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 쥐의 두뇌에 사람의 신경세포를 이식하는 실험이 성공해 발달장애와 같은 증상의 신경학적 조건을 재현함으로써 손상된 뇌를 복원하는 길이 열리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 등이 12일 보도했다.
스탠포드대학교 과학자들은 이날 발표한 논문에서 오르가노이드(organoids)라는 인간 세포 덩어리를 수백만개의 신경세포로 배양해 새 신경시스템이 되도록 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오르가노이드를 쥐의 뇌에 주입했을 때 쥐가 수염의 감각신호를 받아서 수염을 움직이는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 책임자인 세르쥬 파스카 박사는 자신의 연구팀이 현재 이식된 신경세포를 사용해 자폐, 조현병 등 발달장애 등을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들 증상의 생물학적 조건을 제대로 알려면 보다 복잡한 인간 두뇌 모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루마니아에서 약학을 공부한 파스카 박사는 2009년 스탠포드대에서 박사 후 과정을 하면서 인간 신경세포 배양법을 배웠다. 그의 연구팀은 자원자에서 제공받은 피부세포에 화학처리를 해 다른 종류의 세포로 바꾸었으며 현재 모든 세포로 전환될 수 있는 배아세포처럼 만들었다. 이 세포를 다시 신경세포로 배양해냈다.
연구팀은 이어 티모시 증후군 환자의 피부로 같은 실험을 했다. 티모시 신드롬은 단순 돌연변이로 심각한 심장 질환과 언어장애, 사회성 결여를 일으키는 희귀 자폐증상이다.
티모시 증후군 신경세포를 배양해 관찰한 결과 이들이도파민등 신호 화학물질을 더 많이 생성하는 등 일반 신경세포와 다른 점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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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단일 세포를 관찰하는 것만으로는 티모시 신드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데 한계가 있었다. 파스카 박사는 수천개의 신경세포를 두뇌 오르가노이드 형태로 결합하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연구팀은 발달과정의 뇌의 조건을 재현해 피부세포를 두뇌 간세포로 만들었고 이어서 대뇌 피질에서 발견되는 신경세포 덩어리로 만들었다.
연구팀은 피질 오르가노이드와 척수 오르가노이드, 근육세포 오르가노이드 등 세가지를 결합했다. 피질 오르가노이드를 자극하자 근육세포가 수축했다.
그러나 오르가노이드만으로 두뇌를 재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더이상 발달하지 못한 것이다. 또 살아있는 두뇌만큼 전기신호가 활발하지 않았다.
연구팀은 생체 두뇌에 오르가노이드를 삽입하는 실험을 시작했다. 2018년 설크 생물학연구소 프레드 게이지 신경학자 연구팀이 다자란 쥐의 두뇌에 인간 두뇌 오르가노이드를 삽입했다. 쥐의 두뇌가 인간 오르가노이드에 계속 혈액을 공급해 인간 신경세포가 늘어났다.
이후 게이지 박사팀 등 다른 연구자들이 쥐의 시신경에 인간 오르가노이드를 삽입하는 실험을 했고 쥐가 백색광을 보면 인간 신경 오르가노이드 신경세포가 쥐의 시신경세포와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는 것이 확인됐다.
파스카 박사팀은 인간 오르가노이드를 다자란 쥐가 아닌 태어난 지 1, 2일 지난 신생쥐의 뇌의 감각신경 피질부위에 삽입했다. 쥐의 경우 수염에서 전달되는 신호에 이 부위가 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인간 신경세포가 300만개까지 늘어나 쥐 두뇌 피질의 한 면을 전부 차지했다. 오르가노이드의 모든 세포가 배양접시보다 6배 이상 길게 자랐으며 인간 두뇌의 신경세포만큼 활성화됐다.
무엇보다 인간 오르가노이드가 쥐의 두뇌와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는 점이 놀라웠다. 쥐의 감각에 인간 신경세포가 반응한 것이다. 쥐의 수염에 바람을 불자 인간 오르가노이드가 수축하며 반응했다.
파스카 박사 연구팀은 쥐가 있는 상자에 분수를 넣어 쥐의 행동이 인간 오르가노이드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지도 실험했다.
15일 동안 훈련한 끝에 오르가노이드가 자극을 받으면 쥐가 물을 마시도록 만들었다. 인간 오르가노이드가 쥐의 뇌속에 있는 보상기제 부위에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분명했다.
이 같은 실험은 윤리적 문제가 내재한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스카 연구팀은 쥐가 마비나 기억상실, 행동 제약 등 고통을 겪는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 팍스카 박사는 “이식한 사람 세포에 쥐가 잘 적응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연구팀 일원이 아닌 서던캘리포니아대 신경생물학자 죠르쟈 코드라토는 인간 오르가노이드가 쥐를 인간처럼 만들지 않는다고 했다. 학습점수가 다른 쥐와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윤리적 문제는 없어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인간 오르가노이드를 원숭이나 침팬지처럼 인간과 가까운 종에 주입했을 때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올 지는 장담할 수 없다.
파스카 박사는 유인원과 인간의 유사성으로 오르가노이드가 더많이 성장해 동물의 정신작용에서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그런 실험을 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파스카 박사는 오르가노이드 이식을 통해 신경질환 연구에 활용하고 있다. 티모시 증후군 환자의 오르가노이드를 쥐의 뇌에 이식하고 다른 쪽에 질환이 없는 오르가노이드를 이식하자 두 오르가노이드 모두 증식됐다. 그러나 수상돌기의 전기신호를 더 많이 받는 티모시 증후군 오르가노이드가 2배 이상 증식했다. 반면 수상돌기는 짧아졌다.
파스카 박사는 자폐 등 신경 증상이 있는 사람의 뇌 오르가노이드를 가진 쥐의 행동 차이를 관찰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실험을 통해 특정 돌연변이가 두뇌 작용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 일원이 아닌 펜실베니아대 신경외과 의사 이삭 첸 박사는 이 연구가 뇌손상을 치료하는데 활용될 수 있다고 본다.
첸 박사는 피질이 손상된 환자의 피부세포로 뇌 오르가노이드를 배양할 계획이다. 이를 환자의 뇌에 주입하면 오르가노이드가 건강한 세포로 자리잡을 것으로 예상하는 것이다. 그는 “이걸 어떻게 활용할 지의 문제만 남아 있다. 아니면 더 발전시킬 수도 있을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