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유럽 의회 선거에서 극우파 세력이 약진하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키로 한 것은 큰 도박이라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10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의회 선거 패배에 굳이 반응하지 않아도 됐다. 반응하더라도 개각을 하거나 이민 정책을 강화하거나 실업 혜택 감축을 포기하는 정도로 충분했다.
그런데 마크롱 대통령은 정면 승부를 걸었다. 39세이던 2017년 승부수를 던져 대통령이 된 그다. 이번에 유럽의회 선거에서 드러난 프랑스 유권자들의 표심이 몇 주 뒤 있을 총선에서도 재연될 것이냐를 묻고 있다.
“에마뉘엘, 저돌적 인간”이라는 책의 저자 알렝 뒤아멜은 “광기도, 절망도 아니며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주도권을 쥐려는 충동적 인간이 큰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크롱의 승부수는 프랑스를 뒤흔들었다. 주식시장이 하락했다. 올림픽 개최 6주를 앞둔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불안한” 결정에 “크게 놀랐다”고 말했다. 르파리지앵지는 1면 전면 제목이 “벼락이 떨어졌다”였으며 르몽드지는 “허공을 향한 점프”라고 평했다.
르파리지앵지 “허공을 향한 점프”
프랑스 유럽의회 선거에서 3위를 차지한 중도좌파 사회당의 지도자 라파엘 글뤽스만은 마크롱 대통령이 “위험한 도박을 벌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마크롱은 자신이 속한 르네상스당 연립정부가 극우 국민시위당에 참패하자 프랑스 국민들이 진정으로 극우 세력의 집권을 바라는지 아니면 단순히 경고하는 것인지를 묻고 나섰다.
앞으로 한 달 여 뒤 마크롱은 28살의 국민시위당 대표 조르당 바르델라 총리와 함께 일하게 될 수도 있다. 프랑스 조기 총선에서 우파가 과반수를 차지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다만 극우파가 1당이 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마크롱이 극도로 혐오하는 바르델라와 어쩔 수없이 손을 잡아야 하는 상황을 배제하기 어려운 것이다.
2027년 대선 출마를 겨누는 마린 르펜 국민시위당 지도자는 당연히 바르델라를 총리로 밀 것이다.
마크롱과 노선 정반대 28세 극우 총리 등장 가능성
바르델라가 총리가 되면 2차 대전 당시 독일 나치에 협력한 비시 괴뢰 정부 이래 프랑스 정치사상 처음으로 극우 정부가 들어서는 셈이다.
릴대 장-필립 드루지에 법학교수는 “마크롱이 2027년 르펜이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국민시위당 총리와 일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2027년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마크롱이 3년 동안 국민시위당이 야당을 넘어 책임 있는 집권당이 될 자격이 있는 지를 시험하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프랑스에는 소속 정당이 다른 대통령과 총리가 동거한 사례가 적지 않다. 그러나 마크롱과 국민시위당 총리처럼 이념적 차이가 극단적인 동거 정부는 없었다.
마크롱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시험대에 오른 유럽이 군사 및 산업을 통합해야만 21세기를 이끌어갈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그는 이번 총선이 러시아의 위협에 직면한 유럽의 생존이 걸린 게임으로 본다.
마크롱은 조기 총선을 발표하면서 프랑스가 역사적 분기점에 놓였음을 강조했다.
그는 “프랑스인은 언제나 도전에 맞서왔다. 투표의 가치를 알며 자유를 중시한다. 어떤 여건에서도 책임 있게 행동해야 역사에 휩쓸리지 않고 역사를 주도할 수 있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라고 말했다.
“역사에 휩쓸리지 않고 주도해야” 강조
마크롱의 발언은 1968년 학생 시위에 맞서 샤를 드골 대통령이 조기 총선을 실시하면서 했던 말을 상기하게 한다. 당시 프랑스 유권자들은 질서 회복을 선택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속한 중도 르네상스당은 중도 우파 공화당과 중도 좌파 사회당과 간신히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공화당과 사회당 모두 르네상스당과 더 이상 연합할 생각이 없는 상황이다.
마크롱이 조기 총선 승부수를 던진 것은 이런 상황을 타개해 보려는 생각도 있을 것이다.
마크롱은 정부 재정 긴축과 은퇴연령 상향, 실업자 혜택 감축 등을 밀어붙여 왔다. 마크롱 정부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이 팽배해진 가장 큰 이유다. 그럼에도 마크롱은 이들 정책을 조기 총선의 화두로 던졌다. 그의 정치 역정에서 가장 큰 도박에 나선 것이다.
마크롱은 프랑스 유권자 상당수가 아직 르펜이 집권하기를 바라지 않는 것으로 믿는다. 작가 장 콕토는 “미스터리가 닥치면 우리가 미스터리를 만든 것처럼 보여야 한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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