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까지 하얗게 샌 노인 두 명이 서로를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둘이 서로를 놓으려 하질 않았다”며 현장에 있던 이는 당시 상황을 전했다.
1947년에 헤어졌던 형제가 2년 전 유튜브를 통해 서로의 생사를 확인했고, 이달 초 극적으로 상봉했다. 2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10살 터울로 알려진 형제는 각각 파키스탄, 인도에서 75년간 살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극적인 상봉이 있기 2년 전, 평생 동안 서로를 찾아 헤매던 사디크와 시카는 휴대전화를 통해 서로의 얼굴을 마주했다.
화면이 켜지고, 서로의 모습이 보이자 “(형을) 찾으려고 노력했어”라고 시카가 운을 뗐다. 이에 “나를 찾으려고 했어?”라며 사디크가 되묻자, 시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편지도 썼어”라며 “나 정말 많이 노력했는데, (형의) 주소를 찾을 수가 없었어”라고 했다.
긴 통화 끝에 서로가 일평생 찾던 가족임을 확인한 형제는 그 날 이후 하루에 몇 번씩 연락하기도 하며, 언제고 원할 때마다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얼굴을 마주했다.
수화기 너머로 형제는 70년 넘게 묵은 서로의 이야기를 바쁘게 풀어냈다. 사디크는 자신의 아이와 손자들 이야기를 했고, 시카는 키우는 농작물을 설명하는 등 두 사람 사이에 이야기가 끊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두 형제가 서로를 직접 만나 부둥켜 안기까지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파키스탄과 인도의 관계 악화와 코로나19 확산 영향으로 국경이 닫히고 비자 발급에 제한이 생겨, 형제가 실제로 서로 얼굴을 마주볼 길이 힘들어 보였다.
그러나 이달 초 때마침 파키스탄 내 시크교 성지에서 열리는 종교 행사에 인도인이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게 되면서 마침내 형제가 서로의 손을 맞잡은 것이다.
인도에서 1947년 영국 식민통치 종료 직후 인도-파키스탄 국경 분리 당시 생이별 했던 형제가 약 75년만에 극적으로 상봉했다. 사디크(왼쪽)와 시카(오른쪽)가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얼싸안고 있다. (출처: Tiktok 갈무리)
앞서 1947년 영국 식민 통치가 끝나면서 갑작스럽게 진행된 인도 파키스탄 분리(partition)에 따라 1000만 명 이상이 종교적 이유로 이주했다. 당시 이슬람교도는 파키스탄으로 향하고 힌두교와 시크교도는 인도로 향했다. 이 과정에서 분쟁이 발생해 약 200만 명에 달하는 사망자가 나왔다고 알려져 있다.
국경 분리 당시 10살이었던 형 사디크 칸은 이슬람교도 아버지를 따라 파키스탄으로 향했고, 생후 6개월이었던 동생 시카 칸은 어머니와 함께 인도에 남으며 형제가 생이별을 했다고 WP는 전했다.
이에 더해 혼란 속에서 형제의 아버지는 총에 맞아 숨지고, 어머니는 극단 선택을 하며 형제는 각기 다른 낯선 곳에서 고아가 됐다.
다만 아버지 사후 사디크는 홀로 난민촌에 합류했고, 시카는 어머니와 함께 당도했던 지역의 지주(地主)가 맡아 돌봐주면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당시 인도 사회에는 신분제(카스트)가 존재했지만 지주는 시카를 자신의 친자식과 같은 방에 재우며 자식처럼 돌봤다. 그는 땅콩 한 알, 우유 한 컵도 차별하지 않고 먹이며 시카를 키웠다고 외신은 전했다.
1947년에 흩어진 인도-파키스탄 이산 가족 상봉을 추진하는 웹사이트 홈페이지 모습이다. (출처: 다스탄 홈페이지 갈무리)
시카는 자신을 키워준 지주에 감사를 표했지만,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시카는 항상 기억도 나지 않는 가족을 그리워했다고 전했다. 어렸을 땐 파키스탄으로 떠나는 무슬림 가족들에게 사디크를 찾아달라고 간청하기도 했다고 시카는 회상했다.
그는 끊임 없이 형에게 편지를 쓰는 것을 도와달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했고, 신문에 광고를 내기도 했다. 말년에는 지인에게 부탁해 페이스북에 형을 찾는 글을 올렸다고 전해졌다.
유튜브뿐만 아니라 지주의 가족도 형제가 상봉할 수 있게 오작교 역할을 했다. 지난 2019년 사디크가 유튜브에 출연해 동생을 찾는 영상을 본 지주의 손자가 해당 사실을 시카에게 알린 것이다.
사디크와 시카 형제의 상봉을 성사시킨 유튜브 채널은 2013년에 개설돼 현재까지 인도-파키스탄 이산가족 약 200가구의 상봉을 도운 것으로 전해졌다.
유튜브 등 플랫폼이 발달하기 전 인도 파키스탄 이산가족들은 인도인과 파키스탄인 모두에 접근이 허용된 성지 게시판에 편지를 써서 붙이는 등 갖은 방법으로 서로를 찾으려 노력했다고 외신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