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은 575돌 한글날이다.
그룹 ‘방탄소년단'(BTS)과 세계적 브릿팝 밴드 ‘콜드플레이’가 협업한 곡 ‘마이 유니버스’가 이날 자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에서 1위를 차지했다.
‘마이 유니버스’는 방탄소년단이 한국어로 부른 부분이 포함돼 있어 의미가 남다르다. 특히 방탄소년단과 콜드플레이가 서양과 동양, 밴드와 아이돌 그룹이 코로나19 시대라는 난관을 뚫고 화합한 순간들이 담겼다.
국적·인종·언어 벽을 뚫고 희망을 노래하는 음악적 소통으로, 세계에 위로와 교감의 메시지를 던진 것이 세계 음악 팬들 사이에서 통했다는 반응이다.
방탄소년단 덕에 K팝이 ‘음악적 모국어’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팬덤 ‘아미(ARMY)’가 문화언어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위로와 희망을 주는 방탄소년단의 노래로 공통된 정체성을 형성한 아미들이 국적·인종과 상관 없이, 같은 언어를 사용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 부합하는 사례가 계속 나오고 있다. 일본 보이그룹 ‘초특급’이 지난달 발표한 한글 제목의 노래 ‘같이 가자’가 대표적인 예다.
일본인 다섯 멤버로 구성된 이 팀은 ‘같이 가자’에서 “오 괜찮아, 좋은 느낌” “내 손 잡고 돌고 돌아” 등 일부 노랫말을 한국어로 부른다. 일본어, 영어와 함께 균등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노래 구조도 멜로디와 박자 등에서, 춤 등에 특화된 전형적인 K팝 문법을 따랐다.
현지 소속사도 ‘같이 가자’에 대해 “K팝 풍의 노래로 경쾌한 하우스 튠의 노래다. 현재 세계에서 주목받는 K팝의 정수를 초특급 스타일로 승화시켰다”고 소개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이미 한국어가 포함된 노래가 종종 선보여왔다. 베트남 인기 가수 에릭(ERIK)은 ‘짬 다이 노이 다우(Chạm Đáy Nỗi Đau)’라는 노래에 한국어 “가지마”를 포함시키기도 했다.
베트남은 올해 2월 한국어를 제1외국어로 채택한 국가인 만큼 한국어를 쓰는 것이 비교적 자연스럽다. 현지 가수 비엣 아텐은 지난 2019년 발표한 곡 ‘안녕(Annyeong)’의 후렴구에서 한국어 ‘안녕’을 반복했다.
세계 팝의 본고장으로 통하는 미국의 팝스타들도 자신들의 곡에 한국어를 적극 차용했다. 방탄소년단 슈가가 중심에 있다. 미국 팝스타 할시의 ‘슈가스 인터루드(SUGA’s Interlude)’, 맥스의 ‘블루베리 아이즈’에 슈가가 한국어 랩으로 피처링했다.
방탄소년단의 대표곡 중 하나인 ‘아이돌’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팝스타 니키 미나즈는 뮤직비디오에 자신의 영어 랩을 한글로 표기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제안하기도 했다.
지난 5월 세계적 팝스타 레이디 가가가 발표한 ‘사워 캔디(Sour Candy)’에 K팝 간판 걸그룹 ‘블랙핑크’가 피처링을 했는데 노랫말에 한국어가 역시 포함됐다. 그룹 ‘마마무’ 멤버 화사도 두아 리파의 곡 ‘피지컬(Physical)’에서 한국어 가사로 자신의 파트를 불렀다.
K팝은 최근 몇년 간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로 급부상했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2021 글로벌 한류 트렌드’에 따르면, K팝이 16.8%의 응답률로 4년 연속 한국 연상 이미지 1위에 올랐다.
이에 따라 K팝과 K팝 아이돌은 자연스레 한국문화와 한글의 대표 문화 사절이 됐다. 방탄소년단이 선봉에 있다. 일곱 멤버는 지난들 유엔총회에서 ‘미래세대와 문화를 위한 대통령 특별사절’ 자격으로, 한국어 연설을 하기도 했다.
