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도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만화 ‘진격의 거인’ 연재에 참여했던 일본 출판사 고단샤(講談社)의 한국계 편집자 박모(47)씨가 살인 혐의로 징역 11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가운데, 일본 최고재판소가 21일 원심을 파기하고 다시 심리하도록 했다.
하급심 재판원 재판(한국의 국민참여재판에 해당)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이를 고등법원도 유지한 사건을 최고재판소가 파기 환송한 것은 처음이라는 점도 일본 언론들은 주목하고 있다.
한국의 대법원에 해당하는 일본 최고재판소가 1심과 2심에서 모두 유죄를 인정하고 중형을 선고했음에도 이를 뒤집고 심리를 다시 하도록 명령함에 따라 파기환송심에서는 유·무죄를 놓고 치열한 법정 다툼이 예상된다.
21일 NHK, 아사히신문과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6년 전 자택에서 아내의 목을 압박해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박씨에 대해 일본 최고재판소는 살해죄를 인정해 징역 11년을 선고한 2심 판결을 취소하고 도쿄고등법원에서 심리를 다시 하라고 명령했다.
고단샤에서 인기 만화잡지 편집차장을 맡고 있던 박씨는 6년 전 도쿄도 분쿄구 자택에서 당시 38세이던 아내의 목을 압박해 살해한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 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재판에서 박씨 측은 “아내는 육아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 자살을 했다”며 무죄를 주장했고, 아내가 살해됐는지 여부가 쟁점이었다.
박씨는 경찰에 신고 당시 아내가 계단에서 넘어졌다고 진술했지만 이후 부검 과정에서 목이 졸린 흔적이 발견되자 목을 매달아 자살한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의 아내(사망 당시 38세)의 사인은 질식사로 1층 방 매트리스에 아내의 소변 등 흔적이 남아 있었고 이마에는 깊은 상처가 있었다.
검찰 측은 박씨가 매트리스에서 목 세게 누린 질식사라고 주장했다. 추락사를 가장하기 위해 빈사 상태였던 아내를 계단 위에서 떨어뜨렸을 때 이마의 상처가 생겼다고 주장했다.
반면 변호인 측은 산후우울증 등으로 정신적으로 불안정했던 아내가 흉기를 들자 박씨가 매트리스 위에서 몸싸움을 벌였다고 반박했다. 이후 박씨가 자녀와 2층 방으로 대피한 사이 아내가 계단 난간으로 목을 매었다고 주장했다.
이마 상처에 대해서는 몸싸움 후 아내가 돌아다니는 동안 생긴 것이라며 박씨의 행위로 아내가 숨졌다고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재판원 재판에 의한 2019년 3월 도쿄지방법원 판결은 ‘혈흔의 적음’에 주목했다. 박씨 아내가 빈사 상태가 아니라 돌아다닐 수 있는 상태에서 이마에 상처를 입었다면 더 심한 출혈이 있었고 더 많은 혈흔이 남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어 몸싸움 후에도 아내에게 의식이 있었다는 변호인 측 주장을 부인해 유죄 결론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재판원 재판에서는 공판 전 정리 절차로 증거가 좁혀졌고, 1심에 제출되지 않은 증거에 따르면 혈흔은 그 밖에도 발견됐다.
변호측은 항소심에서 이 점을 지적해 2021년 1월의 도쿄고등법원 판결은 “1심은 전제 사실을 잘못했다”라고 인정했다.
다만 2심 재판부는 의식이 있을 때 상처를 입으면 시신의 얼굴이나 손에 피가 흐르거나 닦은 흔적이 남겠지만 보이지 않는다는 등의 다른 논리로 자살설을 부인하며 유죄를 유지했다.
결국 2심은 ‘자살이었을 경우 상정되는 상황과 피해자의 몸 상태나 현장 흔적이 일치하지 않는다’며 1심에 이어 박씨가 아내를 살해했다고 판단해 징역 11년을 선고했다. 그러자 박씨 측이 상고했다.
변호인 측은 최고재판소에 상고하면서 유죄 판결의 사실 오인과 함께 재판 절차의 문제점을 호소했다. 1, 2심 심리에서는 각각의 판결이 유죄의 근거로 한 ‘혈흔의 수’와 ‘시신의 얼굴 등의 피’는 명확하게 쟁점이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변호측이 증거를 내거나 반론할 기회가 없는 채, 기습적으로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며 호소했다.
이에 일본 최고재판소 제1소법정은 2심의 판결을 취소하고 도쿄고등법원에서 심리를 다시 하라고 명령했다.
박씨는 일본 메이저 출판사인 고단샤의 만화잡지 ‘모닝’ 편집부 편집차장으로 재직했다. ‘진격의 거인’, ‘일곱 개의 대죄’ 등 인기 만화의 편집자로 참여헀다.