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첫 공간컴퓨터 ‘비전 프로’가 최대 4천달러 가까운 고가임에도 사전 판매를 시작한 미국에서 품귀 현상을 빚었다. 매장에서 수령 가능한 물량이 매진됐고, 온라인 배송 날짜도 미뤄졌다. 이를 두고 흥행의 전조 현상인지, 공급 부족에 따른 현상인지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애플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비전 프로의 사전 판매를 태평양 시간 기준 19일 오전 5시부터 시작했다. 공식 판매일은 2월 2일이다.
사전 판매는 온라인 주문 후 배송 받는 방식과 매장에서 수령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사전 판매 첫날부터 매장 수령 물량이 매진됐으며, 온라인 주문 배송 날짜는 3월 8~15일로 연기됐다.
혼합현실(MX) 헤드셋인 ‘비전 프로’는 애플이 지난 2015년 애플워치 공개 이후 9년 만에 내놓은 새로운 유형의 폼팩터(제품 외형)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6월 열린 세계개발자회의에서 “맥은 개인용 컴퓨팅 시장을 열었고, 아이폰은 모바일 컴퓨팅을 개척했다”며 “비전 프로는 공간 컴퓨팅 시대를 이끌 것”이라고 자신했다.
‘비전 프로’ 출시 소식에 애플 주가는 19일 뉴욕 증시에서 1.8% 상승한 191.95달러를 기록하며 1월 하락폭 2%를 대부분 만회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들은 ‘비전 프로’ 초기 매출 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UBS 그룹 AG의 애널리스트 데이비드 포크트는 애플이 올해 30만대에서 40만대를 출하해 14억 달러를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383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린 애플에겐 유의미한 수치가 아니다.
‘비전 프로’는 저장용량에 따라 3가지 모델로 판매된다. ▲256GB(기가바이트) 모델은 3499달러(약 468만원) ▲512GB 모델은 3699달러(약 495만원) ▲1TB(테라바이트) 모델은 3899달러(약 521만원)다. 메타의 최신 VR 기기보다 약 7배 더 비싸다.
이 외에도 애플은 ‘비전 프로’ 부속품으로 휴대용 케이스와 추가 배터리를 각각 199달러, 여분의 밴드를 개당 99달러에 판매할 것으로 보인다.
‘비전 프로’를 사전 구매하기 위해서는 페이스 ID 기능이 있는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로 얼굴을 스캔해야 한다. 페이스 ID는 눈·코·입 등 얼굴 인식을 활용한 애플 고유의 보안 기술이다. 페이스 ID 얼굴 스캔을 통해 사용자의 머리 사이즈를 측정하고, 그에 맞는 머리 밴드 등의 구성품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Apple has released a 10 minute guided tour of Apple Vision Pro pic.twitter.com/qkVMQhPABJ
— Apple Vision Report (@spatialreport) January 19, 2024
‘비전 프로’는 안경을 쓰는 저시력자도 사용할 수 있도록 기기에 자체적으로 시력 교정 기능을 담았다. 다만 시력 교정을 위해서는 149달러(약 20만원)의 자이스 광학 부품(렌즈)을 별도로 구매해야 한다. 이 경우 미국의 안경 처방전을 제공해야 한다. 이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해외 구매자들의 불편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애플은 미국을 시작으로 향후 몇 달 내에 영국, 캐나다, 중국 등으로 판매 국가를 순차적으로 확대할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이폰도 2~3차 출시국에 해당하는 만큼, ‘비전 프로’의 첫 번째 해외 출시 국가에서도 배제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관건은 초기 물량이다. VR과 AR이 결합된 헤드셋의 듀얼 4K 해상도 디스플레이는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애플이 수개월 동안 생산량을 늘려왔기 때문에 초기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애플이 직원들에게 25% 할인된 가격으로 기기를 제공하고 있어 공급이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전했다.
‘비전 프로’에는 8코어 중앙처리장치(CPU)와 10코어 그래픽처리장치(GPU)로 구성된 M2 칩이 탑재됐다. 완전히 새로운 R1 칩은 12개 카메라, 5개 센서, 6개 마이크가 입력한 정보를 처리해 콘텐츠가 사용자의 눈 앞에서 실시간으로 보이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한다. R1 칩의 메모리 대역폭은 256GB/s로 사람 눈 깜빡임 대비 8배 빠른 속도로 각 디스플레이의 이미지를 연결한다. 또한 맞춤형 마이크로 OLED 디스플레이 시스템은 2300만 화소를 자랑한다.
이를 통해 세계 최초의 공간 운영체제(OS) ‘비전 OS’를 구현했다. 이는 3D 인터페이스를 제공함으로써 앱이 화면의 제약에서 벗어나도록 하고 앱을 원하는 크기로 나란히 배열할 수 있게 해준다. 이외에도 3D를 통해 물리적 공간을 벗어나 다른 세상을 체험할 수 있는 ‘환경’ 기능, 애플 최초의 3D 카메라, 통화 상대가 실물 크기 타일로 구현되는 페이스타임, 눈·손·음성으로 제어 가능한 완전히 새로운 입력 체계, 비전 프로 착용자 근처에 다가가면 기기가 투명화되는 ‘아이사이트’ 기능 등도 담겼다.
다만 출시 초기엔 주요 스트리밍 앱의 지원 부족으로 사용자 경험이 축소될 전망이다. 넷플릭스, 스포티파이, 유튜브는 ‘비전 프로’와 ‘비전 운영체제(OS)’ 플랫폼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애플의 앱스토어 운영 방식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기업들이다. 당분간 ‘비전 프로’에서 이들의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웹 사이트(URL)를 통해 접속해야 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