앞서 방탄소년단은 지난해 11월 발표한 ‘라이프 고스 온’은 빌보드 ‘핫100’ 1위에 올리며 명실상부 ‘한글 알림이’ 가수로 자리매김했다. ‘라이프 고스 온’은 노랫말이 대부분 한글 가사로 이뤄졌다. 한국어 노래가 해당 차트 정상에 오른 것이 처음이었다.
미국 유력 경제 매체 포브스는 “가사의 대부분이 한글로 이뤄진 ‘라이프 고스 온’이 1위를 차지한 것은 인종 차별, 외국이 혐오에 뿌리를 둔 낡은 서구 음악산업의 관습을 전복시킨 것”이라고 극찬했다.
지난 5월 맥도날드가 방탄소년과 손 잡고, 세계 50개국에 출시된 ‘BTS 세트’는 한글이 상업적으로 부각된 사례다. 소스 포장지에 영어와 함께 한글로 내용물이 설명됐다. 각국의 맥도날드 크루가 입은 티셔츠에는 ‘ㅂㅌㅅㄴㄷ'(방탄소년단), ‘ㅁㄷㄴㄷ'(맥도날드) 같은 한글 자음이 새겨졌다.
최근 이런 흐름은 예전 한국가수들이 영미권 팝의 영향을 받아 가사에 영어를 쓰던 풍경과 겹쳐진다. 또 영미 팝이 유행하던 과거에 영미권 문화가 대거 국내에 흡수됐다.
하지만 최근 몇년 동안 방탄소년단을 선봉으로 한 K팝이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반대로 우리 문화가 해외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출간하는 옥스퍼드영어사전(OED)에 지난달 한국어 단어 26개가 실린 것이 예다. ‘한류(hallyu)’ ‘K드라마(K-drama)’ ‘먹방(mukbang)’ 등 주로 한류 열풍이 반영된 한국 문화와 연관돼 있는 것이다. ‘김밥(kimbap)’처럼 드라마와 K팝 이어 차세대 한류로 지목되는 먹을거리 단어도 대거 포함했다.
특히 ‘K팝(K-pop)’은 2016년부터 OED에 등장했다. BBC는 “실제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보거나, BTS 노래를 듣는 것과는 상관없이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의 삶에서 한국의 영향을 쉽게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장원호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와 송정은 같은 학과 SSK 연구교수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2018 한류 파급효과 연구’에 게재한 논문 ‘한류의 비경제적 가치 분석: BTS와 ARMY의 공감적 소통 사례를 중심으로’에 따르면 K팝 팬들은 자기만족 외에도 한류를 매개로 공동체를 형성한다.
옥스포드 영어사전에 먹방, 치맥, 반찬, 만화 들어가…26개 단어
팬들이 자발적인 한류 스타에 대한 애정 표현을 하고 소통하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는 팬 커뮤니티의 정체성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방탄소년단의 노래와 메시지가 글로벌하게 퍼진 이유 중 하나는 아미들의 자발적 참여다. 한국어 위주의 방탄소년단의 음악이 언어 장벽을 넘어 각국으로 전파된 이유다.
그간 한국어는 각지고, 딱딱한 어감으로 인해 세계인이 함께 부르는 노래 가사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박한 평도 일부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가 담겨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탈바꿈한 셈이다.
아이돌 제작사 관계자는 “K팝이 젊은 감수성을 아우르는 세련된 문화가 됐고, 이로 인해서 한국문화가 우대를 받는 흐름이 생겼다”면서 “한국어와 한글이 그런 문화를 대표하는 현상 중 하나가 됐다. 한글로 노래를 부르면 세련되게 보이는 경향이 있어서 해외 팝에 한국어 피처링과 한국어 가사 삽입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봤다.
K팝의 인기에 힘 입어 방탄소년단 소속사 하이브는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한국어 교재 ‘런! 코리안 위드 BTS(Learn! KOREAN with BTS)’와 ‘런! 코리안 위드 타이니탄(Learn! KOREAN with TinyTAN)’ 등을 내놓기도 했다. 또 하이브는 이번 한글날을 앞두고 방탄소년단 한글 서체 그래픽을 활용한 굿즈도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