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안과의사 코난 도일(Sir Arthur Conan Doyle)은 병원을 개업했지만 손님이 없었다. 무료해 쓰기 시작한 소설이 크게 인기를 얻자 의사직을 접고 아예 작가로 전업했다. 그 소설의 주인공이 탐정 ‘셜록 홈즈(Sherlock Holmes)’다.
하지만 애초에 추리소설보다는 역사소설 등에 관심이 더 많았던 그가 홈즈를 죽게하고 연재를 중단하려하자 극성 독자들은 검은 완장을 차고 조문편지를 보내는가 하면 살해위협도 했다. 결국 독자들의 끈질긴 항의와 요청에 못이겨 셜록 홈즈는 부활한다.
그렇게 타시 태어난 그의 인기는 소설이 나온 지 무려 100년이 넘은 지금도 식을 줄 모른다. 그가 살던 집이자 사무실이었던 ‘베이커가(街) 221B번지’는 작가가 지어낸 가상주소였는데 아직도 ‘셜록 홈즈’ 에게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전 세계팬들의 사건 의뢰 편지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 자리엔 그의 박물관이 들어섰다)
왜 이런일이 일어날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열정적이게 마련이다. 그러다가 애착심이 생기고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같은 편이라는 유대감을 갖게되고 결속력이 다져진다.
마치 BTS나 테일러 스위프트가 그들만의 제국같은 아성을 이뤘듯이 ‘마니아’ 혹은 ‘팬덤(Fandom)’ 증상 때문이다.
그럼 팬덤의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저널리스트 마이클 본드(Michael Bond)는 저서 ‘팬덤의 시대(Fans)’에서 21세기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팬덤’이고 그 핵심은 ‘소속감’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기껏해야 야구경기장 정도에서 보였던 집단 소속감, 팬덤이 공적으로 드러나고 서로 공유되기 시작한 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발전이 큰 몫을 했다.
그러면서 팬덤의 연령층도 다양해졌다. 예전에는 연예인을 좋아하고 쫓아다니는 게 ‘오빠 부대’라 불리던 십대들이었다면 이제는 모든 연령층에서 나타나고 연예인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도 일어나는 현상이 되었다.
비평가 앤드류 튜더는 ‘스타와 팬의 관계’를 4가지 요소로 설명한다. 서로 감정적으로 친근감을 느끼고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스타의 모습을 모방하고 심리적으로 완전히 몰입하게 되는 것이라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팬은 스타를 통해 자신의 욕구를 대리만족하고 스타는 팬의 사랑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구축함으로써 서로가 원하는 바를 상대로부터 충족하며 행복감을 갖게 된다는 거다.
헌데 문제는 팬들이 유명인과 자신을 동일시할 때 그들에 대한 충성심은 강해지는 반면 타집단에 대한 증오는 깊어지고 적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일례로 마이클 잭슨이 아동 성추행으로 기소됐을 때 ‘사실’ 여부를 떠나 무죄 주장 캠페인을 벌인 것을 말한다. 이처럼 팬덤은 유명인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이성적 판단보다는 그들이 이룬 성취에 초점을 맞춰 행동한다. 팬덤이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스타의 이름으로 하는 불우이웃 돕기, 기부 라든가 친환경 캠페인 또는 사회문제가 되는 제도 개선 등 의식있는 활동으로 생산적이고 건강한 공동체 성격을 지니게 하는 점이다.
하지만 그 영향력이 세지면서 부작용도 나타난다. 자기편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 상대편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제와 혐오에 의한 공격 등, 광기 어린 팬덤은 법과 윤리, 정의와 진실 심지어 인간성에서 까지 벗어난다.
이처럼 팬덤은 양날의 칼이다. 해서 저자는 팬덤을 ‘건설에 사용될 수도 있고 파괴에 사용될 수도 있는 다이너마이트 같은 것’이라고 했다.
최근에 한국의 유명 트롯트 가수의 음주운전 뺑소니 사건에 따른 변명과 거짓말, 조작 등에 팬덤들의 감싸기까지 사회가 온통 시끄럽다. 잘못을 해 놓고도 인정하지 않는 뻔뻔함에 더해 이런 행태를 오히려 옹호하는 현상들이 어느 새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려져 있는 모양새다.
헌데 이런 풍조에 앞장 서 온 것이나 다를 바 없는 곳이 있다면 단연 정치권 아닐는지. 웃물이 맑지 못하기는 커녕… 어느 스님이 일갈한 ‘3치(恥)’가 떠오른다. 파렴치! 몰염치! 후안무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