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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석 커피칼럼] 메뉴판 앞에서 커피 고르기 어려운 이유

2026년 0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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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메뉴판 앞에서 잠시 멈칫하게 되는 순간은 생각보다 자주 온다. 이름은 멋있고, 설명은 길게 적혀 있는데 막상 읽고 나면 여전히 감이 잡히지 않는다. ‘플로럴’, ‘베리 노트’, ‘클린 컵’. 모르는 단어들은 많은데 이 커피가 쓴 건지, 신 건지, 고소한 건지는 여전히 알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늘 마시던 커피를 고르거나, 이름이 유독 길거나, 왠지 예뻐 보이는 커피를 선택한다. 가끔은 직원에게 “많이 나가는 거 주세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사실 그 선택이 틀린 건 아니다. 커피는 시험 문제가 아니고, 정답을 맞혀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문제는, 선택의 기준이 없을 때 커피는 늘 ‘운’에 맡겨진 경험이 된다는 점이다.
커피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로스팅 포인트나 추출 레시피, 품종 이름까지 모두 알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나라별 특징과 가공 방식 정도만 알아도 메뉴판은 훨씬 보기 편해진다. 이 두 가지만 이해해도 “이건 내 취향일 확률이 높겠다”라는 판단이 가능해진다.

실패 확률이 낮은 중남미 커피

먼저 중남미 지역 커피 이야기부터 해보자. 브라질, 콜롬비아, 과테말라, 엘살바도르처럼 중남미 지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넓게 소비되는 커피 산지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익숙하게 느끼는 맛을 가지고 있다. 중남미 커피의 가장 큰 특징은 밸런스다. 산미, 단맛, 쓴맛이 한쪽으로 튀지 않고 전체적으로 밸런스있게 정돈된 인상이 강하다.
초콜릿, 견과류, 캐러멜 같은 맛이 떠오르는 경우가 많고, 입 안에서 부드럽게 이어진다. 자극적이지 않고, 마시고 나서도 피로감이 적다. 그래서 처음 가는 카페에서 “오늘은 무난하게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중남미 커피는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된다.
에스프레소로 마셔도 안정적이고, 아메리카노로 마셔도 균형이 무너지지 않으며, 라떼로 마셔도 커피의 존재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coffee cherry by dang-cong

커피의 인상이 달라지는 순간, 아프리카

아프리카 커피는 조금 다르다. 에티오피아, 케냐 같은 산지의 커피는 향이 훨씬 화사하고, 과일 같은 인상이 강하다. 딸기, 복숭아, 감귤, 꽃 향 같은 표현이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가볍고 산뜻해서 커피를 마신다기보다는 차나 주스를 마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서 ‘커피는 쓰다’라는 인상이 강한 사람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커피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줄 수 있는 산지이기도 하다.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평소와 다른 커피를 마셔보고 싶을 때 아프리카 커피는 좋은 선택이 된다.

우유와 만났을때 강한 아시아 커피

아시아 지역 커피는 묵직하고 고소한 인상이 강하다. 인도네시아나 인도, 베트남 계열의 커피는 바디감이 풍부하고 쌉싸름한 여운이 길다. 입 안에 남는 질감이 확실해서 ‘마셨다’는 느낌이 분명하다.
이런 커피들은 우유와 만났을 때 특히 강점을 보인다. 라떼로 마셔도 커피의 캐릭터가 흐려지지 않고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 밀크 베리에이션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아시아 커피는 꽤 잘 맞는 선택이다.

Washed process by iStock

같은 나라여도 맛이 달라지는 이유, 가공 방식

나라만큼 중요한 것이 가공 방식이다. 가공 방식은 커피 열매에서 씨앗인 생두를 어떻게 분리하고 건조했는지에 대한 차이다.
가장 흔한 방식은 워시드다. 물로 씻어내는 과정이 포함되기 때문에 맛이 깔끔하고 정돈된 것이 특징이다. 산미가 또렷하고, 뒷맛이 깨끗해서 더운 날 아이스로 마시기 특히 좋다.
내추럴 방식은 과육을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말리는 방식이다. 그래서 과일의 단맛과 향이 더 많이 남는다. 개성이 강하고 달콤하지만,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는 점도 함께 따라온다.
허니 프로세스는 워시드와 내추럴의 중간쯤에 있다. 너무 튀지 않으면서도 부드러운 단맛이 있어서 새로운 커피를 시도할 때 부담이 적다.

커피를 고른다는 것

결국 커피를 고른다는 건 정답을 맞히는 일이 아니다. 내 취향에 가까운 선택지를 하나씩 찾아가는 과정이다.
오늘 마신 커피가 마음에 들었다면 나라와 가공 방식을 기억해두면 된다. 다음 선택은 그 기억을 바탕으로 조금 더 쉬워질 것이다. 나라 하나, 가공법 하나만 이해해도 카페 메뉴판은 더 이상 어려운 설명서가 아니라 나를 안내하는 지도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오영석 칼럼니스트>

오영석은 바리스타로서 메뉴 개발, 센서리, 로스팅, 생두 분석을 꾸준히 공부해온 커피 실무자다. 현재 SCA Q-Grader, 디플로마 자격을 갖추고, 커피 뉴스·브랜드 스터디·향미 연구를 카드뉴스 형태로 정리하는 ‘DIR’를 운영하고 있다. DIR는 ‘Define · Interpret · Refine’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커피를 정의하고, 해석하고 정제한 교육 컨텐츠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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