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간 기술패권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이 중국과의 협력 강화에서 선회해 미국과의 밀착에 주력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1일(현지시간) ‘미중 ’테크 냉전‘속에서 한국이 중심축을 중국에서 미국으로 옮기고 있다(pivot)’‘는 제하의 기사에서 한국이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있다고 전했다.
FT는 우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4월 광둥성 광저우의 LG디스플레이 공장을 찾은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중국이 여전히 외국 투자를 환영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한국 기업이 미국 주도의 중국 디커플링(탈동조화)에 참여하기 전에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간접적인 경고로 해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신문은 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은 미국 공급망에서의 중국 역할을 축소하려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로부터 수십억 달러의 보조금을 받을 예정이지만, 그 대가로 미국의 수많은 제한 조치를 준수해야 하므로 중국의 보복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반도체 경쟁력의 핵심으로 꼽히는 광물인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을 제한하는 등 형식으로 미국의 억제에 반격을 가하는 과정에서 한국 기업도 표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FT는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도발적인 발언도 언급했다. 싱 대사는 지난 6월 ‘중국의 패배에 배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가 한국의 큰 반발을 산 적 있다.
이어 FT는 “한국은 이미 중국 경제와 거리를 두고 있다”면서 “한국은행이 6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한국은 2004년 이후 처음으로 중국보다 미국에 더 많이 수출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아울러 “한국 정책 입안자들이 직면한 (최대) 문제는 자국의 대표 기업들이 빠르게 변화하는 지정학적 환경을 성공적으로 활용해 미국의 제공하는 혜택을 최대한 활용하고, 중국의 반발이 미치는 영향을 제한하느냐”라고 분석했다.
FT는 “한국은 구소련 붕괴 이후인 1992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경제 협력을 본격화했고, 이후 양국의 무역 규모는 60억달러에서 작년 3000억달러까지 늘어났다”면서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미국은 안보 파트너로, 중국은 경제 파트너‘로 구분해 한국의 ’이중 접근법‘은 나름 통하는 것으로 보였다”고 전했다.
이어 “그러나 2016년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사드) 배치로 중국이 한국에 대해 비공식적인 경제 제재를 가하면서 양국의 우호관계는 산산조각 났다”면서 “과거 경제와 안보 문제를 나눠 대처하는 방식은 한때 가능했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FT는 “한국기업들은 현지 생산비용 증가로 2000년대 후반부터 중국에서 떠나기 시작했다”면서 “자국 기업만 지원하는 중국의 산업 정책도 (탈중국에) 한몫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016년 중국이 자국 배터리 업계에 대한 보조금 정책으로 한국 기업들은 현지 전기차 시장에서 발을 빼야 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에 대한 중국 시장의 중요성은 과장된 측면이 있고, 중국으로 수출되는 한국산 부품의 수요처는 중국 밖에 있는 경우도 존재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정학적 위기를 발전의 기회와 원동력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주장도 있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워싱턴지부장은 “한국은 강대국 사이에 끼인 작은 나라이며 이런 사실은 한국인에게 영구적인 위기감을 주고 있지만, 이는 한국이 성공하도록 만들어준 원동력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