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개척’이라는 미명 아래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많은 학살이 일어났다. 그러는 와중에 백인과 친화적인 인디언과 적대적인 인디언으로 나뉘어 부족간의 전쟁도 야기되었다.
북부 샤이엔족 14살 올빼미여자라는 인디언 소녀는 자신의 부족과 원수인 까마귀족의 습격을 받아 그들의 포로가 되어 끌려가게 된다. 북부 샤이엔족은 백인과 끝까지 싸우겠다는 부족이고 까마귀족은 백인들과 평화협정을 맺은 부족이었다.
어느날 포로로 끌려간 올빼미 소녀는 샤이엔족이 까마귀족을 습격하러 오는 것을 미리 알아채고 어찌할까 갈등하다가 결국 까마귀족에게 이를 알려준다. 이 때문에 샤이엔족이 전투에서 지고 물러나자 올빼미 소녀는 여전사로 대접받게 되지만 슬픔에 빠진다.
이 후 올빼미 소녀는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의 도움으로 까마귀족을 떠나 샤이엔족에게 돌아간다. 북미 인디언 문화 전문가인 독일작가가 쓴 ‘모두가 다 사라진 것은 아닌’이라는 제목의 소설 이야기다.
소설은 이 모든 과정에서 올빼미 소녀의 눈을 통해 백인들이 저지르는 만행과 그들이 말하는 평화가 무엇인지 그리고 백인과 우호적으로 교류하던 인디언들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등을 그려낸다. 결국 백인들이 말하는 평화를 위해서는 인디언들이 사라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백인들의 최초의 인디언 섬멸전은 1864년 11월에 일어난 샌드크리크 대학살이었다. 이를 두고 아라파호족 인디언이 11월을 가리켜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고 부르는 데서 소설 제목을 그대로 따온 거다. 겨울이 되면 모든 게 사라지지만 아직은 그렇지 않다는 일말의 희망을 말하면서다. 사람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기와 물, 음식이 필요하겠지만 이러한 물질적인 조건만이 전부는 아니다. 희망이 그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1944년 성탄절에서 1945년 새해까지 1주일 동안 죽음의 수용소 사망률이 증가했다고 한다. 이는 ‘성탄절까지는 다시 집에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상실하게 되면서 갑자기 기력을 잃고 쓰러져버렸기 때문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희망의 상실이 영혼을 마비시키게 된 거다. 반대로 2010년 칠레의 지하 700m 막장에서 69일간이나 사투를 벌이다 구조된 33인 광부들이 살아 돌아온 기적이 있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 마음으로 희망을 잃지 않고 절망을 딛고 싸워 일어선 결과다. 이 때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광산 입구에 설치된 캠프의 이름은 다름아닌 희망, ‘에스페란사(Esperanza)’ 였다. 광부들이 지하에 갇힌 동안 새로 태어난 한 광부 딸의 이름 또한 에스페란사. 희망은 이처럼 인간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이런 에스페란사의 기적같은 이야기가 우리를 또 다시 뭉클하게 한 일이 일어났다.
아마존 정글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 후 40일째 되는 지난 9일 극적으로 생환한 4남매 이야기다. 아이들은 정글의 악천후와 야생동물의 위협을 어른의 도움 없이 이겨내고 스스로 살아남았다. 13살 맏이와 9살, 4살, 그리고 정글에서 첫돌을 맞은 막내까지 4남매가 살아 돌아온 것이다. 엄마는 죽기전 아이들에게 ‘살아 나가라’는 마지막 당부를 했다고 한다. 희망의 유언. 아이들의 구조 작전명 또한 ‘에스페란사’였다. ‘희망은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는 말대로 정말 ‘모두가 다 사라진 것은 아닌’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