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유럽이 이민을 가로막는 가운데 총리까지 나서서 이주를 장려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정열의 나라 스페인이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최근 국가 번영을 이끌 방법으로 이민자 수용을 선택했다.
극우 정당 약진이 두드러지는 유럽에서 반(反)이민은 주요 의제로 많은 지지세를 안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등 분야에서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유럽인 상당수는 이민자의 문화적 이질성에 그 원인을 돌리고 있다. 그 때문에 스페인이 보이는 이민 장려 정책은 유럽 대다수 국가와 그 국민이 보이는 태도와는 극명하게 다르다고 평가된다.
가디언에 따르면 산체스 총리는 9일(현지시각) 스페인 의회에서 “스페인이 개방적이고 번영하는 국가가 될지 아니면 폐쇄적이고 가난한 국가가 될지 선택해야 한다. 선택은 간단하다. 역사를 통틀어 이주는 국가 발전의 엄청난 원동력 중 하나였다”고 강조했다.
그는 “증오와 외국인 혐오는 국가를 파괴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해 왔고 지금도 그렇다”면서 “핵심은 이를 잘 관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동시에 유럽연합(EU)에서 합계출산율 최하위권을 달리는 스페인 입장에서 이주는 경제 성장을 이끌고 복지 국가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현실적 수단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출생아가 줄어들면서 경제적 동력을 잃어가는 스페인에서 이민·이주를 통한 인적자원의 외부 공급이 필요하다는 점을 피력한 셈이다. 실제로 스페인 평균 합계출산율(1.16명)은 유럽연합통계청(Eurostat·유로스타트)이 발표한 2022년 EU 회원국 평균 합계출산율(1.46명)과 비교해 크게 낮다.
이는 유럽 각국 정부가 극우 정파의 득세와 더불어 이민 단속을 강화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움직임이다. 지난달 독일은 이슬람교도 테러와 심각한 범죄로 인한 위험으로부터 자국 보호를 명분으로 국경 검문을 다시 도입했다. 이웃국 프랑스에서도 미셸 바르니에 총리가 최근 이민자 수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경계심을 드러냈다. 아프리카 이민자로 골머리를 앓는 이탈리아는 인권 침해 비판에도 이민 차단에 앞장서고 있다. 나아가 아프리카와 지리적으로 먼 북유럽 스웨덴과 핀란드도 이민 통제 조치 도입 계획을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산체스 총리는 “스페인은 다른 길을 선택할 것”이라면서 “이주민을 노동시장에 더 잘 통합시키고 거주 신청과 관련한 불필요한 행정상 요식을 줄이기 위한 자원을 마련할 것”이라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절반에 가까운 지방자치단체가 인구 감소 위기에 처해 있다”며 “간병인이 필요해도 이를 구할 수 없는 노인이 있다. 컴퓨터프로그램 개발자, 기술자, 조적공이 필요하지만 구할 수 없는 회사도 있다. (이민자를 수용하면) 어린이가 필요한 시골 학교는 문을 닫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프란시스코 프랑코 에스파냐국 초대 카우디요(수장) 집권기(1936~1975년) 스페인인 200만 명이 해외로 이주한 사례를 들며 현대에 이주자를 받는 것은 스페인이 진 부채라고 주장했다. 동시에 지난 10년 동안 스페인에 입국한 이민자 10명 중 9명(94%)은 합법적으로 입국했다며 유언비어와 선동에 휘둘리지 말라고 목소리 높였다.
다만 스페인에서도 다른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이민자를 경계하는 시선은 존재한다. 이 같은 민심을 반영해 지난해 7월 스페인 유권자는 총선에서 산체스 총리가 속한 사회노동당(PSOE)이 아닌 우파 성향의 국민당(PP)을 제1당으로 선택했다. 노골적인 반이민 정책을 주창하는 극우 정당 복스(Vox·소리)도 원내 3당에 포진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