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일스의 ‘기획된 제거 작전’ 의혹…비서실장 자리 노리는 측근들까지 가세, 백악관 권력투쟁 전면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발탁한 케이티 자카리아 백악관 대변인이 취임 불과 5일 만에 전격 해임된 배경에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의 치밀한 정치적 함정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히 와일스가 자카리아의 약점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방송 인터뷰를 성사시켜 사실상 퇴진을 유도했다는 내부 증언까지 나오면서, 이번 사건은 단순한 인사 실패를 넘어 트럼프 백악관 내부의 권력투쟁을 드러낸 사건으로 주목받고 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와 워싱턴포스트, 악시오스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자카리아의 초고속 퇴진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적 인사, 와일스의 인사권 약화, 대통령 측근들의 경쟁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사건의 출발점은 트럼프가 와일스와 충분한 사전 협의 없이 자카리아를 대변인으로 발탁한 것이었다.
워싱턴포스트는 백악관 관계자 4명을 인용해 트럼프가 와일스와 상의하지 않은 채 자카리아에게 대변인직을 제안했으며, 이 결정이 백악관 내부에서 와일스의 권위를 훼손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고 보도했다.
당시 와일스는 CNN 보수 성향 정치평론가 스콧 제닝스를 후임 대변인 후보로 검토하고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자신을 적극적으로 옹호해온 방송 출연자 자카리아를 선택했다.
악시오스에 따르면 이 과정에는 트럼프의 개인 보좌관 나탈리 하프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다만 트럼프가 최종 인선 결정을 와일스에게 알렸고, 와일스 역시 반대하지 않았다는 백악관 관계자의 설명도 나왔다.
문제는 자카리아가 취임 직후부터 백악관 내부에서 충분한 신뢰를 얻지 못했다는 점이다.

지난 13일 첫 공식 브리핑은 불과 14분 만에 끝났다. 자카리아는 친트럼프 성향 매체 기자 3명의 질문만 받은 뒤 브리핑룸을 떠났다. 준비 부족과 답변 능력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고, 일부 백악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인선 자체가 잘못됐다는 불만까지 나왔다.
그러나 자카리아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흔든 것은 이틀 뒤인 15일 밤 폭스뉴스의 숀 해니티 인터뷰였다.
폴리티코는 백악관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들을 인용해 와일스가 자카리아의 해니티 인터뷰 성사에 관여했다고 보도했다.
한 관계자는 이 인터뷰를 사실상 내부에서 승인한 공격을 뜻하는 ‘생크션드 히트(sanctioned hit)’라고 표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와일스가 자카리아를 해니티에게 넘겨줬다고 주장했다.
와일스와 해니티는 평소 정기적으로 대화하는 가까운 관계로 알려져 있다.
인터뷰에서 해니티는 예상과 달리 자카리아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첫 브리핑이 14분에 그쳤다는 점을 지적한 데 이어 변호사 자격 문제를 집중 추궁했다.
페퍼다인대 로스쿨 출신인 자카리아는 자신을 변호사로 소개해왔지만 미국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적이 없었다. 해니티의 추궁에 자카리아는 2011년 캘리포니아 변호사 시험에 불합격했으며 이후 재응시하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트럼프에게 우호적인 방송 진행자로 알려진 해니티가 현직 백악관 대변인을 이례적으로 강하게 추궁하자, 보수 진영 내부에서도 의외라는 반응이 나왔다.
그리고 인터뷰 다음 날인 16일 자카리아는 대변인직에서 물러났다.
이 때문에 백악관 내부에서는 와일스가 해니티와의 관계를 활용해 자카리아를 공개 검증대에 올려놓고, 결국 퇴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의혹이 확산했다.
그러나 백악관은 이를 전면 부인했다. 스티븐 청 공보국장은 와일스가 퇴진을 기획했다는 주장을 근거 없는 허구라고 반박했다. 폭스뉴스 역시 해니티가 출연자와 질문을 직접 결정하며 와일스는 인터뷰 섭외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따라서 와일스가 의도적으로 자카리아를 제거했다는 주장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내부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자카리아 자신의 준비 부족과 경력 논란이 퇴진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자카리아의 퇴진을 둘러싼 갈등이 백악관 내부의 훨씬 큰 권력투쟁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는 16일 백악관 참모와 트럼프 측근 등 20명을 취재한 결과, 오는 11월 3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와일스의 후임 자리를 노리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 빌 풀티 연방주택금융청장, 리 젤딘 환경보호청장 등이 잠재적인 차기 비서실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트럼프의 개인 보좌관 하프를 비롯한 대통령 측근들이 와일스의 통제를 벗어나 대통령에게 직접 접근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백악관 권력의 중심이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와일스는 2024년 트럼프 대선 승리를 이끈 핵심 참모로, 집권 2기 출범 이후 백악관 운영과 대통령 접근 통로를 엄격하게 관리해왔다. 그러나 최근 트럼프가 측근들과 직접 접촉하며 인사와 정책에 관해 독자적으로 판단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와일스의 장악력에도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공화당의 중간선거 전망이 악화하면서 와일스를 향한 책임론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로이터는 17일 트럼프가 공화당의 선거 전략과 막대한 선거자금 지출에도 지지율이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 불만을 표시하며 와일스 등 핵심 참모들의 역할을 문제 삼고 있다고 보도했다.
와일스와 가까운 선거 전략가들의 해외 정치 컨설팅 활동이 논란을 일으킨 것도 그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다만 트럼프는 와일스에 대한 신임을 공개적으로 재확인하며 교체 가능성을 부인했다. 와일스 자신도 사임할 의사를 밝힌 적이 없다.
결국 자카리아 사태에는 두 가지 권력투쟁이 겹쳐 있다.
하나는 대통령이 비서실장의 인사 통제를 벗어나 직접 발탁한 대변인을 둘러싼 갈등이고, 다른 하나는 비서실장 와일스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측근들의 경쟁이다.
자카리아가 와일스의 정치적 함정에 빠진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무너진 것인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자카리아를 둘러싼 내부 갈등과 차기 비서실장 경쟁이 동시에 폭발했다는 사실은 백악관의 권력질서가 이전과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트럼프 집권 1기 당시 백악관을 뒤흔들었던 측근들의 상호 견제와 인사 암투가 집권 2기에서도 재현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자카리아는 불과 5일 만에 백악관을 떠났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드러난 권력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자카리아의 퇴진 배후로 지목된 와일스 자신이 다음 권력투쟁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백악관 내부의 긴장은 더욱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