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정통파 정당들의 이탈로 다수당 지위를 상실하게 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가자지구 전쟁 발발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연정이 소수 정부로 추락해 네타냐후 총리의 입지가 어려워진 가운데, 가자지구 휴전 협상이 이를 통해 돌파구를 찾게 될지 주목된다.
16일(현지 시간) AP,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 초정통파 유대교토라연합(UTJ)에 이어 샤스당은 이날 연정에서 탈퇴를 선언했다.
효력은 48시간 뒤 발생한다. 두 정당의 탈퇴가 확정되면 네타냐후 정부는 의회 120석 중 50석을 유지, 다수당 지위를 잃게 된다.
이번 사태는 초정통파 유대인에 대한 병역 면제 법안을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면서 발생했다.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당시부터 이어진 협정에 따라 초정통파 유대인에 대해 종교 연구에 전념하는 한 군 복무를 면제해 왔다.
하지만 2023년 10월 7일 가자지구 전쟁 발발 이후 병역 의무 면제를 놓고 이스라엘 사회 전반에서 불만이 제기됐고, 폐지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쳤다.
전쟁 장기화로 예비군 동원 규모가 커지고 사상자도 늘고 있는데, 인구 14%에 달하는 초정통파만 병역 의무를 면제해 주는 건 특혜라는 비판이다.
이스라엘민주주의연구소가 지난해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스라엘인 85%가량이 초정통파의 병역 의무화에 찬성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이스라엘 대법원은 정부에 징집 면제를 유지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초정통파 신학교 학생 수만 명에겐 최근 공식 입대 명령이 내려졌고, 이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의회에선 초정통파를 군에 점진적으로 편입시키기 위해 할당량을 규정하는 법안을 논의 중이다. 이에 초정통파가 네타냐후 총리를 압박하기 위해 연정 탈퇴라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현재로선 초정통파 탈퇴에도 연정이 붕괴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샤스당도 탈퇴는 하지만 네타냐후 정부를 지지할 것이라며, 야당과 연합해 정부 불신임 투표에 가담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AP에 따르면 이스라엘 야당은 절차상 이유로 올해 말까지 의회 해산안을 제출할 수 없다. 이달 말 여름 휴회가 시작되는 만큼, 이 기간 협상과 타협에 나서 초정통파 정당들이 연정에 복귀할 가능성도 있다.
[예루살렘=AP/뉴시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 14일(현지 시간) 예루살렘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크네세트(의회) 회의에 참석해 있다. 2025.07.17.
[예루살렘=AP/뉴시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 14일(현지 시간) 예루살렘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크네세트(의회) 회의에 참석해 있다. 2025.07.17.
그럼에도 연정이 소수 정부로 전락하면서 네타냐후 총리의 정책 기조는 추진력을 잃는 게 불가피하다.
야이르 라피드 예쉬 아티드 대표도 “소수 정부로는 전쟁에 군대를 파견할 수도, 생사를 결정할 수도 없다”며 즉각 조기 총선을 실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연정 내 극우 정당들이 탈퇴 협박을 무기 삼아 하마스와 휴전 협상에서 더 강경한 태도로 임하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극우파는 하마스가 파괴되기 전까지 전쟁을 끝낼 수 없다는 입장인데, 하마스는 휴전 협상 조건으로 전쟁 영구 종식을 걸어 협상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부패 혐의 재판을 받고 있는 만큼, 자신의 정치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최대한 극우파를 달랠 가능성이 높다.
우선 하마스와 부분 휴전에 동의하고, 휴전이 끝나면 전쟁을 재개할 것이라고 극우파에 약속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가자시티=AP/뉴시스] 지난 14일(현지 시간) 가자지구 가자시티 내 한 공동 급식소에서 기부 음식을 받으려는 팔레스타인 어린이가 식기를 옆에 놓고 기다리고 있다. 2025.07.17.
[가자시티=AP/뉴시스] 지난 14일(현지 시간) 가자지구 가자시티 내 한 공동 급식소에서 기부 음식을 받으려는 팔레스타인 어린이가 식기를 옆에 놓고 기다리고 있다. 2025.07.17.
다만 이 경우 조속한 가자 전쟁 종결을 압박하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기대에 어긋나 네타냐후 총리로서는 어려운 방정식에 직면하게 된다.
가능한 시나리오는 60일 휴전 기간 징병 이슈나 가자 전쟁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이스라엘-아랍 관계 정상화 협정 확대 등 선거에 유리한 이슈로 국면 전환에 나서는 것이다.
이를 통해 충분한 지지 여론을 확보한다면, 네타냐후 총리는 휴전 종료 후 가자 전쟁을 끝내고 조기 총선을 실시할 수 있다.
가일 탈시르 히브리대 정치학 교수는 이같이 분석하며 “네타냐후 지지자 중 80%가 초정통파의 징병 회피 문제에 반대하고 있는데, 내년 총선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 문제를 추진할 순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