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현지시간)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 도착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러 정상회담에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러시아 대통령실 사진 제공(크레믈린 홈페이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이 거의 3일 동안 전용열차를 달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려는 이유를 두고 온갖 추측이 나온다. 또 서방과 달리 김정은의 동선에 대해 북한은 물론 러시아도 자세하게 밝히지 않아 회담 장소와 시간, 행사 일정 등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현재 두 사람의 만남을 가장 주시하는 나라는 미국이다. 러시아 무기와 호환되는 막대한 포탄과 로켓탄, 미사일을 보유한 북한이 러시아를 지원할 경우 우크라이나 전황에 영향이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갈수록 커지는 북한의 핵위협에 직면한 한국으로선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미사일, 핵잠수함, 정찰위성, 첨단 전투기 등 각종 첨단 무기 기술을 지원받을 가능성을 극도로 경계한다.
북한이 국가 정체성의 기초로 삼는 ‘반일주의(反日主義)“의 상대, 일본도 당연히 우려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러시아 편을 들면서도 무기 지원은 꺼려온 중국으로서도 북한이 러시아와 밀착해 대거 무기를 지원하는 일이 달갑지만은 않은 일일 듯하다.
김정은-푸틴 회담이 언제 열리고 무엇을 논의하며 그 의미는 무엇인 지 짚어본다.
우크라 졸전에 처량해진 푸틴, 북한의 전 세계 위협 확산 돕는다
미 CNN은 12일(현지시간) 분석기사에서 김정은-푸틴 회동의 의미를 두 가지로 평가했다. 우선 스스로를 18세기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에 비유해온 푸틴이 국민을 굶기는 가난한 북한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된 처지를 비꼬았다.
둘째, 우크라이나 전쟁이 갈수록 전세계에 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을 여러 차례 공격하고 수시로 위협해온 ’왕따 국가‘ 북한의 위협이 동북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미 뉴욕타임스(NYT)는 김정은-푸틴 회담이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린다”면서 신냉전 구도가 굳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푸틴이 얻을 것들
지난 7월 러시아 국방장관으로서는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한 세르게이 쇼이구 장관 행보에서 푸틴이 김정은에게 원하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쇼이구는 북한의 무기전시장을 방문했고 양국이 합동군사훈련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도로 군사화한 북한은 탄약을 대량 보유하고 있다. 러시아는 우선적으로 포탄과 대전차 미사일을 긴급히 원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푸틴은 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로 미국을 위협하는 북한을 동맹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미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인도태평양 지역, 나아가 전 세계를 무대로 중국과 패권 경쟁을 하는 미국으로선 대국 러시아의 가담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김정은의 소득
코로나 국경봉쇄를 풀자마자 4년 만의 첫 외유에서 러시아를 방문하는 김정은은 큰 기대에 부풀어 있을 것이다.
우선 국제적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국내외 위상을 높일 수 있다. 이에 더해 중국을 상대로 한 협상력이 한층 커질 수 있다.
무엇보다 푸틴이 북한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를 사실상 공개적으로 무력화할 가능성이 있다.
지난주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이 김정은-푸틴 회동을 발표하면서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하면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했지만 미국의 추가 제재 만으로 북한을 압박하긴 어려울 전망이다.
13일(현지시간)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 도착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러 정상회담에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첨단 군사기술 지원은 러시아의 마지노선
첨단 군사기술 지원은 러시아가 북한에 줄 수 있는 마지노선이다.
사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북러 사이에 협력이 빠르게 진전돼 온 듯하지만 막상 북한은 탄약과 무기 재고가 바닥나가는 러시아를 애태워온 것으로 전해진다.
러시아군이 사용할 만큼의 탄약이 아닌 바그너 용병그룹이 쓸 만큼의 탄약만 보내면서 지원할 용의가 있음을 알렸다.
그러던 북한이 평양에 온 쇼이구 국방장관을 이곳저곳 끌고 다니며 각종 재래식 무기를 실컷 자랑했다. 여기에 혹한 쇼이구 장관이 푸틴과 정상회담을 주선한 것이다.
북한은 애태우기 협상으로 무엇을 노렸을까. 3일 동안 기차를 달리는 강행군을 해가며 푸틴을 만나는 김정은으로선 강행군에 걸맞은 대가를 기대할 것이다.
김정은은 정찰 위성 및 핵잠수함 기술과 탄도미사일 기술, 첨단 전투기 기술 등 러시아의 첨단 군사 기술 지원을 기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 들어 두 차례 정찰위성 발사가 실패한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정상회담 장소가 러시아의 새 우주기지에서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로선 첨단 군사기술 지원을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처지다. 자칫 냉전 시대 미국과 힘겨루기를 하는 터전이던 유엔을 형해화해 러시아의 국제적 영향력을 크게 훼손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 첨단 군사 기술 지원으로 국방력을 충분한 발전시킨 뒤의 북한이 언제 어떻게 다시 러시아를 배신할 지도 모른다. 김일성 시대부터 북한은 러시아를 중국에 대한 지렛대로 사용한 전력이 있다.
결국 러시아는 북한과 굳건히 신뢰할 수 있는 동맹 관계를 구축할 때까지 첨단 군사기술을 바둑판의 팻감처럼 사용하며 찔끔찔끔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이번에 러시아가 북한에 내줄 수 있는 첨단 군사 기술은 정찰위성 발사 관련 기술에 국한될 가능성이 있다.
반면 러시아는 유엔 제재에도 아랑곳없이 북한과 교역을 크게 늘림으로써 북한의 경제난을 덜어줄 수 있다. 북한이 가장 아쉬운 석유 공급이 대표적이다.
경제 협력도 주목
트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대통령궁 대변인은 북러 정상회담에서 무역과 경제 협력을 포함하는 양자 협력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또 ”지역 현안에 대해 광범위한 의견을 교환할 것“이라면서 ”당연하지만 이웃인 두 나라가 일부 민감한 사안에 대해 협력할 수 있으며 이는 공개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페스코프 대변인 발언은 두 정상이 경제 관계를 논의하지만 그보다 무기 거래 논의가 더 중요할 수 있다고 시사한 꼴이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푸틴이 김정은에 만찬을 베푼다고 밝혀 정상회담에 큰 기대를 하고 있음도 드러냈다.
그러나 북러 간 경제 협력 강화도 중요한 사안이다. 북한은 러시아 극동 지방에 크게 부족한 노동력을 대거 지원할 수 있다. 그 대가로 벌어 들이는 돈으로 부족한 외화수입을 충당할 수 있다.
이 역시 유엔 안보리 제재를 위반한 것이지만 기존에도 러시아는 북한 노동자들을 계속 활용해왔다. 또 지난해에는 북한의 노동자들을 우크라이나 점령지 재건에 투입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 곡물 수출국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래 수출하지 못하는 곡물이 잔뜩 쌓이자 아프리카 국가들에게는 무상으로 지원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수십 년 동안 식량난을 극복하지 못하는 북한으로선 러시아의 곡물을 공짜로, 아니면 거의 공짜로 받는 것도 매력을 느낄 만한 사안이다.
무기 개발에 모든 자원을 투입하는 탓에 굶주려온 주민들에게 ”위대한 영도자 김정은 위원장이 식량난을 단숨에 해결했다“고 선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