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흘린 피땀이 날 적시네 / 무대가 끝난 뒤 눈물이 번지네 / 매순간마다 자신에게 다짐해 / 초심을 잃지 않게 항상 나답게 / 처음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게 / 소 위 고 위 고 위 고(So we go we go we go / 더 위로 위로 위로”(‘본 싱어(Born Singer)’)
글로벌 수퍼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오는 10일 발매하는 새 앨범 ‘프루프(Proof)’의 첫 트랙이 ‘본 싱어(Born Singer)’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미발매곡인 이 노래는 방탄소년단이 2013년 7월 무료 음원 형태로만 공개했다. 앨범을 통해 발매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방탄소년단의 ‘본질’, 즉 초심을 강조한다.
힙합 뮤지션 제이콜(J.Cole)의 노래에 당시 데뷔 1개월을 맞은 방탄소년단이 느낀 바를 진솔하게 풀어냈다. 팀이 래퍼 라인 RM·슈가·제이홉이 작사한 이 곡에서 멤버들은 “난생 처음 방탄이란 이름으로 선 무대 / 삼년 전 첫 무대의 마음을 다시 검문해”라고 노래한다.
올해 데뷔 9주년, 즉 10년차를 맞은 방탄소년단 멤버들 역시 마찬가지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9년 전 방탄소년과 지금의 방탄소년단의 위상은 확연히 다르다.
‘팝의 본고장’ 미국 빌보드 메인앨범 차트 ‘빌보드 200’에서 다섯 번 연속 1위를 차지했고, 메인 싱글차트 ‘핫100’엔 협업곡 포함 6곡을 1위에 올렸다. 음악적 권위를 인정 받는 ‘그래미 어워즈’엔 2년 연속 후보로 지명됐다. 특히 최근엔 한국 가수 중 처음으로 미국 백악관에 초청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환담하기도 했다. 방탄소년단이 속한 소속사 하이브(옛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중음악 기획사가 됐다.
그런데 방탄소년단의 팬덤 ‘아미’ 중 일부 초창기 팬들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방탄소년단의 행보에 아쉬움을 표해온 건 사실이다. ‘다이너마이트’ ‘버터’ 등 방탄소년단을 명실상부 글로벌 스타덤에 올린 곡들은 ‘버블검 팝'(10대들을 타깃으로 한 대중음악 장르)이다. ‘상남자’ ‘불타오르네’처럼 강력한 비트에 칼군무를 추던 멤버들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아울러 멤버들의 의지와 상관 없이 그들을 둘러싼 다양한 병역 논쟁, 하이브의 규모가 커지면서 어쩔 수 없이 고려해야 하는 상업성 그리고 ‘프루프’에 전 여자친구와 관련 구설에 오른 작곡가 겸 기타리스트 정바비의 ‘필터(Filter)’가 실린 것에 대해 일부 팬의 보이콧 등 악재도 잇따라 겹쳤다.
하지만 멤버들의 음악과 아미에 대한 초심에 대해선 대부분의 팬들은 의심하지 않는다. 하이브의 방탄소년단 담당 레이블인 빅히트 뮤직도 이번 새 앨범 ‘프루프(Proof)’ 버전의 콘셉트 사진을 공개하면서, 편견과 억압을 막아내며 시련의 순간들을 넘어 음악으로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한 방탄소년단의 굳건한 모습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해당 사진에서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대형 방탄 철문 앞에 서 결연한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철문에 남은 탄흔은 방탄소년단이 지나온 역사 속 시련을 상징한다. 탄피를 밟고 선 일곱 멤버의 굳건함은 어떠한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수많은 순간들을 기록하며 달려온 방탄소년단의 지난 9년을 의미한다. 초심을 생각하고 있다는 걸 적절히 상징화한 셈이다.
이번 ‘프루프’와 관련 방탄소년단의 행보도 이를 증명한다. 2년여 동안 하지 않았던 국내 음악방송 활동 재개가 한 예다.
사실 지난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콘서트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를 성료한 뒤 방탄소년단이 새 앨범 발매를 예고했을 때만 해도 정규 5집 형태에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은 예상과 달리 그간 발표한 곡들을 모은 선집을 뜻하는 ‘앤솔로지’ 앨범을 들고 나왔다.
데뷔 10주년을 앞두고 자신들의 위상과 자신들을 둘러싼 환경이 급격하게 변한 만큼, CD 3장이 실린 이번 앨범을 통해 자신들의 역사를 한번 정리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앤솔로지 형태의 앨범은 전설적인 브릿팝 밴드 ‘비틀스’, 영국 하드록의 전설 ‘딥 퍼플’, ‘한국 록의 대부’로 통하는 기타리스트 신중현 등 오랜기간 활동하며 역사에 획을 그은 일부 뮤지션들만 발매했다.
그럼에도 ’21세기 팝의 아이콘’으로 통하는 방탄소년단인 만큼 이들이 앤솔로지를 발매한다고 했을 때 크게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은 없었다.
이번 앨범엔 타이틀곡 ‘옛 투 컴(Yet To Come)’과 ‘달려라 방탄’, ‘포 유스(For Youth)’ 등 3곡의 신곡이 실린다. 특히 타이틀곡 제목인 ‘옛 투 컴’은 ‘더 남아있다’는 미래지향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다. 앨범은 그렇게 9년간 걸어온 행보의 자기 증거물(proof)이자 앞날을 향한 증명(proof)이 된다.
그래서 올해 초 예고됐던 미국 힙합 스타 스눕독과 방탄소년단의 협업이 기대를 모은다. 앞서 스눕독은 지난 1월 팟캐스트 방송에서 “방탄소년단 측으로부터 협업 제안을 받았다”고 밝혔다.
스눕독과 방탄소년단의 구체적인 협업 배경은 전해지지 않았다. 대중음악계에서는 방탄소년단 소속사인 하이브 산하 빅히트 뮤직의 피독(강효원) 수석 프로듀서가 이번 협업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피독은 활동 초창기부터 스눕독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내왔다. 피독이라는 활동명도 프로듀서(Producer)와 스눕독(SnoopDogg)의 ‘독(Dogg)’을 합친 것이다. 방탄소년단 멤버들도 피독이 참여한 정규 1집 ‘다크&와일드(DARK&WILD)'(2014) 수록곡 ‘힙합성애자'(Hip Hop Phile)에서 피독과 함께 스눕독에 대한 존중심을 표했다.
피독, RM, 슈가, 제이홉이 노랫말을 함께 만든 이 곡에서 “남들처럼 제이-지(Jay-Z), 나스(Nas) 물론 클래식한 일매틱(Illmatic)과 ‘도기스타일(Doggystyle)”이라고 언급하는데, ‘도기스타일’은 스눕독의 데뷔 음반(1993) 제목이다. ‘일매틱’은 힙합 거장 나스의 데뷔음반이자 힙합계의 전설적인 명반 제목이다.
힙합계의 전설과 명반들을 연달아 언급한 ‘힙합성애자’는 데뷔 초창기 힙합 아이돌 그룹을 표방한 방탄소년단과 이들을 프로듀싱한 피독의 힙합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는 곡으로 평가 받는다. 방탄소년단이 단순히 이지팝을 선보이는 것을 넘어 미국 본토 음악을 현지에서 선보이며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입지를 다져나갈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