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적한 스님 시신을 화장하는 불교 장례의식 ‘다비’가 전수자 부족과 설행(設行) 기록 부재로 전승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6일 불교계에 따르면 1500년 이상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다비’는 삼국시대 불교 전래와 더불어 한국 전통문화로 전승돼 왔다. 단순히 육신을 태우는 화장이 아니라 죽음조차 깨달음의 기회로 맞이하는 한국 승가의 수행 정신이 담겨 있다.
다비에는 두 가지 함축적인 의미가 있다. 협의로 나무나 짚을 사용해 법구(法柩, 屍身)를 불태우는 것을 의미하지만, 광의로는 법구를 불태우는 것뿐만 아니라 입감(入龕), 습골(拾骨), 쇄골(碎骨), 산골(散骨), 안치(安置), 법문(法門) 등 장례 기간에 이뤄지는 장례 절차와 의례 전체를 의미한다.
다비 관련 기록은 삼국유사 자장정율편에서 찾을 수 있다. 자장 스님을 화장해 골회(骨灰)를 석혈(石穴)에 모셨다는 내용이다. 문무왕 편에도 문무왕을 고문(庫門)에서 화장해 동해의 대왕암에 장골(藏骨)했다는 내용이 있다.
2000년대까지 승가에서 주관해 전통 다비의 맥을 이어온 주요 사찰은 고운사, 대흥사, 동화사, 마곡사, 백양사, 범어사, 법주사, 봉선사, 선암사, 선운사, 송광사, 수덕사, 용주사, 월정사, 은해사, 직지사, 통도사, 해인사, 화엄사 등이다.
전승해온 다비의 방법은 사찰마다 다르다. 대개 통나무, 장작을 연소 주재료를 해서 숯, 솔가지, 새끼줄, 짚을 부재료로 삼는데, 새끼 타래나 짚이 주재료인 사찰도 있다.
연화단 조성은 온돌 고래 방식을 사용해 통나무와 부재료를 두르는 방식, 벽돌ㆍ돌담ㆍ철제 등으로 상설 구조물을 만들고 다양한 재료를 쌓아 조성하는 방식, 새끼 타래를 쌓아 조성하는 방식, 나무받침대에 통나무와 장작을 쌓는 방식, 화장용 화로를 조성해 장작을 지피는 방식 등이 있다. 세부적 구성에서도 독자적 방식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최근 다비는 비정례적으로 일부 큰스님 입적 때만 진행되면서 전수자 부족과 설행(設行) 기록 부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과 다비작법보존회는 지난 24일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다비의 가치와 전승’를 주제로 첫 학술대회를 갖고 다비의 보전과 전승을 위한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다비작법보존회는 다비의 보존과 계승이 불교의 당면 과제라는 인식 하에 지난 3월 발족된 단체다.
구미래 불교민속연구소 소장은 학술대회에서 한국 다비에 대해 “다른 불교국가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하고 체계적인 장법”이라며 “일상 수행과 다를 바 없이 각자 형편에 따라 자체적으로 죽음을 감당해오면서, 문중 특유의 다양한 다비의식을 봉행해왔다”고 평가했다.
구 소장은 최근 전통 다비가 전승 기반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그는 “승가 전문가조차도 체계적인 교육과정 없이 큰스님 장례를 봉행하면서 의식을 습득해왔고, 마땅한 전수자도 없는 현실”이라며 “수십 년 전까지 사부대중이 각자 역할을 나누어 의식을 봉행했지만, 지금은 의식을 주관하는 노스님이 있어도 함께 할 전승 주체가 없어 자체적인 다비 진행이 어렵다”고 우려했다.
전통 다비장이 있더라도 수십 년간 방치한 곳이 많다. 이 때문에 조계종의 경우 다비장에 해당하는 조건을 갖춘 곳은 14〜15개 정도에 불과하다. 이러한 사정으로 2013년 즈음부터 재가 전문단체가 상장례를 대행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구 소장은 “법식보다는 효율적이고 표준화된 다비의식이 이뤄지고, 다비에 필수적인 요소들 또한 옛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며 “전통 다비의식에서 망실된 부분을 복원하는 가운데, 현실적 문제를 해결할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했다.
황근식 동국대 교수는 “2000년 1월부터 2023년 7월까지 약 23년간 행한 다비는 총 290회”라며 사찰별 다비 방식을 발굴·기록, 관련 장엄 및 의례문과 의례집을 현대에 맞게 정비하는 등 전통 다비의 기준을 수립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황 교수는 “전승하는 스님이 고령화하고 전수하고자 하는 스님이 없다는 점, 다비 재료의 획득과 확보가 어렵다는 점, 연화대 관리가 평시에 이뤄지지 않고, 다비단 제작 방식에 관한 설계 도면, 화장 시간, 사진, 동영상 등 관련 기록을 관리 유지하지 못한다 점 등 다비를 개별 사찰에서 맡아 행하는 경우의 한계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통 다비의 전승과 보존을 위해서는 종단 차원의 관심과 접근이 필요하다”며 종단 총무원 산하 부설 기관 혹은 독립된 기관으로 ‘다비 작법 상조회’를 설치 운영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다비는 불교 전래와 함께 자연스레 한국의 전통문화로 흡수, 전승된 불교장례법으로 승가 상례 의식집의 편찬과 함께 불교 특유의 의식으로 자리잡았다”며 “종단 책임자로서 소중한 문화유산이 단절되지 않고 후대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다비작법보존회 회장 현법 스님은 “근래에 다비가 비정례적으로 일부 큰스님 입적 때만 봉행돼 전수자가 부족하고, 설행 기록도 부재해 전승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다비 전승을 위해 학술적·문화유산적 가치를 조명하고 국가무형문화유산 지정을 위한 초석을 마련하고자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