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군이 자체적으로 보유했던 옛 소련 무기 체계 기반의 탄약을 소진한 것이 향후 동부 돈바스(도네츠크·루한스크 주) 전투의 향방을 가늠할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기본적으로 대(對) 화력전에서 러시아 군에 크게 밀린 우크라이나 군은 변칙적인 전술을 앞세워 불리한 전장 상황을 극복해왔다. 하지만 러시아 군이 근접전을 자제하며 원거리 포격 중심으로 전투를 이끌면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러시아 군이 하루 평균 5만 발의 포탄을 쏟아붓고 있는 것에 반해, 우크라이나 군이 같은 기간 쓸 수 있는 탄약은 10분의 1 수준인 5000~6000발 정도에 불과했다. 가용 탄약의 부족은 우크라이나 군이 쉽게 풀기 힘든 난제였다.
바딤 스키비츠키 우크라이나 국방정보국 부국장은 최근 가디언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군이 하루에 쓸 수 있는 포탄은 약 5000∼6000발 가량에 불과하다. 5만 발의 포탄을 쏟아붓는 러시아 군에 비해 절대적으로 불리하며, 서방의 (향후) 무기 지원에 모든 게 달려 있다”고 긴급 지원을 호소했었다.
그는 “야포를 활용한 포격전에서 우리는 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군은 1문의 포를 갖고 있다면 러시아는 10∼15문의 포를 갖고 있다”면서 “모든 것은 서방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자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이달 중순 10억 달러(약 1조2900억) 달러 규모의 무기를 추가 지원을 결정했다.
추가 지원에는 해안 방어시스템인 하푼 대함미사일 시스템 2기, 트럭 탑재 다연장로켓인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 155㎜ 견인 곡사포 M777 18문과 포탄 3만6000발 등이 담겼다.
Great news from the front: the Ukrainian army pushed the Russians back to their border in Kharkiv region, and also destroyed a huge column of equipment (more than 70 pieces were confirmed from satellite images) in the Donbas.
Special thanks to the USA for the M777 howitzer. pic.twitter.com/SG1xn783zE— Stanislav Aseyev (@AseyevStanislav) May 13, 2022
해당 무기들은 우크라이나에 속속 도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추가 지원에도 궁극적으로 우크라이나 군이 안고 있는 탄약 부족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제의 핵심은 미국 등 주요 서방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표준 규격탄을 사용하고 있는 반면, 옛 소련 무기체계를 운용 중인 우크라이나 군은 서로 다른 구경의 포탄을 사용하는 데 있다고 가디언은 분석했다.
나토 표준탄은 포의 종류에 따라 크게 105㎜ 포탄과 155㎜ 포탄 2가지로 나뉜다. 미국이 제공한 M777 견인 곡사포도 155㎜ 포탄을 사용한다. 프랑스가 제공한 차륜형 곡사포 세자르(CAESAR SPH)도 155㎜ 포탄을 쓰며, 영국·독일·이탈리아가 공동개발해 제공한 곡사포 FH-70도 155㎜ 포탄을 쓴다.
반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일부 동유럽 국가 등 옛 소련 무기체계에 기반을 두고 있는 나라들에서는 122㎜와 152㎜ 포탄을 주로 사용한다. 체코가 우크라이나에 제공했던 122㎜ 다연장로켓(MLRS) RM-70 ‘뱀파이어’가 대표적이다. 러시아 군의 주력 다연장로켓탄 규격도 122㎜다.
옛 소련이 나토에 대응하기 위해 창설했다가 지금은 사라진 바르샤바조약기구 국가들은 나토탄과 다른 122㎜와 152㎜ 포탄 규격을 따른다.
가디언은 우크라이나 군이 자체적으로 사용해온 152㎜ 포탄의 경우 재고가 부족해도 별도로 구매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보도했다. 아프리카와 중동 국가들 사이에서 다수 152㎜ 포탄을 보유하고 있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판매를 비밀리에 막고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서방 무기들이 속속 우크라이나에 도착하고 있지만 익숙하지 않은 운용법을 숙지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군의 기본 훈련 기간 동안 실전 배치를 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 의회 국가안보국방정보위원회 부대표인 마리아나 베주글라 의원은 최근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는 한 때 보유 중이었던 소련 시절 포탄을 전세계 하루 생산 가능량보다 더 많이 사용하기도 했었다”면서 “지금은 신형 탄약을 공급받고는 있지만 발사할 수 있는 포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