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행’은 예전에 발매됐던 노래가 뒤늦게 다시 인기를 얻고 음원 차트에 진입하는 현상을 말한다. 팝가수 머라이어 캐리의 크리스마스 앨범은 역주행의 대표적인 사례다. 1994년 발매된 앨범이지만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빌보드 차트에 진입하는 저력을 보여준다.
역주행이 실현되려면 특별한 계기가 있어야 한다. 과거엔 영화나 드라마, 방송 등에 나온 곡이 다시 입소문을 타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는 유튜브, 틱톡과 같은 영상 플랫폼이 음악 재발견의 장이 되고 있다. 국내에서 대표적인 역주행 사례로 꼽히는 브레이브걸스의 ‘롤린(Rollin’)’의 경우 2017년 발표 당시 큰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2021년 이 곡을 소개한 한 유튜브 영상이 갑자기 알고리즘을 타면서 4년 만에 최고의 히트곡이 됐다.
최근 7년 전 발표된 한 노래가 영상 플랫폼에서 인기를 끌면서 글로벌 음악 차트에 올라타는 사례가 나왔다. 프랑스의 싱어송라이터 제인의 노래 ‘마케바’는 지난 6월부터 틱톡과 유튜브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크리에이터들이 하나둘씩 이 곡을 배경음악으로 댄스 숏폼 영상을 만들면서 일종의 ‘챌린지’ 형태로 발전했다. 음원 스트리밍은 급증했고, 주요 글로벌 음원 차트에서도 반응이 나타났다. 마케바는 빌보드 핫100 차트에서 35위, 글로벌 200차트에서 38위까지 올랐고, 지금도 각국 음원 차트에서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마케바는 제인이 지난 2016년 발표한 앨범 ‘자나카(Zanaka)’에 수록된 곡이다. 경쾌한 아프로 비트를 이용한 댄스곡이지만 가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뮤지션이자 사회활동가인 ‘미리암 마케바’를 기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발매 이후 프랑스 싱글 차트에서 7위에 오르고 리바이스 광고에도 사용되는 등 어느정도 인기를 얻었지만 지금처럼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곡은 아니었다.
틱톡커들과 유튜버들은 이 노래를 재발견했다. 마케바의 단순하고 친숙한 멜로디와 랩은 숏폼 영상을 즐기는 사람들의 감각과 맞아떨어졌다. 흥겨운 에스닉 비트를 배경으로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단순한 어깨춤이 탄생했다. 또 가사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우에(Ooohe)’라는 추임새는 양손을 입 주변으로 모아 구호를 외치는 듯한 동작을 만들어냈다. ‘마케바 춤’을 기반으로 수백만~수천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한 숏폼 영상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2016년 유튜브에 올라온 마케바의 공식 뮤직비디오도 7년 만에 조회수가 2억2000만회까지 급증했다.
숏폼 콘텐츠의 생태계에서는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어떤 챌린지 영상이 높은 조회수를 얻으면 배경 음악도 함께 뜬다. 크리에이터들은 같은 음악을 배경으로 복제하듯 2차 창작물을 만든다. 같은 노래와 춤을 사용하지만 자신만의 개성을 영상에 담는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면서 의외의 아이디어가 더해져 유행이 더 커지기도 한다.
인위적으로 이런 흐름을 만들어내긴 어렵다. 최근 많은 K팝 아이돌 그룹이 신곡을 발표할 때마다 영상 플랫폼에서 ‘○○챌린지’ 유행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큰 반응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숏폼 생태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곡은 자연선택된다. 짧은 영상에 어울리는 중독성 있고 친근한 비트와 멜로디를 갖춰야 한다. 또 곡이 숏폼 콘텐츠의 ‘재미’라는 요소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어야 한다. 가수의 음색이나 곡의 비트, 편곡, 분위기가 영상에 몰입하는데 방해가 돼선 안된다는 점도 중요하다.
크리에이터의 역할도 작지 않다. 비주류 K팝 아이돌의 신화를 쓴 피프티피프티의 ‘큐피드’가 틱톡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것도 2차 창작의 힘이었다. 한 틱톡 이용자가 큐피드의 프리코러스(후렴구 직전에 나오는 짧은 소절)를 따서 속도를 빠르게 높인 ‘스페드 업'(Sped up) 버전을 만들었고, 이 영상이 틱톡에서 유행을 만들어냈다. 마케바의 경우에도 크리에이터에들 의해 독창적인 숏폼 영상이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음악 커버 크리에이터 차다빈이 최근 만든 ‘7개 언어로 마케바 부르기’ 숏폼 영상은 현재까지 1000만회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렇게 누구도 계획하지 않은 협업이 숏폼 콘텐츠의 트렌드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