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노르트스트림1·2’ 해저 천연가스관 3곳에서 잇달아 가스 누출이 발생했다. 누출 전 폭발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사고가 아닌 고의적인 파괴 공작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27일(현지시간) AP통신 등 외신들을 종합하면 덴마크·스웨덴 해양당국은 26일 발트해 해저 노르트스트림2 1곳과 노르트스트림1 2곳에서 몇 시간 간격으로 대규모 가스 누출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덴마크는 반경 5해리 내 선박 항행을 금지했다.
덴마크 당국은 “이것은 작은 균열이 아닌 정말 큰 구멍”이라고 말했다.
◆몇 시간 간격 2회 폭발·3곳서 누출…규모 2.3 수준
가스관 운영사 노르트스트림2 AG는 밤 사이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 압력 강하를 감지하고 독일,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러시아에 통보했다. 이후 발트해 덴마크 보른홀름섬 남동쪽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가스 누출이 감지됐다. 또 같은 날 스트림1에서도 압력이 떨어진 것을 확인했다. 통상 가스관 압력은 105bar(바)이지만, 독일쪽 가스관 압력은 7bar로 낮아졌다.
가스 누출을 감지한 뒤 유럽국가 지진 관측소들은 폭발이 있었음을 확인했다.
스웨덴국립지진네트워크는 가스 누출 구역에서 2번의 폭발을 감지했다고 밝혔다. 첫 번째 폭발은 현지 26일 오전 2시(GMT 자정)께 덴마크 보른홀름섬 남동쪽에서 발생했고, 이어 오후 7시4분께 북동쪽에서 더 강력한 폭발이 있었는데 규모 2.3 지진과 맞먹는 수준이었다고 설명했다.
가스노출 경보는 같은 날 오후 1시52분과 오후 8시41분께 발령됐다. 이 기관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것은 지진이 아니다”고 밝혔다.
독일,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의 지진 관측소에서도 폭발을 감지했다.
이번 사건은 덴마크에서 폴란드로 노르웨이 가스를 수송할 새 가스관 ‘발틱 가스관’ 가동 개시를 하루 앞두고 발생했다. 노르웨이 가스는 러시아 가스를 대체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유럽 “사보타주 가능성”…배후는 지목 안 해
덴마크와 스웨덴은 사보타주, 즉 고의적인 파괴 행위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다만 배후는 단언하지 않았고, 자국을 겨냥한 공격도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사고가 아닌 고의적 행동에 의한 것이라는 게 당국의 분명한 평가”라고 분석했다. 다만 “배후에 대한 정보는 없고, 덴마크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적 위협은 없다”고 덧붙였다.
덴마크 에너지장관은 CNN에 “사고가 아닌 폭발에 의한 것”이라고 판단한다면서 손상된 가스관 해저 깊이는 70~80m이고 가스가 일주일 이상 샐 수 있다고 말했다.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스웨덴 총리는 스톨홀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스 누출이 “고의적 사보타주에 의한 것일 수 있다”며 “스웨덴에 대한 공격은 아니다”고 평가했다. 또 “노르웨이가 북해의 드론 활동 증가와 이와 관련해 취한 조치들에 대해 알려 왔다”고 했다.
안 린데 스웨덴 외무장관은 “어떤 시나리오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면서 “우린 동기와 행위자에 대해 추측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페테르 훌트크비스트 스웨덴 국방장관은 “필요할 경우 신속하게 해병대를 투입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도 이번 사건을 “사보타주 행위”라고 비난했다.
미국은 누구의 소행인지 추정하지 않은 채 우려를 표명했다. 앤서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번 일이 공격이나 어떤 사보타주의 결과일 수 있음을 시사하는 초기 보도가 있었다. 아직 직접 확인하진 않았다”면서 “만약 확인될 경우 이것은 누구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가장 강력한 대응”을 경고했다.
◆전문가, 러 배후 가능성 제기…러 “전례 없는 상황·조사 필요”
다만 유럽의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소행일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했다.
이들은 “피해 규모에 따라 가스관 2개 라인이 영구적으로 폐쇄될 수 있다”면서 “유럽 가스 시장 혼란과 이로 인해 이익을 얻을 사람이 누구인지 본다면 그것은 러시아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유럽국과 마찬가지로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사보타주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어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전체 대륙 에너지 안보와 관련된 문제로, 시급한 조사가 필요한 전례 없는 상황이다. 우리는 이 소식에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덴마크 러시아 대사관도 원인을 조사하고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사관은 성명을 통해 “권한 있는 기관이 모든 수단과 힘을 동원해 포괄적인 조사를 진행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조사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고 했다.
◆유럽, 조사 착수…나토·덴마크 28일 논의
관련국들은 조사에 착수했다.
덴마크 국방장관은 28일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해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과 이번 사건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덴마크 외무장관은 인근 스웨덴, 독일, 폴란드에 지속적으로 정보를 제공했다면서 “러시아에도 알리고 연락할 것”이라고 했다.
◆”일주일 이상 누출 지속”…기후위기·에너지난 가중 우려
가스 누출로 인한 영향은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누출된 천연가스의 주성분은 메탄인데, 한 독일 환경 단체는 메탄이 물에 용해되고 독성이 없다고 밝혔지만 또 다른 미국 전문가는 메탄이 이산화탄소 다음으로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고 지적하면서 “가스 대부분이 바다를 통해 상승해 대기로 유입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겨울철 유럽 에너지 대란 위기를 가중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27일 런던 ICE 거래소에서 유럽 가스 가격은 12% 상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