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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원식 국회의장이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상대로 낸 권한쟁의심판 청구 과정에서 국회 본회의 의결이 필요한 지 여부를 놓고 헌법재판소에서 공방이 벌어졌다. 최 권한대행 측은 국회 의결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반면 국회 측은 “별다른 규정이 없어 청구가 가능하다”고 맞섰다.
헌재는 10일 오후 대심판정에서 우 의장이 최 권한대행을 상대로 낸 권한쟁의심판 사건 2차 변론기일을 진행했다.
최 권한대행은 지난해 12월31일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 3명 중 조한창·정계선 후보자만 임명하고 마은혁 후보자에 대해선 임명을 보류했다. 여야 합의가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우 의장은 지난달 3일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이 사건에 대한 조기 변론을 실시한다는 방침을 밝히고 별도의 준비절차 없이 지난달 22일 변론기일을 열었다.
헌재는 지난 3일 선고기일을 잡았지만, 최 대행 측이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며 변론재개 신청서를 제출했고 변론이 재개됐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이날 변론이 재개된 이유에 대해 “재판부는 피청구인 측 주장에 대해 변론에서 진술하고 추가 제출 증거에 대한 증거조사를 거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헌재는 최 권한대행 측이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증인으로 신청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문 권한대행은 “증인의 입장은 이미 제출된 것을 통해 나타나 증인신문이 더 필요한 것으로 판단되지 않는다는 게 재판부 의견”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변론에서는 우 의장이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기 전 해당 사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을 거쳐야 했는지 여부를 두고 양측의 입장이 엇갈렸다.
최 권한대행 측은 국회의장에게 국회의 의사를 단독으로 대표할 수 있도록 규정된 권한이 없다면서 국회의 대외적 권한은 본회의 의결로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권한대행 측 이동흡 변호사는 “국회의장은 국회를 대표하고 질서를 유지하고 사무를 감독하는 등 여러 권한이 있지만 국회 의사를 단독 직권으로 표시할 권한 없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국회의 의사는 본회의를 통해 결정되는 것이지 국회의장이 본회의를 거치지 않은 채 국회의원의 의사를 대표하거나 대체할 수 없다”며 “국회의 이름으로 권한쟁의심판 제기하기 위해선 국회 내 의결을 거쳐야 한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만일 (의장이) 단독으로 청구할 수 있다면 국회 구성원인 의원 다수가 권한이 침해되지 않았다고 판단해도 의원의 의사 없이 청구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며 “국회의장이 다수 의사와 반해도 단독으로 청구할 수 있다는 건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했다.
반면 국회 측은 국회가 청구인이 되는 권한쟁의심판에 관한 청구 절차를 명시적으로 정한 규정이 없으며, 이에 본회의 의결 없이도 청구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국회 측 양홍석 변호사는 “권한쟁의 심판 청구 여부를 의사로 처리할 헌법·법률상 근거 없기 때문에 의안으로 성립할 수 없다”며 “탄핵심판은 헌법과 법률에 비교적 상세한 규정 두고 있어 문제가 없지만 권한쟁의는 별다른 규정이 없다”고 했다.
양 변호사는 “규정 공백 상태인 입법 불비 영역이라고 해도 국회가 헌법상 당사자로서 청구하는 건 가능해야 한다”며 “규정이 공백인 상황이라도 국회의 자율적 의사결정이 빛을 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국회 측은 이와 관련해 재판부가 본회의 의결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준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 권한대행은 국회 측이 의견서에서 ‘흠결을 보완하겠다’고 말한 취지에 대해서 물었고, 이에 대해 국회 측은 “본회의 의결 필요하다고 하면 국회는 본회의 의결을 할 수 있는 준비를 하겠다”고 답했다.
문 권한대행이 얼마나 시간이 걸릴 것 같냐고 묻자 국회 측은 “여야 간 협의 해야 할 문제라 기간을 말씀드리기는 어렵다”며 “2주 이상은 걸릴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문 권한대행은 “낼 의향이 있다면 내라”라고 했다.
과거 국회가 제기한 다른 소송에서 본회의 의결 과정을 거쳤는지 여부도 쟁점이 됐다.
김형두 헌법재판관은 과거 국회가 실질적 원고로서 지방자치단체 등을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에 대한 본회의 의결 여부를 질문했는데, 국회 측은 “없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최 권한대행 측은 “민사상·행정법상 권리와 헌법상의 권한은 성격이 다른 것”이라고 했다.
국회 측 양 변호사는 변론기일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본회의 의결이 필요하다면 준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 “국회 내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를 해봐야 한다”고 했다. 문 권한대행의 발언에 대해선 “의결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구체적인 말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 권한대행 측은 국회 측이 ‘흠결을 보완하겠다’는 의견을 낸 것에 대해 “국회 의결 관련 흠결이 있다는 것을 청구인 측에서 자인한 것”이라며 “법리적으로 보완해서 할 수 있는 건지, 아니면 각하를 해야 하는 것인지는 재판관 평의에서 결정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했다.
최 권한대행 측은 이날 변론에 앞서 지난 7일 정계선 재판관이 이번 사건 심리에서 빠져야 한다며 회피 촉구 의견서를 내기도 했다. 다만 정 재판관은 이날 변론에 참석했다.
최 권한대행 측은 회피 촉구 의견서 제출에 대해 “정 재판관은 서울서부지법원장으로 근무했고, 마 후보자는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로 근무했다”며 “같은 기관에서 근무해 이해관계에 있어 회피해야 한다고 봤다”고 말했다.
헌재는 이날 변론기일을 마지막으로 변론 절차를 종결하고 재판관 평의를 거쳐 선고기일을 양측에 통보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