시중의 여론을 전달할 수 있었던 점을 공론정치를 긍정적으로 보는 국사학자들은 강조한다. 이러한 시각은 주로 조선이 당파싸움 때문에 망했다고 보는 ‘식민사관’에 반발하여 당쟁을 현대 민주주의의 정당정치에 비견할 만한 ‘붕당정치’로 격상시키고 ‘민주주의의 맹아’를 조선시대 공론정치에서 찾고자 한다.
그러나 그레고리 헨더슨이 지적했듯이 다수의 참여가 민주주의는 아니다. 해방 이후부터 50년대 60년대 미국의 외교관으로서 한국에 주재하면서 격동의 한국정치를 관찰할 수 있었던 헨더슨은 당시 한국인들이 어떤 사안에 대하여 결정할 수 있는 권위가 소수에게 집중되는 것을 독재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에 주목하고 이는 서구의 민주주의에 대한 한국인들의 오해에서 나온다고 설명하고 있다.
삼권분립을 통해 전제적 정부의 출현을 방지하고자 하는 민주주의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누가 결정하고 누가 책임지는지 분명하게 법으로 규정해야 한다.
법으로써 권한의 범위와 책임이 명시되지 않은 채 이루어지는 다수의 참여, 그리고 만장일치로 정해지는 전통은 의견의 차이가 있을 때, 특히 서로 다른 의견이 팽팽히 맞설 때 의사결정을 무한정 지연시키며 현실의 민생문제는 방치된다.
결정을 내리는 자는 반대편으로부터 항시적으로 공격받게 되기 때문에 아무도 그 결정에 대하여 책임지고자 하지 않게 된다. 종국적으로 집단의 내부갈등은 통합되지 못하고 끊임없이 분열하게 된다. 그리고 이 분열의 정치로 인하여 세계사적으로도 드물게 중앙집권적인 관료제와 단일민족, 단일문화를 발전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근대화에 실패했다고 헨더슨은 주장한다.
한국인들이 민주주의를 다수의 참여라고 오해하고 있다는 헨더슨의 주장은 문화인류학자의 관점에서 볼 때 외국의 사상이나 제도를 받아들일 때 일어나는 문화현상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다.
외국어를 차용하여 쓸 때 그 발음이 기존의 한국어의 발음 구조에 맞게 바뀌어 외래어가 되듯이 문화적 관념이나 개념도 기존의 문화적 의미체계에 맞게 변용된다.
이미 왕에게 직언하고 사림의 여론을 중시하는 성리학적 공론정치의 전통이 있었기에 언론의 자유를 억압했던 독재정권은 산업화와 경제성장이라는 눈부신 성과를 이루어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완강한 저항을 이길 수 없었다.
그러나 국민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민주주의는 서구의 다양한 사상과 문화를 포용하는 민주주의라기보다 ‘올바른’ 가치관과 사상 만을 허용하는 조선의 정치문화에 가까웠다. 김영삼 정부 이래 민주화 세력이 정권을 잡으면서 국제사회와 세간의 기대와 달리 경제활동을 비롯하여 모든 분야가 정부의 통제를 받았음은 물론이고 정부의 ‘역사바로세우기’가 급기야 ‘5.18역사왜곡방지법’으로까지 발전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반면에 법을 지키는 것이 정의라는 법치주의의 원칙은 운동권문화에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덕치를 강조했던 성리학적 통치이념이 법에 의존하지 않고 백성을 지배하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두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가톨릭정의구현사제단이 발표한 시국선언문에도 씌여져 있듯이 정의로운 사회는 “권한도 책임도 골고루 나눠서 만사가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는 국가공동체”이지 소수의 리더가 법에 명시된 권한을 행사하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사회는 아니다. 권한도 책임도 골고루 나누는 국가는 바로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이 지향했던 양반사회의 모습이다. 특히 사족에게 만장일치로 공론을 정하는 것은 ‘우리는 하나다’라는 공동체의식을 강화시켜주는 이상적인 논의과정이었다.
돌이킬 수 없는 시민사회의 분열은 이미 시작되었다. 현 정부는 각종 단체들을 동원하여 현 검찰총장의 제거가 마치 국민의 뜻인 것처럼 모양새를 내고 있다. 보다 많은 ‘지도층 인사’들이 검찰개혁지지 선언을 할수록 그의 권위는 대중에게 확고하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책임은 국민들에게 떠넘길 것이다. 즉 대통령 자신이 결과에 대해 온전히 책임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반면에 유림의 향권장악이 모든 권력과 권위의 중앙집권화를 심화시켰듯이(10월26일자 포스팅 참조) 시민단체들의 정치활동은 시민들로 하여금 더욱 더 정치활동에 몰입하게 만들 것이다. 다양한 정치 성향을 인정하고 비정치적인 공동의 목표를 갖고 자발적으로 함께 어울려 집회와 결사체를 만들었던 시민들이 이제 물을 것이다.
나는 어느 쪽이며 너는 어느 쪽인가? 함께 예배를 보던 교회 신자들이 정치색에 따라 이제 두 쪽으로 나뉘어져 예배를 볼 것이다.
이는 사회의 기능적 분화의 경계선이 희미해지고 모든 분야에 정치가 우위에 서는 것을 의미한다. 중앙의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중간 집단들은 다원적인 민주사회의 버팀목인데 이제 그들이 정치에 종속되기 시작할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것이다. 이제 정치과잉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느 음악가의 말처럼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기 보다는 밖으로 나다니며 폭넓은 인맥을 쌓아야” 할 것이다(진은숙, 홍형진과의 인터뷰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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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희 교수는 서울대 의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문화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학 중앙연구원 전임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일제시대의 가족변화에 관한 연구프로젝트를 수행한 바 있다. 주요 논문으로 “From Gentry to the Middle Class: The Transformation of Family, Community, and Gender in Korea”(박사학위논문), 「도시 중산층의 핵가족화와 가족 내 위계관계 변형의 문화적 분석」(『한국문화인류학』, 1995), 「문화적 관념체로서의 가족: 한국 도시 중산층을 중심으로」(『한국문화인류학』, 1995), “‘Home is a Place to Rest’: Constructing the Meanings of Work, Family and Gender in the Korean Middle Class”(Korea Journal, 1998), “Mothers and Sons in Modern Korea”(Korea Journal, 2001), 「대가족 속의 아이들: 일제시대 중상류층의 아동기」(『가족과 문화』, 2007) “도시 중산층 기혼여성의 취업과 부부 역할:’자기 일’의 정치학”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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