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국제 금융시장 증시가 급락하고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는 등 세계 경제가 크게 요동치고 있다. 러시아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만 원유·천연가스를 비롯한 원자재의 주요 공급국이기 때문에 갈등이 장기화하면 세계 경제에 큰 파장을 일으킬 전망이다.
24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글로벌 경제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후 세계 경제의 완만한 회복세를 기대했지만 러시아의 침공 이후 치솟는 인플레이션과 원자재 공급망 타격이 세계 경제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동맹국들이 새로운 경제 제재를 발표할 때마다 세계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이 달라질 것으로 보고있다.
이미 미국이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가스관 ‘노르트스트림2’ 건설 주관사를 제재한다고 발표하면서 천연가스와 원유 가격은 폭등했다. 러시아는 유럽의 가장 큰 가스 공급국으로 EU는 천연가스 수입의 절반과 석유 수입의 4분의 1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유럽 외 반도체 등 세계 산업 분야는 러시아산 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러시아의 군사 행동은 주요 증시 폭락도 부추겼다. 이미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우려로 불안한 금융 시장에 위기감을 고조시킨 것이다.
러시아 자체 증시는 절반 가까이 폭락했고 러시아 루블화도 달러 대비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다.
유럽 주요국 증시도 일제히 급락했다. 영국 런던 증시의 FTSE 100 지수는 전 거래일 종가 대비 3.82% 하락한 7211.99로, 프랑스 파리 증시의 CAC 40 지수는 3.83% 내린 6521.05로 장을 마쳤다. 범유럽 지수인 유로 Stoxx 50 지수도 3.63% 내린 3829.29로 거래를 마쳤다.
시장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 석유·천연가스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어 국제유가가 지속적으로 고공행진 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유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는 등 폭등했다. 북해산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군사작전 개시 발표 직후 3% 급등해 2014년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약 12만원)까지 치솟았다. 자동차 산업의 핵심 투입품인 알루미늄, 니켈 등 러시아가 공급하는 원자재 가격도 상승했다.
우크라이나는 세계 3대 곡창지대를 보유하고 있고 러시아도 국제 곡물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글로벌 식량 대란’도 언급되고 있다. 전쟁 발발 이후 미국의 밀 가격은 2012년 7월 이후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미국 농무부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밀 수출 비중은 30%에 육박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이집트, 터키, 레바논을 포함한 중동의 취약한 국가들에 수백만 톤의 밀을 수출하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흑해 연안 항구들은 국제 곡물 수송의 주요 통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밀, 보리, 옥수수, 등의 수출 요지 중 하나다.
이에 우크라이나 오데사와 마리우폴 등 주요 항구에서 폭발이 있었다는 보도 이후 세계 해상교통도 차질을 빚고 있다. 흑해 연안의 오데사 항구는 보통 매일 수십 척의 선박이 철강, 곡물, 공산품과 같은 상품들을 운송하기 위해 해협을 건너는 해상 교통의 중심지다. 이번 침공으로 이미 주요 원자재와 곡물 수급 불안이 시작되면서 전쟁 상황이 길어지면 세계적으로 식량난과 물품 수송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중앙은행들이 경기부양책을 철회하거나 축소시켜 경제회복세가 꺾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번 전쟁 발발로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세계 경제 성장 전망치도 수정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전에는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4%로 내다봤지만 3.8%로 낮췄다.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유럽중앙은행(ECB)을 포함한 세계 주요 중앙은행들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최근 논평에서 ECB 관계자들은 러시아·우크라이나 갈등이 에너지 가격을 상승시켜 경제 성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유럽 중앙은행 집행위원회 위원들은 오는 27일 프랑스 파리에서 회의를 가질 예정이다. ECB 대변인은 ”ECB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영향을 면밀히 보고있다”며 “3월 회의에서 경제 전망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실시해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불확실성을 감안하면 금리 정상화가 더뎌질 수 있다”며 연준의 첫 금리인상을 0.5%p에서 낮춘 0.25%p 정도로 예상했다.
글로벌 투자은행이자 세계 최대 자산운영사인 UBS는 연료, 가스, 전기 가격이 10% 오를 때마다 EU 소비자 지출은 0.4%p, 경제성장률은 0.2%p씩 둔화될 것으로 추산했다.
UBS 경제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인한) 긴장은 에너지량 제한으로 인한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에 전면적으로 영향을 심각하게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