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서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문구는 수십년 동안 열심히 일하면 누구라도 부자가 되고 신분상승을 이루고 발전할 수 있다는 뜻으로 쓰였다. 전세계로부터 이민자가 몰려오도록 하는 강력한 문구였고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모든 정치가들이 자신의 정책이나 경력 소개에 단골로 사용하는 어구였다.
그러나 새로 정계에 진출한 공화당 후보들과 선출된 공직자들이 아메리칸 드림으로 밝은 미래를 약속하면서도 연설과 광고, 이메일에서는 아메리칸 드림이 죽어가고 있고 위태로워졌다고 주장해 본래의 뜻이 바뀌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공화당 정치인들은 아메리칸 드림이 범죄, 무제한적 이민, 과도한 정부 규제, 진보적 사회 정책으로 위태로워졌다고 주장한다.
나이든 정치인들에게 아메리칸 드림은 강력한 낙관론을 주장하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공화당 정치인들은 공포스럽고 부정적인 의미로 더 많이 사용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5년 유세 때 “아메리칸 드림은 죽었다”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트럼프 지지자들 다수가 마찬가지로 미국 국기를 우파의 상징으로 사용하면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슬로건에 동원하고 있다.
멕시코 이민자 출신으로 텍사스주에서 첫 하원의원에 당선한 마이라 플로레스는 “민주당이 아메리칸 드림을 파괴한다”는 광고를 냈다. 이탈리아-레바논 출신 이민자로 댈러스 외곽 선거구에 출마한 안토니오 스와드는 광고에서 15살 전부터 접시를 닦다가 음식점 2곳을 열었다면서 유권자들에게 “아메리칸 드림은 정부가 내주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텍사스주 전체적으로 공화당의 하원 및 상원의원 후보 10여명이 TV 광고에서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엘살바도르 내전을 피해 이민온 사람의 딸로 경관이 됐다가 버지니아주에서 하원의원에 출마한 예슬리 베가는 “당선되면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 싸울 것”이라고 트윗했다.
지난해 버지니아주에서 당선한 공화당 후보 두 사람도 선거전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내세웠다. 쿠바 이민자의 후손으로 버지니아주 첫 법무장관에 당선한 제이슨 미야레스는 “유세 당시 여러분의 가족이 기회를 찾아 이 나라로 왔다면 우리 가족처럼 기회가 많으며 법무장관이 된 것은 엄청난 영광이라고 말하곤 했다”고 밝혔다.
공화당이 아메리칸 드림을 내세우면서 강력한 성공사례를 가진 사람을 스카웃하는 전략을 펴는데 대해 역사학자들은 공화당이 미국의 이념을 왜곡해 배타적인 정치 메시지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포드햄대학교 정치학 조교수 크리스티나 그리어는 “공화당이 문구를 개를 부르는 호각처럼 쓰고 있다. 이곳에 당신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말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서 그런 기회를 ‘훔쳐가는 걸’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고 지적했다.
공화당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누군가를 배제하기 위해 사용한다는 지적에 반발하면서 과거와 같은 뜻으로 사용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근 공화당 정치인들의 아메리칸 드림 강조는 공화당 주장을 뭉뚱그리는 표현으로 쓰이고 있다.
콜로라도주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바바라 커크메이어는 아메리칸 드림을 자신의 개인사를 상징하는 뜻으로 사용한다. 축산 농가의 일곱 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나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자신이 소 8마리를 책임지고 젖을 짜고 송아지를 받으며 대학까지 졸업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아메리칸 드림은 경제적 기회만이 아니라 자유를 뜻한다면서 공화당이 주장하는 팬데믹 마스크 규제 반대와 연관지었다. 그는 “마스크 착용 의무가 아메리칸 드림에 맞지 않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권리를 침해당한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아메리칸 드림이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30년으로 당시 13.5달러짜리 스프링 침대 회사 광고에 등장했다.
역사가들과 경제학자들은 그러나 작가 제임스 트루슬로우 애덤스가 1년 뒤 낸 베스트셀러 “미국 이야기(The Epic of America)”에서 사용하면서 널리 퍼졌다고 지적한다. 대공황이던 당시 그는 아메리칸 드림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더 잘살고, 부자가 되고, 꿈을 이룰 수 있는 나라”라고 묘사했다. 애덤스는 당시 대기업들을 억제하는 정부의 진보적 비전을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당시 그로선 의회가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었다.
후대에 와서 애덤스의 문구가 대통령과 기업들, 대중문화가 주택 구입을 강조하면서 흰색 나무 울타리가 둘러진 주택 이미지로 형상화됐다. 그러나 2008년 경제 위기로 주택 구입이 어려워지면서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아메리칸 드림의 뜻의 재정의를 시도했다. 현재 진보진영에서는 아메리칸 드림의 의미가 퇴색된 반면 공화당은 커다란 정부가 주적이라는 주장을 펴는데 사용하고 있다.
이를 두고 2018년 “아메리카: ‘미국 우선주의’ 및 ‘아메리칸 드림’이 뒤얽힌 역사(Behold, America: The Entangled History of ‘America First’ and ‘the American Dream)”라는 책을 펴낸 새러 처치웰은 “의미가 크게 변했다”고 지적했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단어를 보수주의적 용어로 사용하기 시작한 사람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다. 당시 그는 라틴계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이 용어를 가족과 종교를 찬양하고 정부의 복지 정책에 반대하는 의미로 자주 사용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도 그의 전략을 이어받았다.
레이건과 부시 전 대통령의 선거 광고를 만든 공화당원의 미디어 컨설턴트 리오넬 소사는 “보수적 가치와 경제적 기회를 연결시킨 것이다. ‘당신의 미국에 대한 기여를 인정하며 계속 열심히 일하면 더 발전할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의미’였다”고 말했다.
공화당 정치인들은 지금도 레이건과 부시가 그랬던 것처럼 강력한 직업윤리, 기독교 가치, 기업가 정신을 강조하는데 사용한다. 여기에 라틴계 정치인들이 한술 더 뜨고 있다. 자신들은 합법적으로 미국에 왔다면서 “국경 개방”을 비난하고 미국-멕시코 사이의 장벽 공사를 끝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사는 “우리가 광고를 만들 때는 장벽을 건설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면서 “합법적으로 미국에 와야 하고 합법적이지 않으면 오는 걸 원치 않는다”는 뜻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아메리칸 드림 문구가 정치화하면서 미국인들이 아메리칸 드림 성취에 비관적이 되고 있다는 연구도 있다. 역사가들은 공화당 정치인들이 민주당 정치인들보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문구를 훨씬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선거 광고에서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민주당 후보는 4명인데 비해 공화당 후보는 12명이 넘는다. 미시간주에서 하원의원에 출마한 인도 이민자 출신 슈리 타네다르 주의원은 민주당 의원들이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용어를 덜 사용하는 것을 두고 “공화당 및 기업 대변 정치인들에게 밀리고 있다”고 말한다.
민주당 정치인들은 공화당이 “사회안전망을 공격하고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것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애국심과 연결지음으로서 파당적 무기로 삼고 있다”고 비난했다.
뉴멕시코주에 출마한 가베 바스케스 민주당 후보는 “그런 아메리칸 드림은 환상”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