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우아한 미소를 머금은 긴머리 소녀 같은 아름다운 여성경찰의 사진이 전면에 나타난다.
제복입고 임무수행 중인 남자 경찰의 사진은 보이지 않는다. 홈페이지 가장 상단에는 “소통/공감”이라는 항목이 알림/뉴스 다음으로 배열되어 있고 이 위치는 “신고/지원” 항목보다 앞서 있다. 즉 ‘소통과 공감’이 범죄 신고와 피해자 지원보다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연방경찰(FBI) 홈페이지를 한 번 찾아보았다. ‘소통’, ‘공감’, ‘따뜻한’, ‘사랑’ 이런 달달한 표현 전혀 없다.
표어도 없다. 미소짓는 긴머리의 어린 여성경찰도 볼 수 없다.
경찰청장의 인사말도 없다. 대신 중요 사건에 관한 뉴스와 흉악범들, 실종자들 사진이 눈에 확 띄었다.
최근 미국 국회의사당에서 난동부린 트럼프 지지자들 사진이 전면에 나타나고 사진에 찍힌 자들 신고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유럽은 어떤지 궁금해 스웨덴 경찰 홈피도 들어가 봤다.
여기도 미국 FBI 홈피처럼 따뜻한 경찰, 소통, 공감 이런 미사여구는 없다. 경찰청장의 말씀 없다.
그리고 우리나라 경찰청 홈피의 ‘긴머리 소녀’ 처럼 예쁘장한 여성경찰 대신 중무장한 남자 경찰 여성 경찰이 함께 순찰하는 모습이 내 눈을 사로잡는다.
남성경찰과 똑같이 제복입고 허리에 권총차고 범죄와 싸우는 임무를 수행하는 그 여성경찰이 내 눈에는 당당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사진 오른쪽에는 스웨덴 경찰 조직을 설명하는 항목 다음에 경찰의 “임무와 목적”이 바로 배열되어 있다. 경찰의 임무와 목적을 명시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걸까? 이에 대한 대답은 바로 우리나라 경찰청장의 인사말에 나와 있다.
“….
(경찰은) 항상 국민의 어려움에 공감하며, ‘내 가족의 일’처럼 문제를 끝까지 책임지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
즉 경찰청장을 포함하여 우리사회의 많은 시민들이 꿈꾸는 사회는 ‘가족과 같은’ 사회이다. 가족처럼 따뜻하고 서로 사랑하고 소통하고 공감하는 사회. 경찰청만 시민을 내 가족 보호하듯이 보호하겠다고 맹세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가도 가족처럼 공동체적인 기업을 만들겠다고 호언한다.
대깨문은 마치 문대통령이 자기 가족이나 되듯이 무조건 사랑하고 지지한다. 국가를 하나의 확대가족으로 보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관념이 현대 한국사회에 이렇게 살아있다.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어떤 경찰을 원하는지. 경찰보고 국민과 소통하라고 그 많은 세금을 내는 건지. 그건 아니다.
우리가 나라에 세금을 내는 이유는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 받기 위해서다.
경찰이 존재하는 이유는 남의 생명을 해치고 재산을 뺏는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의해서다.
그런데 부모의 학대로 어린 아기가 16개월 살고 무참히 죽어간 정인이 사건을 보라. ‘국민과 소통하는 따뜻한’ 경찰은 무엇을 했는가? 정인이 온 몸의 피멍을 보고도 그 연약한 생명이 위험에 처했음을 감지하지 못했다. 아동학대 를 해결하기 위한 전문 경찰력은 없었다.
경찰 본연의 임무수행을 보여주기보다는 여자 경찰이 직장의 꽃처럼 방긋 웃는 모습을 크게 보여주는 경찰청 홈피는 정인이 사건이 앞으로도 반복되리라는 슬프고 화나는 예측을 하게 만든다.
🔺 김은희 교수는 서울대 의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문화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학 중앙연구원 전임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일제시대의 가족변화에 관한 연구프로젝트를 수행한 바 있다. 주요 논문으로 “From Gentry to the Middle Class: The Transformation of Family, Community, and Gender in Korea”(박사학위논문), 「도시 중산층의 핵가족화와 가족 내 위계관계 변형의 문화적 분석」(『한국문화인류학』, 1995), 「문화적 관념체로서의 가족: 한국 도시 중산층을 중심으로」(『한국문화인류학』, 1995), “‘Home is a Place to Rest’: Constructing the Meanings of Work, Family and Gender in the Korean Middle Class”(Korea Journal, 1998), “Mothers and Sons in Modern Korea”(Korea Journal, 2001), 「대가족 속의 아이들: 일제시대 중상류층의 아동기」(『가족과 문화』, 2007) “도시 중산층 기혼여성의 취업과 부부 역할:’자기 일’의 정치학”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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